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주는 동시집
동심 가득한 세계로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 청개구리 출판사의 동시집 시리즈 〈시 읽는 어린이〉의 84번째 동시집 『일 년에 한 번은』이 출간되었다. 이 동시집은 『들고양이 노이』, 『그래도 넌 보물이야』, 『봉놋방 손님의 선물』 등 문학성 높은 동화를 꾸준히 써온 김옥애 동화작가의 두 번째 동시집이다. 작가는 2011년 동시집 『내 옆에 있는 말』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로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6년 만에 출간된 이번 동시집은 첫 번째 동시집에서보다 시인의 시선이 넓어지고 시의 수준도 깊어진 특징을 보인다. 60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어린 독자가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면서도 그 안에 깊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여기 좀 봐 주세요/담벼락 아래/혼자 자라난 풀이지만/아무도/눈길 주지 않지만/
나도/일 년에 한 번/이렇게/향기로운 풀꽃을 피웠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전문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누군가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 좀 봐 주세요’라는 이 문장은 큰따옴표는커녕 느낌표 하나 붙이지 않은 탓에 여차 하면 놓쳐 버릴 만한 작은 속삭임처럼 들린다. 이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담벼락 아래 혼자 자라고 있는 풀이다. 다른 꽃처럼 화려하거나 향이 진하지 못해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풀꽃.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걱정이 되려는 순간, 우리는 풀꽃의 마지막 말을 듣게 된다. “나도 일 년에 한 번 이렇게 향기로운 풀꽃을 피웠습니다.” 그러자 풀꽃은 동정의 대상에서 고독하지만 강인하고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김옥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외되고, 부족함이 많은 어린이라도 누구나 한 번은 이 풀꽃처럼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은 1부에서 「뿌리, 「풀씨」, 「마당에서 풀이」「내 차례야」 등의 작품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그러면서도 김옥애 작가는 첫 번째 동시집에서 그랬듯이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욕심쟁이」란 작품에서는 무씨가 한꺼번에 싹이 트는 바람에 새싹을 솎아내는 임무를 맡게 된 아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무씨 하나를 솎아내면 무 하나를 뽑아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눈앞에서 무 하나씩 사라져 가는 꼴이니 아까워 솎아내질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비슷한 경험 하나쯤은 있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한때는 결코 밉지 않은 욕심쟁이였던 셈이다. 「이상해요」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잘못했다가 반성하는 아이를 칭찬해 준다. 오히려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착한 아이는 칭찬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화자는 이 점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요, 억울할 법도 하다. 아이의 솔직한 목소리가 시가 되는 순간이다.
시간은 놀다 가는 게 아닌가 봐/내 키도 키워 놓고/내 발도 크게 만들어 주고/친구 미워한 마음도 잊게 해 주고/창 밖 나뭇잎도 물들여 주고/시간은 놀다만 가는 게 아닌가 봐.
―「시간은」 전문
「시간은」은 4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 시는 시간이 놀다만 가는 게 아니라 나를 비롯하여 자연 안의 모든 것을 성장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그저 할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 년에 한 번은』이란 동시집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고 있을 독자의 시간은 또 어떤 귀한 일을 행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