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우리 전통주가 차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젊은 층이 전통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아예 직접 배우고 양조장을 열어 자신들의 취향에 맞춘 전통주를 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주 발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고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전통주를 직접 빚어보고, 전통주 교육을 하면서 우리 술의 깊은 맛과 멋을 체감해 왔다. 그런 과정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해 왔다.
책에서는 우리 전통주의 맛과 멋을 알리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미 잘 알려진 매력 외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전통주가 지닌 인문학적 가치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K-푸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K-푸드 발전을 위해선 K-술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일본의 스시가 세계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케와 함께였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전통주가 K-푸드와 함께 세계에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술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척도라 했다. 옛 선조들의 술 문화는 어땠을까. 선조들은 술을 마시는 데도 불문율을 지켜 왔다. 일종의 주도라고도 할 수 있는 풍류였다. 풍류는 멋스럽고 풍치 있게 노는 일이다. 하지만 단지 잘 노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어야 풍류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엔 풍류가 생활의 주요 영역이었다. 자연 속에서 술을 마시며 시, 서, 금을 즐겼다. 이때는 당연히 선비들의 술 문화가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화를 생산하는 모태가 되었다.
-p. 18쪽, ‘취흥은 시흥, 술자리에서 풍류를 배운다’ 중에서
윤선도는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난亂하고, 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되기 쉬워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조지훈은 “술에 취하지 않고 흥興에 취하기를 즐긴다. 오욕칠정의 잠재된 모든 감정을 술로 풀려는 것은 술의 사도邪道”라고 했다. 이처럼 술 때문에 생기는 폐해를 막고 예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도 있었다.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 서원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는 행사인 향음주례鄕飮酒禮였다. 하지만 향음주례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1895년, 기울어 가는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유생들이 향음주례를 핑계로 세 규합에 나섰고, 이는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일제는 이를 금지시켜 버렸다.
-p. 20, ‘취흥은 시흥, 술자리에서 풍류를 배운다’ 중에서
영조는 말년에 다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이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송절차 덕분이었다. 『영조실록』엔 송절차를 마시고 나서부터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송절차는 송절주다. 소나무 가지 마디를 채취해 말린 다음 빚은 술이다. 송절은 관절통, 신경통을 완화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송절주를 굳이 송절차로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영조는 재위 기간 대부분 금주령을 내렸다. 쌀을 주원료로 술을 빚다 보니 백성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데 술을 마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영조는 술을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신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하도록 했다
-p. 62, ‘금주령의 두 얼굴, 약차로 위장한 술’ 중에서
『고려대규합총서』엔 술맛이 아름답고 사나움으로써 주인의 길흉을 안다고 하였고, 술맛이 시고 나쁘면 주인집에 근심이 생긴다고 했다. 예전엔 양반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곳곳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이 중요한 소식통이자 돈 되는 최신 정보를 가진 정보원이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항상 앞서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연히 술맛이 나빠지면 과객이 줄고,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없으니 주인집엔 근심이 생기는 것이다.
-p. 74, ‘고문헌 속 우리 술 이야기’ 중에서
우리 전통주 빚기에 숨은 과학은 물누룩인 수곡을 만드는 과정에도 들어 있다. 단양주를 빚을 때 사용하는 수곡은 누룩을 사용하기 전에 물속에 3~5시간 담가 둔다. 바짝 말라 있는 누룩 속 미생물을 미리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누룩 속의 효모는 본격 활동에 앞서 8시간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다. 이 시기가 술 빚기에서 외부 잡균에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시기다. 결국 수곡을 만드는 이유도 이 잠복기를 줄여 효모가 더 빠르게 알코올을 만들어 내게 하기 위해서다.
쌀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술을 빚는 것도 술의 맛과 향을 다양화하고 좋게 하는 방법이다. 밑술을 죽이나 범벅, 떡 등의 방법으로 빚어 술의 맛과 향을 살려 놓고, 마지막 덧술에 고두밥을 넣어 주어 알코올 도수를 올려 준다. 하나의 술을 만드는 과정에 여러 가지 쌀의 가공 방법을 써서 다양한 풍미를 내는 것이 우리 전통주의 매력이다.
-p. 86, ‘술 빚기는 철저한 과학이다’ 중에서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조선 선조 대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송강 정철(1536~1593)이 선조에게 하사받은 은술잔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은술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는 술을 너무나 좋아했고, 술 때문에 구설이 잦아 반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조는 그에게 은술잔을 내리며 하루 석 잔만 마시라고 명했다. 그러나 어찌 하루 석 잔에 만족하랴. 어명을 어길 수 없었던 그는 술잔을 두드려 크기를 늘린 후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식사 때 반주로 마시는 술도 한두 잔이었다. 『동의보감』에 전하는 적정 음주량 석 잔, 선조의 어명인 하루 석 잔, 반주로 마셨던 한두 잔도 정확한 측정치는 없지만 아마도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하루 적정 음주량 이내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p. 115, ‘전통주의 적정음주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중에서
책에 수록된 동정춘 빚는 법을 보면 쌀 11㎏에 물은 불과 1L만 쓴다.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단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술맛은 많이 달다. 실제 ‘꿀보다 달다’고 기록해 뒀을 정도다. 워낙 단맛이 강해 전통주 강의 교육 과정에서 동정춘 빚기를 실습할 때는 『임원경제지』 레시피 절반의 쌀을 사용한다. 쌀 6㎏에 물 1L를 쓴다는 뜻이다. 쌀의 양을 절반 정도 줄였지만 발효가 끝난 이후 술의 단맛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단맛만 강하다면 좋은 술이 아니다. 동정춘은 쌀과 누룩, 그리고 극히 적은 양의 물만으로 빚는 술이지만 완성된 술은 다양한 과일 향과 꽃 향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주 교육을 받은 분들이 수시로 교육원에 와서 동정춘을 빚는다. 수업 중 실습으로 만들었던 동정춘의 맛과 향이 너무 강렬해서다. 발효실에선 또 다른 팀이 빚은 동정춘이 익어 가고 있다. 3개월 교육 과정 중 매주 여러 종류의 술을 빚었으면서도 유독 동정춘에 끌리는 모양이다.
-p. 140, ‘숨겨 두고 혼자 마시는 술, 동정춘’ 중에서
요즘은 웬만한 술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차게 마신다. 맥주도, 와인도, 막걸리뿐 아니라 증류 소주도 그렇게 한다. 좋은 방법은 아니다. 술의 온도가 너무 차가우면 그 술의 향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술맛도 날카롭다.
맥주를 예로 들어보자.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10%~14%로 높고 단맛이 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온도가 15℃ 정도일 때 마셔야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차가울 땐 맥주의 향을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맛이 날카로운데, 온도가 올라갈수록 향이 살아나고 맛도 부드러워진다. 냉장고에서 금방 꺼내서 마실 때와 한 시간쯤 지나고 맥주 자체의 온도가 올라갔을 때 맛과 향은 천지차이다.
우리 술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식 소주의 경우는 술의 온도가 상온에 가까울 정도로 해서 마시는 게 좋다. 그래야 높은 도수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알코올 향을 부드럽게 느낄 수 있다. 아직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밥을 담은 식기의 뚜껑에 증류 소주를 따라 마시던 추억을 가끔 이야기한다. 뜨거운 밥을 담았던 식기의 뚜껑에 차가운 소주를 부으면 적당하게 따뜻한 상태로 온도가 올라가 소주의 향과 맛이 확 살아나게 된다.
-p. 192,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우리 술도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