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미국 데스밸리에 있다. 4월인데도 그곳은 무려 59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가 때 이른 폭염으로 혼란을 겪는 중이다. 엄마, 아빠는 그 원인을 알아내려고 가장 더운 지역으로 연구하러 간 것이다. _25쪽
한때 포유류 멸종 위기를 겪었던 터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조건이 많이 까다로웠다. 실제 반려동물도 흔하지 않는 데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이겨 내고 살아남은 왕 할머니 고양이가 등장하자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했다.
“지금부터 은실이를 생물 분류 체계에 맞춰 설명해 볼게. 먼저 동물이니까 동물계고, 등뼈가 있으니까 척삭동물문이야.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포유강, 육식 동물이라 식육목. 마지막으로 과는 고양잇과, 속은 고양이속이야. 종은 코리안 쇼트헤어종이고. 호랑이나 사자와 과는 같지만 훨씬 귀엽고 사랑스럽지.”_35~36쪽
“그럼 지금 우리는 학교 건물에 갇힌 거예요?”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더 숨이 막혔다. 마치 한껏 달궈진 오븐 속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그새 아이들의 얼굴은 흘러내린 땀으로 번들거렸다. _44쪽
“방금 봤어?”
“응, 꼭 유령 같았어.”
리호와 나는 숨을 죽이며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묘하게 익숙하다 했더니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은 문 앞이었다. 그 순간,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도 움직이는 빛 덩어리 같은 것이 이 문 앞에서 사라졌다. _55쪽
응급 냉각복을 입은 우리 셋은 비장한 얼굴로 쓰레기 투입구 앞에 섰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탈출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쓰레기 투입구로 뛰어들었다. _83쪽
펑! 펑! 펑!
연이은 폭발 소리와 함께 주차장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주차된 바이크가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은실이가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가 저 불길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_91쪽
“고주파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돼. 아무튼 테라헤르츠파는 공기 중의 분자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파장이야. 원래는 보안 스캐너나 실험용 장비에 쓰여. 그런 데 누군가 이걸 도시 전체에 쏘아 올리고 있다는 거지. 그렇게 뜨거워진 공기가 커다란 이불처럼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고.”
놀란 리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누가 일부러 폭염을 일으킨 거란 말이야?”
“응. 더 뜻밖의 사실은 테라헤르츠파를 내뿜는 특정한 장소가 우리 학교라는 거야.” _125쪽
“아, 안 돼!”
막으려고 뛰어갔지만 이미 늦었다. 건조한 공기와 바닥에 흘린 오일 탓에 불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붉은 화염이 쉭쉭거리며 종이를 불태웠고, 펑펑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터졌다. 곧 시커먼 연기가 미술실에 가득 들어찼다. _140쪽
속이 타들어 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요란하게 주의를 끄는 리호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다음 순간, 라이언이 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찾았다, 이서림.”
소름 끼치는 전자음과 붉게 빛나는 눈. 살아 움직이는 전기 괴물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라이언, 서림이는 가만둬!”
라이언의 등 뒤에서 리호가 티타늄 검을 치켜들고 달려왔다. 반대편에서는 조이수 선생님이 바닥에 있는 나뭇가지 절단기를 들고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_168쪽
“너도 엄마도 표현할 줄 몰랐을 뿐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야. 사랑하니까 목숨을 걸고 널 구하러 오신 거잖아. 그러니까 진혁아, 엄마 만나러 가자. 만나서 서로 하지 못했던 말을 할 기회를 주자, 응?”
참고 있던 눈물이 진혁의 뺨 위로 흘러내렸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나 때문에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다쳤는데.”
“안 늦었어. 지금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건 너뿐이야.” _219쪽
리호와 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끝도 없이 이 어진 모래 언덕이 거대한 파도처럼 겹겹이 솟아 있었다. 그 사이로 불어온 뜨거운 모래바람이 얼굴을 덮쳐 따가웠다.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리호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사하라 사막으로 온 거야?”
“글쎄. 분명 좌표를 제대로 입력했는데…….” _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