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이 영화를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멘토’였다. 나도 다섯 손가락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나답게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멘토를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p30. 손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다섯 손가락뿐인 나에게는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길이 없었기에, 나는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메타버스 강사가 되었 으며 유튜버가 되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동기부여 강연을 하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길이 안 보이면 그 냥 내가 만들며 가면 된다는 것을.
p54. 그래서 아주 특별한 노력을 하는 장애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학력 수준이 높지 않았다. 내가 그런 편견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학위를 정식으로 받아 장애인도 똑똑하고 공부를 깊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p69. 내게도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과 힘들어하며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굳이 비결이라고 한다면 다섯 손가락밖에 없었기 때문 에 열 손가락 있는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는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p76. ‘다섯 손가락으로 살면서 열 손가락 아이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고 열등의식이 있다고 하다니. 그냥 열심히 한다고 해주면 안 되나?’ 
 
p109. 조금 뒤 시댁 식구 들도 왔다.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뒤집어 보더니, 남편의 누나는 ‘열 손 가락이야!’ 라고 외쳤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다섯 손가락인 것이, 시댁 식구들에게 얼마나 큰 걱정거리였을지를. 그래서 아들이 더 고마웠다. 
 
p114. 아이는 지루해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엄마의 말에 따라줬다. 나는 그 모습에서 세상을 봤다.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그 작은 손동작 에서, 나는 삶의 복잡한 퍼즐이 하나로 맞춰지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그때 나는 내 아들이 있다는 것이, 단지 나의 후손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메우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p120. 아이를 키우며 배운 가장 큰 진리는 이것이다. 세상이 날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아이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라는 것.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나는 장독대 위에서,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p135. 인생이란 기어갈 때도 있고, 걸어갈 때도 있고, 뛰어갈 때도 있다. 나는 기어간다고 다그치기보다는, 기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p145. 나는 그저 ‘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서 나간 자리였고, 결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았 는데, 선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우리 집에 장 애인은 너 하나로 족하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이 내 마음 에 꽂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p184.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만 내 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내게 장애가 있다면, 그건 내 몸이 아니라 나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내가 살고 있는 구조, 내가 마주치는 문턱과 계단, 나를 의심하는 말과 표정이 곧 나의 ‘장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