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터널 속에서 가끔은 억울했습니다. 화려한 SNS나 육아서 속 ‘대단한 엄마들’처럼 살지도 않는데, 왜 내 육아는 이렇게 고단할까.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를 분노가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갔습니다.
아이를 안고 행복하게 웃는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는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지친 날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그런 나를 탓하며 점점 더 작아졌습니다.
몸도 약하니, 마음도 아주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육아만큼은 달라야 했습니다. ‘적당히’라는 말로 타협해버리면,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로 남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무렵 달리기를 만났습니다. 체력 좋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그 운동을, 아이를 낳고 체력이 바닥났을 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_약골 엄마의 시작
그날도 손목은 아팠고, 마음은 무기력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여느 때처럼 부러운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러닝크루 모집 글을 만났는데, 그 글은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나와 같은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함께 달리며 달리기로 변화된 삶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체력이 부족해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달려야 했다는 그 글은 강한 자석처럼 나를 단숨에 끌어당겼다. 단순한 부러움 이상이었다.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지긋지긋한 병원 뫼비우스띠를 끊을 수 있을지 몰라’라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언제가 나중에 한 번 해봐야지’ 하며 기회를 지나 보내던 내가, 그날은 아무것도 재지 않고 곧장 댓글을 달았다. 그만큼 절박했다. 나조차 몰랐던 내 몸과 마음을 어딘가로 데려가 줄 변화를 기다려왔던 걸까.
_유모차를 밀며 달릴 수 있을까
1분 달리기로 중요한 것을 배웠다. 내가 아무리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커다란 목표라도 그 시작은 작고 소박하다는 것. 유명하고 대단해 보여 부럽기만 했던 사람들도 모두 처음엔 ‘1분 달리기’ 같은 작은 것에서 출발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달리기를 망설이게 한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사실, 늘 약했던 나의 체력, 시간의 부족, 새벽의 무서움과 같은 나의 장애물들 또한 얼마든지 마음먹으면 넘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30분 달리기가 오를 수 없는 벽처럼 보이긴 해도, 1분씩 시작해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이라면 나도 언젠가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있는 희망이 생겼다. 육아에 묻혀 늘 아이에게만 향하던 내 일상에, 오랜만에 색달랐던 나를 향한 성취감이 등장했다.
_병원도 열지 못한 회복의 문을 열다
완주의 여운을 안고, 점심을 함께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한 분이 조용히, 하지만 지긋이 나를 보다가 불쑥 말했다.
“자영 님. 크롭티 입은 것 사진 하나만 찍어도 돼요? 자극 받으려고요.”
완벽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복근이 드러난 모습. 내가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는 몸을 갖다니. 다른 분도 얘기했다.
“상체만 보고는 몰랐는데, 하체가 탄탄하네요.”
순식간에 몸매 역변의 아이콘이 되었다. 쑥스러웠지만 기뻤다. 달리기로 달라진 내가 누군가의 동기부여가 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반전 아닌가.
_틈을 달려 도착한 하프
두 번째 러닝을 마친 뒤, 이 모임이 한 번 하고 끝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들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늘 그 자리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새벽의 별 같았다. 그래서 우리의 달리기를 기념할 이름을 지었다.
‘별빛러너즈’.
아이들이 잠든 새벽, 혹은 하루의 육아를 마친 밤, 별빛 아래에서 엄마의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러닝 모임이었다. 이 소식을 개인 SNS와 모집했던 단톡방에, 새벽을 함께 달린 사진과 함께 올리자 달리는 엄마들 모두가 멋지다며 응원을 보내주었다.
“멋져요. 별빛러너즈.”
“세상 멋진 엄마들.”
“엄마들의 러닝이여, 영원하여라.”
_별빛 아래 함께 뛰는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