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감명깊게 읽었다면,
이제 "럼과 라즈베리"를 만날 시간
『럼과 라즈베리』는 사건보다 감각을 먼저 호출하는 소설이다. 즉 서사보다는 소리, 향, 촉각에 집중하며, 그것으로 내용을 이끌어간다. 문장과 문단은 규칙적으로 정리되기보다, 감정의 리듬에 맞춰 길이를 달리하고, 의도적 분절과 불규칙을 남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 감각의 반복과 변주, 문장의 조화와 부조화는 무의식의 심리 구조를 밀어 올리며, 보이지 않는 플롯, 곧 ‘서사가 없다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서사’를 구축한다.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 독자 내면에서 조립되는 과정에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세계는 소리로 결박된다. 7.2초의 리듬, “도도솔솔라라솔”(‘반짝반짝 작은 별’)의 앵커, 60Hz대의 저주파, 폴리 사운드의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치직거림, 북소리 같은 태양 주파수. 이 소리들은 기억과 죄책, 상실과 애도의 층위를 미세 진동으로 떠올린다. 중요한 건, 작가가 소리를 단순한 효과음으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리는 여기서 인물들의 무의식을 가시화하는 심리적 기제이고, 독자에게는 공명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다. 그래서 장면은 설명 없이도 납득된다. 감각이 이해 앞에서 심상을 정렬하기 때문이다.
소리와 기억의 아키텍처가 빚어내는 초감각적 서사,
집단무의식과 상징의 직조술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주인공 호영이 겪는 청각적 과민 현상이다. 평형모래가 없이 태어난 그는 일반인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주파수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단순한 신체적 특징을 넘어서, 세계와 소통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한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신호로부터 건물 틈새에서 들리는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호영의 청각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런 감각적 특이성을 통해 현대인의 고립된 감성을 탐구한다. 등장인물인 진수가 50~60년대 흑백영화에 현대의 소리를 입히는 작업 역시 시간의 중첩과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를 서사화한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개념들은 단순한 이론적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동력이다.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화엄사상, 갈톤 보드의 확률분포가 보여주는 우연의 필연성, 회복 불가능한 변화라고 재정의되는 히스테리시스 등의 개념은 인물들의 정신적 여정을 설명하는 철학적 프레임워크가 된다.
원장과의 상담 장면에서 드러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불교 철학이나, 할아버지가 남긴 노루귀꽃에 대한 기억은 존재의 공허함과 충만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역설적 순간들을 창조한다. 이런 상징적 장치들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 바깥의 의미층까지 탐색하게 만든다.
현대인의 고독과 연결에 대한 갈망을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로의 초대
소설에서 소리를 듣는 귀는 신체 부위 중 가장 은밀하고 기이한 형태로 묘사된다. “좋은 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문장은 곧 ‘진실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귀는 청각기관을 넘어서, 기억이 증식하고 각인되는 배양소이며, 세계와 자아의 접지선이다.
호영과 채영의 관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연결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11년 만의 재회, 순록뿔 팔찌라는 매개체, 윤초라는 ‘덤으로 얻은 시간’에 대한 공유된 기억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주적 진동의 공명임을 시사한다. 이들이 천문대에서 함께 본 궁수자리와 라즈베리 향기는 우주와 개인의 내밀한 순간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한다.
작품은 현대 기술문명과 전통적 신비주의를 절묘하게 조합한다. 미디어 허브에서의 영화 제작 과정,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감각 차단 욕구, VR 기술을 통한 죽은 자와의 만남 같은 첨단 기술들이 등장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미족의 전통 음악 ‘요이크’, 무속신앙의 굿, 트랜지스터라디오 같은 아날로그적 요소들이 대등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이런 이중성은 황명희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된다. 성공한 광고 디자이너에서 아들을 잃고 바닷가로 이주한 그녀의 삶은 현대적 성취와 전통적 애도의 결합체다. 그녀가 운영하는 공연장에 설치된 ‘쓰나미를 겪은 피아노’는 재난과 예술, 파괴와 재생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까치집은 불안정하게 보이나 실제로 더 단단히 고정되는 구조를 가진다. 공학적으로 ‘재밍’(입자간 얽힘)이라고 설명되는 이 구조학적 개념은 소설에서 전유된다. 공간, 관계, 기억이, 그리고 망상, 현실, 사랑, 상실이 서로를 지지하며 의미를 창출해내는 과정 속에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언어의 음악성과 리듬의 서사화
분석심리학과 포스트모던의 실험
『럼과 라즈베리』의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향 작품이다. 문장의 길이와 호흡, 단어의 배치와 반복이 모두 청각적 효과를 의식해 설계되었다. “도도솔솔라라솔”이라는 음계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리프레인이 되고, 문장이 변주되며 나타나는 방식은 음악의 테마와 변주 기법을 소설에 도입한 실험이다.
특히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호영의 갈망, 할아버지의 전쟁 트라우마와 청력 상실, 그리고 호영 자신의 청각 과민이 삼중으로 겹쳐지면서 ‘듣기’라는 행위가 갖는 실존적 의미가 부각된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근본적 방식임이 드러난다.
병렬되는 감각의 조율을 책임지는 컴포지션은 『데미안』처럼 다분히 분석심리학적이다. 불규칙한 감각들이 ‘반복 – 전이 - 통합’의 곡선을 타고, 청자의 심리와 동기화된다. 소설이 요청하는 것은 페이지 바깥의 집단무의식이고, 기대하는 것은 작가의 문장과 독자의 독해 사이의 폴터가이스트다. 음악적인 문체가 말줄임, 쉼표, 중첩과 반전, 어휘의 잔광 설계에 참여하는 동안, 설명은 한 박자 뒤로 미루고, 텍스트의 감각이 앞서 연주된다. 융, 인드라망, 히스테리시스 같은 개념들은 주석이 아니라 장면의 리듬감으로 체화된다.
작품의 시간 구조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현재의 미디어 허브에서의 경험과 과거 채영과의 추억,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자유롭게 교차하면서 선형적 시간관을 해체한다. 윤초라는 ‘사라질 예정인 1초’를 중심으로 한 시간 철학은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이나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이론’을 연상시킨다.
애도와 치유의 새로운 문법
이 소설은 상실을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주파수, 윤초, 공명 같은 감각적 개념을 통해 애도의 물리를 제시한다. 헤아려지는 것이 아니라, 울린다. 할아버지의 죽음, 채영 어머니의 자살, 황명희 아들의 병사, 403호 소실점 남자의 실종까지, 작품에는 다양한 형태의 상실이 등장하며, 이들은 모두 소리라는 매개를 통해 추억되고 애도된다.
작품의 마침표와 함께 남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어떤 떨림이다. 럼과 라즈베리 향기가 우주에서 실제로 발견된다는 과학적 사실처럼,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 과학과 신비 사이의 경계를 지우며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