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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다시 쓰다

여성들의 희망과 투쟁의 기억


  • ISBN-13
    979-11-88509-92-8 (0333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파라북스 / 파라북스
  • 정가
    2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10-1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인숙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종주의 및 인종차별
  • 추가주제어
    역사 , 일반 및 세계사 , 유럽사: 종교개혁
  • 키워드
    #민주화 #프랑스 혁명 #페미니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클레르 라콩브 #마농 롤랑 #올랭프 드 구즈 #인종주의 및 인종차별 #역사 #일반 및 세계사 #유럽사: 종교개혁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8 * 210 mm, 319 Page

책소개

* 이 도서는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출판사 도약부문 제작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책 소개]

 

“혁명과 진보의 역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넘어오는 겨울, 우리나라에서는 ‘빛의 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텔레비전을 통해 유튜브를 통해 개개인의 SNS를 통해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12월 3일 밤에 국회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달려왔고, 그 후 연일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매서운 추위에도 밤을 지새우며 광장과 거리를 지켰습니다. 거기에는 남성도 있었고 여성도 있었습니다. 20~30대 여성이 유독 많아 응원봉으로 ‘빛의 혁명’을 이끌었지만, 우리는 여성의 혁명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후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에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89년 프랑스에서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혁명이 일어났고, 거기에도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대혁명이라 불리지만 이후 세상은 남성들의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를 내세웠으며 여성의 권리는 무시되었습니다.

이 책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의 모토가 ‘자유’와 ‘평등’과 함께 ‘자매애(sororité)’가 ‘형제애(fraternité)’를 대신하고, 개막식에서 올랭프 드 구즈의 동상이 등장했던 것처럼, 역사의 전면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역할을 복원하였습니다. 저자는 혁명의 이상이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좌절의 역사를 분석하며, 이것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투쟁과도 겹쳐 있음을 통찰합니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넘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현실에 맞서 싸우는 ‘진행 중인 역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질문을 던집니다.

 

“빵을 달라!” 빗속 20km를 걸어 혁명을 주도한 여성들

파리 중앙시장의 상인, 세탁부, 방직공장 노동자였던 여성들은 남성 정치인이나 역사가들에 의해 “더럽고 추하며 위협적인 짐승”으로 묘사되었지만,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절박함”으로 나선 그들의 절박한 투쟁은 혁명의 주요 변곡점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1789년 10월, 빵을 요구하며 시청에 몰려갔던 여성들은 “빵집 주인과 그 아내를 찾으러 가자!”라는 구호와 함께 베르사유 궁으로 행진했습니다. 만여 명의 여성이 함께 행진하며 빗속에 20km를 걸은 끝에 “말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빵을 달라!”고 외치며 국민의회에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남성들이 주저할 때, 여성들이 주도한 이 행진은 베르사유 궁에 머물고 있던 국왕을 파리로 불러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뜨개질하는 여성들’과 ‘공화국의 어머니’라는 기만적인 프레임

여성들은 거리에서 빵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회 방청석에 앉아 회의를 참관하고 고함을 치며 자신들의 요구를 알렸으며, 심지어 여성들만의 정치적 모임인 ‘여성클럽’을 조직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자 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의회 방청석에서 뜨개질하며 혁명에 참여하여 “뜨개질하는 여성들”이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진전되자, 혁명 초기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추겼던 남성 지도자들조차 결국 여성의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이들은 여성을 오로지 ‘가정과 모성의 영역’에 가두고, 조국을 위해 덕성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공화국의 어머니’ 역할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런 포장은 여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쫓아내려는 음모에 불과하였고, 혁명정부는 사회질서 회복이라는 핑계로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운동부터 탄압했습니다.

 

혁명에 헌신하고 단두대에 오른 여성들

이 책의 2부는 혁명사에 가려진 4인의 여성 운동가들의 삶과 사상을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혁명의 여전사’로 불렸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는 거리에서 군중을 사로잡은 혁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여성클럽의 투사’ 클레르 라콩브는 평범한 배우 출신임에도 수백 명의 남성의원을 상대로 의회 난간에서 연설하는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롱드파의 여신’ 마농 롤랑은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는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단두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페미니즘에 한정시킬 수 없는 폭넓은 휴머니즘과 정치사상을 보여줬습니다.

 

프랑스 혁명 속 여성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프랑스 혁명의 여성들이 겪은 경험이 우리나라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대의와 이상 속에서 여성의 권리는 늘 후순위로 밀렸지만, 끝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체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도 이와 비슷한 궤적을 보여줍니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 여성들은 헌신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성과와 기념에서 여성의 이름은 쉽게 지워졌습니다. 남성 중심의 민주화 서사 속에서 여성 문제는 늘 ‘뒤로 미뤄지는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랜 투쟁과 목소리 끝에 호주제가 폐지되고 법적·제도적 평등이 진전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여성에게 있어 성취와 좌절이 공존하는 역사였습니다. 비록 여성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획득하지 못했으나, 그들의 저항과 희생은 성평등 담론을 확장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민주주의와 성평등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역사적 자산으로 기능하였습니다.

목차

 

추천사 

 

| 프롤로그 | 여성을 지워버린 프랑스 혁명 

 

01부 • 희망과 열정으로 혁명에 뛰어든 여성들

1. 혁명 전야의 풍경들 

2. 베르사유 행진과 여성들의 집단행동 

3. 민중 여성들의 다양한 투쟁 활동 

4. 혁명기 남성들의 여성관

5. 민중협회와 여성클럽 

6. 혁명적 공화주의 여성시민협회 

7. 여성운동의 소멸 

 

02부 • 혁명기의 여성 운동가들

1. 혁명의 여전사,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2. 여성클럽의 투사, 클레르 라콩브 

3. 지롱드파의 여신, 마농 롤랑

4.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 올랭프 드 구즈 

 

| 에필로그 | 혁명에 헌신한 여성들을 위한 만가 

 

프랑스 혁명 연보 

주석 

참고자료 

본문인용

기근의 시기에 식량부족으로 일어난 폭동에 제일 먼저 앞장선 사람들은 민중계층의 여성들이었다. 파리 중앙시장의 상인과 잡부들, 세탁부, 점원,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이었던 이들은 가족 생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어 거의 대부분 무명으로 남았다. 남은 희귀한 기록마저도 이 여성들을 더럽고 추하고 위협적이며 공포스럽고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했다. 글을 쓴 부르주아 출신 남성들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하층계급 여성들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부. 1. 혁명 전야의 풍경들

 

처음에 시청에 몰려가 빵을 요구하던 여성들은 국왕 루이 16세가 있는 베르사유를 향해 행진하기로 했다. 이들은 “빵집 주인과 그 아내를 찾으러 가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빵문제를 해결해 줄 국왕이었던 것이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은 처음에 7,000명 정도였으나 갈수록 증가하여 거의 만 명에 달했다. 여성들이 주도한 이 혁명적 행진에 남편들이 뒤를 따랐다.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5시경 파리의 여성들은 비에 흠뻑 젖은 채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빗속에 약 20킬로미터의 거리를 6시간 동안 행진한 여성들은 비에 젖어 진흙투성이가 된 치마를 입은 채 국민의회에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여자들은 의회의 연설을 중단시키고 외쳤다. “말은 더 이상 필요없다. 빵을 달라!” 

-1부. 2. 베르사유 행진과 여성들의 집단행동

 

가장이 무능하거나 사망해 홀로 된 여성들은 자녀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구걸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1789년을 전후하여 이어진 흉작과 기근의 시기에 이러한 일거리조차 구하기 어려울 때 여성들은 빵 폭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1789년부터 수년에 걸쳐 일어난 식량폭동에서 기소된 여성의 수가 남성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랑스 혁명기의 빵 폭동은 두드러지게 여성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녀부양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함께 여성들이 가족에 대해 더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부. 3. 민중 여성들의 다양한 투쟁 활동

 

여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쫓아내고 집안에 가둬두기 위해 이들은 여성의 본분은 오로지 가정을 지키는 데 있으며 조국을 위해 덕성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역할은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면서 훌륭한 공화국의 시민을 길러내는 일명 ‘공화국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포장은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묶어두려는 음모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대부분의 혁명파 지도자들이 반복적으로 주장했던 테마였다.

-1부. 4. 혁명기 남성들의 여성관

 

‘혁명의 여전사’, ‘자유의 여신’이라고 불린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는 생전에 이미 프랑스 혁명의 전설이 된 여성이다. 깃털이 달린 모자와 붉은색 프록코트, 옆구리에 칼을 찬 아름다운 아마존 여전사의 이미지에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적인 혁명 활동은 군중을 사로잡았으며, 자유와 평등을 위해 혁명에 투신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혁명의 상징이었다.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혁명의 고비마다 중요한 사건에서 이름이 거론되었으며, 자신이 하지 않았던 활동까지 덤터기 쓰면서 그녀의 역할은 과장되어 전해졌다. 여기에 넘어간 반혁명 귀족 세력이 그녀를 납치해 오스트리아로 끌고 가는 바람에 파리로 귀환했을 때는 혁명의 영웅이 되었다. -2부. 1. 혁명의 여전사,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라콩브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792년 7월 25일 의회 난간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여성이 의회 연단에 설 수는 없었지만, 방청석 난간에서 연설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프랑스 남부의 이름 없는 배우였던 젊은 여성이 의회 난간에 서서 수백 명의 남성의원을 상대로 연설을 한 것이다. 결코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 이날의 연설을 통해 라콩브는 연설가의 자질과 여성 전사의 진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서두에서 그녀는 자신이 프랑스인이며, 일자리 없는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2부. 2. 여성클럽의 투사, 클레르 라콩브

 

10월 31일 지롱드파 의원들을 실은 수레가 처형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혁명가인 마르세유 찬가를 불렀다. 11월 8일 롤랑부인의 재판이 열렸고 사형선고와 함께 그날 바로 처형되었다. 처형대로 가는 수레 안에서 그녀는 완전히 기운이 빠진 다른 사형수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그를 미소 짓게 했다. 수레가 지나는 길에서는 고함 소리와 욕설이 들렸다. 단두대 앞에서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는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2부. 3. 지롱드파의 여신, 마농 롤랑

 

프랑스 대혁명이 단두대에 올린 여성 가운데 올랭프 드 구즈는 정치적 글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매우 드문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지방 출신의 소부르주아로서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뜨거운 열정과 휴머니즘으로 사회적, 지적 도약을 이룬 매우 예외적인 여성이었다. 18세기 말,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정한 휴머니즘을 보여준 구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사상사에서 선구자로 새롭게 재조명되었다. 혁명의 열기와 함께 뜨겁게 불타오른 페미니즘의 열정을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발언한 여성도 올랭프 드 구즈였다.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로서 종종 여성 해방운동의 표상처럼 여겨지지만, 구즈는 페미니즘에 한정시킬 수 없는 폭넓은 휴머니즘과 정치사상을 보여주었다. - 2부. 4.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 올랭프 드 구즈

 

서평

혁명과 진보의 역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파리 올림픽의 모토는 ‘자유’, ‘평등’과 함께, ‘자매애sororité’가 ‘형제애fraternité’를 대신하였으며, 개막식에서 국가를 부르는 순간, 올랭프 드 구즈의 동상이 프랑스 역사의 진보를 위해 활약한 여성 위인 중 가장 먼저 등장하였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지속적으로 여성가족부 무력화와 폐지를 시도해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 탄핵판결을 지켜보며, 《프랑스 혁명을 다시 쓰다》의 추천사를 쓰고 있다. - 정영애 (전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학 박사)

 

이 책은 여성 서사를 다루고 있다. 혁명에 헌신한 여성들을 위한 만가다. 희미하게 잊혀 가는 그녀들을 애도하는 노래다. 혁명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지고 공화국의 대의를 위해,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여성을 지워버린 기존의 프랑스혁명사 서사에 대한 저항이다. 이 책은 거리의 민중에게 쥐어주는 촛불이다. 특히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 여성들을 위한 작은 응원봉이다. 행진하는 시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소리쳐 구호를 외치는 시위 대열의 옆자리 낯선 시민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프랑스 대혁명과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이인숙 박사의 책을 읽고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여성운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보여주는 ‘유리천장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국 가운데 28위이고, 젠더 임금격차는 가장 큰 국가이다. 이 책은 이처럼 열악한 수준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진출 수준을 되돌아보고 여성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할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을 제공해줄 것이다. - 부길만 (전 한국출판학회 회장)  

저자소개

저자 : 이인숙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소르본느누벨대학교(파리3대학)에서 프랑스 문화와 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최인훈 문학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고려대, 서울시립대, 서경대, 서울교육대, 명지대 등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와 집필 활동을 병행했다.
《여행 중 인문학을 만나다》를 출간했고, <고양신문>에 칼럼을 썼으며, 같은 신문의 ‘책과 사람’이라는 섹션을 맡아 매월 ‘이인숙의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 역사에 대해 좀 더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 프랑스 혁명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에 관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가운데 여성의 역할이 너무 폄하되고 소홀히 다루어진 것을 알게 되어 직접 책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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