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서명만 하면 너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그런 집에서 말이야.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지.”
“그게 뭔데요?”
“내 재판의 증인이 되어줘야 해.”
도 선생이 은비의 손에 펜을 쥐여 주었다. 은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 p 79
“저승할망. 재심을 신청하려면 삼천 년 전 대결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오. 그런 증거를 가져왔소?”
그러자 도 선생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저 아이가 바로 증거입니다.”
“어떤 증거란 말이요?”
“삼신할망이 아이를 잘못 점지했다는 것을 밝혀줄 증거지요.”
- p 96
“사람이 살려면 꼭 필요한 게 있어. 그게 뭔지 알아?”
“뭐요? 돈이요?”
“아니, 사람에게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해. 세상은 거지 같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하등 쓸모없지. 그래서 이가연은 지금 살고 싶지 않아 해. 하지만 모순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제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럼, 그게 필요하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 p 115
“공명진혼북은 원래 혼자서는 못 들어. 여러 영혼이 힘을 합쳐야만 들어 올릴 수 있거든. 그만큼 네 사연에 공감하는 영혼이 많아야 북이 울리는 거야.”
“그러면 여러분! 저 좀 도와주세요.”
은비는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언제나 ‘도와달라’고 하면 지는 거로 생각해 왔다. 사람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까 두려워, 늘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런 은비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낸 순간이었다.
- p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