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집 근처의 부동산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누군가의 이사 소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갈아타기가 1년 가까이 걸릴지도, 내가 나무를 3번이나 심게 될지도, 여러 위기를 겪으며 눈물을 훔치게 될지도, 결국 강남에 살게 될지도 말이다. _p.25
부동산 찾는 법
1. 네이버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한다(앱 기준으로는 ‘네이버페이’를 켜고 ‘부동산’ 탭을 클릭한다).
2. 원하는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거나 지도에서 클릭한다.
3. 올라온 매물을 확인하고 하단에 있는 담당 부동산을 체크한다. 매물을 많이 가진 사장님이 영업력이 있는 분이다. 매수자라면 그런 분에게 가자.
4. 하지만 매도자 입장에서는 매물을 많이 가진 사장님이 꼭 좋은 건 아니다. 갖고 있는 매물이 많은 만큼 내 물건에 신경을 덜 써줄 수 있기 때문. _p.30
군대 이후로 내가 삽을 든 적이 있었던가? 아, 이거 삽 아니고 괭이지. 집을 팔려면 나무를 심을 줄 알아야 하는구나. 이게 다 내 집이 저층인 탓이구나. 이번에 갈아탈 때는 절대로 저층은 사지 말아야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저층인 내 집이 원망스러웠다. 단지 운이 좋게 부동산 하락기에 결혼을 해서, 단지 운이 좋게 청약이 되고, 단지 운이 좋게 상승기를 맞아서, 오로지 운이 좋은 덕분에 이만큼의 자산을 불릴 수 있게 된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_p.75
“매물 하나 나왔는데 직전 거래보다 3억이 비싸네요. 이건 좀 그렇죠? 매물 나오면 알려달라고 하셔서… 혹시 몰라서 연락드렸어요.”
3억이요…?
3억이 올랐다구요? 1억도 아니고 3억이요…?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멘붕’을 경험했다. _p.102
— 오, 이런 게 있구나. 역시 부동산도 학원이 있었어.
그때 온라인에서 부동산 세미나를 발견했다. 유료였지만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학원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숙제가 생기는데, 그걸 어떻게 푸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십 대 후반 가장의 국영수는 육아, 회사 생활, 재테크였다. 빵점은 절대로 안 되지. 50점도 안 돼. 최소한 80점은 맞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부동산 사교육이었다. _p.108
피하고 싶었다. 안주하고 싶었다. 늘 그랬듯이. 여기서 그만둬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게다가 대출을 일으켜서 내는 원리금, 양도세, 인테리어비 등 각종 비용 아껴서 여행도 가고, 다람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나?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 핑계 대지 마. 지금 포기했다가 나중에 그때 갈 걸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때 너처럼 전학시킬 거야? 초등 전에 학원가에 자리 잡아. 지금 말고 기회는 없어. 안 그러면 12년 동안 꼼짝 못 한다. 힘든 상황에 마침 아버지가 반대하시니까 그만두고 싶은 거다. 가족 핑계 대지 말자. _p.137
집으로 출발하기 전 상가 화장실에 갔다.
“아니, 집도 안 팔고 급매를 달래. 웃겨 정말.”
부동산 사장님이 상가 복도에서 통화하는 소리였다. 사장님의 속마음을 이런 식으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내 만 원짜리 셔츠를 한눈에 훑었을 때부터. 책상 위 비타민 음료가 내 앞엔 놓이지 않았을 때부터.
지나가다가 어색하게 마주칠까 봐 휴대폰으로 고개를 내렸다. 까만 휴대폰 액정에는 바보 같은 내 얼굴만 비쳤다. p. 175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도곡동에 갔을 거다.
아니, 지금의 나였다면 가격을 더 낮춰 빨리 팔고, 잠실로 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딸이 없었다면 두말없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택했을 것이다.
아니, 딸이 없었다면… 이렇게 부동산에 관심 갖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각자의 열망과 의지가 충돌하는 곳, 세상은 복잡계다.
9분. 내 운명이 바뀐 시간이었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서, 나는 결국 도곡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쩌면 원래부터 정해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_p.253
“니 우리 거래한 거 딴 부동산에 다 불었제?”
— 예? 어… 에에?
“아직 계약금도 다 안 넣었는데, 니 뭐하는 짓이고?”
— 아…. 어제 그… 양심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서요…. 그… 계약했다고…. 말을 하긴 했어요. 왜… 왜요?
“양심 부동산? 그 새끼 또 물건 뺏어갈라고 작업했나 보네! 거기서 집주인 아들한테, 1억 더 비싸게 팔아준다꼬 계약 깨라 캤다. 지금 아들 찾아와서 계약 파기하겠다고 난리다, 난리!”
— 네? 아니… 잠깐만요.
흥분하자 더 심해진 사투리 억양 속에서도 하나는 확실하게 들렸다. 계약 파기. _p.297
사람은 이미 갖고 있어서 익숙한 것에는 감사할 줄을 모른다. 나 또한 그저 빨리 팔고 싶을 뿐이었다. 잔금 빠르게 주는 매수인을 찾았다. 잔금일이 빨라질수록 우리 집과의 이별이 빨라진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강남에 그토록 가고 싶었으면서, 익숙한 집과 이별한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사는 동안 정말 행복했던 집, 받은 것만 많았던 집. 저층이라고 무시받던 집, 몇 천씩이나 네고해서 파느니 그냥 여기서 평생 살련다 말했던 집, 우리 가족이 몇 년 동안 행복하기만 했던 집. _p.361
“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는 교과서 문장으로 이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 분명 이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신감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자산이다. 끝까지 해냈다는 뿌듯함과 가족이 느끼는 안정감 같은 것들은 부동산 시세 뒤편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세상에는 항상 위가 존재한다는 걸. 이사를 와도 더 비싼 아파트, 더 넓은 평수, 더 화려한 신축이 있다. 새로운 욕심이 고개를 든다. 그 욕심만 쫓을수록 지금 발 딛고 있는 자리의 가치를 잊게 된다.
여전히 다음 계획을 세우지만, 동시에 지금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그래서 매일 감사하고 행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노력을 해서 그런 건지, 진짜 행복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행복은 남의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난 나를 인정했다. 나의 노력들을. _p.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