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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전쟁, 만들어진 중국


  • ISBN-13
    979-11-86036-87-7 (93300)
  • 출판사 / 임프린트
    나름북스 / 나름북스
  • 정가
    2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9-0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한담
  • 번역
    -
  • 메인주제어
    사회, 문화: 일반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사회, 문화: 일반 #중국문화 #한국전쟁 #중국문학 #중국영화 #항미원조 #문화이론 #문화연구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205 mm, 420 Page

책소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기억을 문화적으로 추적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다. 우리가 ‘한민족의 비극’으로 기억하는 한국전쟁을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이라 부르며,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서사로 다뤄왔다. 이 책은 문학과 영화, 연극 등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참혹한 체험 대신 ‘상상 속 전쟁’을 통해 형성된 중국인의 집단 기억, 1950년대 혁명적 서사에서 201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항미원조는 늘 정치와 문화의 교차점에 존재해 왔다. 특히 참전 70주년인 2020년 이후 중국에서 항미원조가 다시 국가 기억으로 소환되며, 미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인의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고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전쟁을 국제전의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적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끝나지 않은 중국의 한국전쟁 항미원조

1부 마오쩌둥 시대 신중국의 탄생과 항미원조 기억의 형성

1장 1950년대 전쟁 시기: 전쟁 동원과 신중국의 형성
1. 항미원조 전쟁과 동원: 전쟁으로 하나 된 신중국
2. 새로운 중국 상상: 문학 속 냉전적 세계관
1) 웨이웨이: ‘계급정체성’ 서사의 초석
2) 양숴: 민족주의 정서의 냉전적 전환
3) 루링: 인도주의로 바라본 전쟁 비극
3. 새로운 중국인의 탄생: 신주체와 국제주의
1) ‘가난한 자’에서 ‘해방된 농민’ 지원군으로: 신주체의 탄생
2) ‘조선’이라는 거울: 국제주의의 형성

2장 1960년대 전쟁 회고: 항미원조 기억의 첫 소환
1. 사회주의 위기 속 전쟁의 재소환: 항미원조 영화의 흥기
1) 중국의 혁명 위기와 항미원조 기억의 소환
2) 신중국 영화사에서 항미원조 영화의 위치
2. ‘프롤레타리아트전사’ 로 진화한 신주체
1) ‘해방된 농민’에서 ‘무산계급 전사’로
2) 문화대혁명 전야, ‘혁명후계자’의 탄생
3. 국제주의 세계관의 확장: 혁명 열기 속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AALA’와 조선
1) 새로운 혁명 공간, ‘AALA’: 항미원조 서사의 재구성
2) ‘두 개’의 조선: 항미원조의 의미 변화

3장 문화대혁명 시기: 세계혁명의 꿈과 항미원조
1.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양판희’의 부상
2. 항미원조, 조선인민전쟁으로 다시 읽다: 〈기습백호단〉
3. “전 세계 인민이여 단결하라”: 〈해항〉과 제3세계의 연대

2부 포스트 마오쩌둥 시대: 변화하는 기억과 항미원조 서사의 재구성

4장 1980년대: 영화 〈마음 깊은 곳〉과 포스트 사회주의 문화 재구성
1. 탈냉전기 전쟁 기억의 귀환: 항미원조의 새로운 의의
2. 전쟁의 그늘 속 ‘생존자’의 이야기
3. ‘혁명’ 가정에서 ‘혈연’ 가정으로
4. 전쟁과 젠더: 여성 인민지원군의 등장과 한계
1) 마오쩌둥 시기, 항미원조 서사 속 여성화된 북한
2) 신시기, 항미원조 서사 변화와 여성 지원군의 등장
3) 신시기, 여성성의 회복과 사회문화적 함의

5장 2010년대: 영화 〈나의 전쟁〉과 항미원조 기억의 균열
1. 항미원조 기억의 어제와 오늘
2. 〈나의전쟁〉(2016)과〈영웅의 아들딸〉(1964): 같은 전쟁, 다른 기억
1) 지원군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2) 1960년대 중국의 새로운 정체성과 항미원조 기억의 재구성
3) 오늘날,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3. 영화 홍보 영상이 촉발한 전쟁 정당성 논란

6장 2020년대: 항미원조 국가 기억의 부활과 문화 내셔널리즘
1. ‘애국애당’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항미원조
2.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공식 기념식과 ‘문화의 밤’ 공연
3. 항미원조 문화콘텐츠 제작의 확장과 변화
4. 영화 〈장진호〉 시리즈와 〈저격수〉의 내셔널리즘 재현 양상
1) ‘굴욕의 세기’에서 ‘승리’로, 영화 〈장진호〉 시리즈
2) “가정과 국가는 하나다”, 영화〈저격수〉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인용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당대 중국의 문예는 창작부터 출판, 소비, 선전, 비평에 이르기까지 당의 철저한 관리 아래 조직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진 문예 창작 메커니즘 속에서 이뤄졌다. 당대 중국 문예 실천의 첫 장을 열어젖힌 항미원조 문예는 당대 문예에 큰 영향을 미친 옌안 시기의 해방구 문예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당대 문단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접합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통치구역인 해방구와 국민당 통치구역인 국통구 등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은 항미원조 선전과 창작 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단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작가들에게 조선 방문과 전선 생활 경험, 그리고 항미원조 문예 창작이 일종의 문단 입성 신고식이 된 것이다. 42

 

루링이 그린 지원군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전형적인 영웅보다 복잡하고 현실적인 존재였다. 루링은 자신의 기존 창작 특징인 혼란의 시대 속 중국 지식인과 하층민의 갈등, 분투, 상처를 다룬 서사에서 벗어나, 신중국의 광명과 새 희망을 담고자 노력했고, 이를 위해 혁명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조선으로 자원해 직접 현장을 체험하며 창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정치적 요구와 창작의 본질적 추구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인간 내면의 탐구자’로서의 문학적 사명을 놓지 못했다. (…) 이미 여러 차례 받은 비판을 통해 자신의 창작이 당대 문단과 충돌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루링은 죽음과 직면한 찰나에 한 생명의 독자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고수했다. 80-81

 

작품 속 지원군의 전투 의지는 애국심과 국제주의 정신으로 촉발되며, 이는 대개 신중국에 대한 만족감에서 시작해, 전쟁 발발로 인한 국내 반혁명 세력의 재등장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항미원조 투쟁과 보가위국의 필요성으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를 따른다. 따라서 작품 도입부에서는 대다수가 해방된 농민 출신인 지원군들이 건국 이후 ‘새로운’ 중국에서 누리게 된 삶의 변화를 강조한다. 내 땅과 집을 가지게 되었으며, 가난 때문에 지주에게 팔려갔던 동생이 학교에 다니고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등 구중국과는 확연히 달라진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국경 너머 조선이 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참혹하게 파괴된 모습을 보며, 그들은 다시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을 유린했던 기억은 미 제국주의가 일제와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거쳐 중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이야말로, 농민 출신 지원군들이 조선 인민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가 된다. 108-109

 

대중 서사인 항미원조 문예 속에서 형성된 1950년대 조선 형상화 패턴은 북·중 간 혁명 전우애를 강조하는 서사와 조선 남성과 성인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탈남성화·탈성인화 서사의 두 가지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탈남성화·탈성인화 패턴이 주류를 이뤄, 여성과 아동만 남은 조선은 남성이자 성년인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의 보호가 필요한 ‘피보호자’로 그려졌다. 전쟁이 실제로 진행되던 당시에는 혁명적 전우애나 ‘과거에 조선이 중국의 혁명을 도왔으니 이제 우리가 보답해야 한다’라는 도의적 차원보다, 전쟁 피해자인 조선 여성과 아동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 대중의 지지와 지원군의 투지를 고취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 제국주의가 초래한 전쟁의 참혹함을 극대화하고, 중국 또한 과거의 암흑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여 ‘보가위국’의 필요성을 부각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조선 형상은 과거 천하 제국 시기, 대국으로서의 중국이 아시아에 대해 가졌던 절대적 우위와 민족적 자존감을 새로운 냉전 질서에 맞게 변용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126

 

항미원조 영화가 전성기를 맞이한 세 번째 시기 영화와 두 번째 시기의 대표작 〈상감령〉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 속 조선의 등장 여부에 있다. 〈상감령〉은 조선에서 벌어진 전투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그 존재감은 크지 않다. 영화 초반, 조선인민군 장교가 중국지원군 사단장에게 전화하여 전투 정황을 알리는 장면 외에는 북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지원군이 어디에서 누구를 돕기 위해 싸우는지 알 수가 없으며, 영화는 오로지 중·미의 대결, 즉 ‘중미전쟁’처럼 그려진다. (…) 반면, 1960년대 항미원조 영화 속에서는 ‘사회주의 조선’의 구체적인 표상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인민군, 조선의 아버지와 어머니, 여전사와 같은 인물들이 그려질 뿐만 아니라, 1950년대 문학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승만의 위군(僞軍)’으로 묘사된 남한군까지 등장하면서 영화는 ‘두 개의 조선’을 보여준다. 150-151

왕청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과 조명, 주변 배경, 음향효과 등은 문혁 시기 영웅 인물을 묘사하는 연출기법과 유사하다. 왕청은 하늘을 배경으로 고지 위에 당당히 서 있으며, 그의 실루엣은 빛을 받아 더욱 상징적이고 숭고하게 표현된다. 폭탄봉을 든 그의 모습은 단순한 전사 이상의 존재로 형상화되며, 혁명과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영웅적 전사의 이상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 왕청의 죽음은 소설 속 샤오류처럼 두 다리를 잃어야만 하는 전쟁의 참혹함도 없고, 동생 왕팡의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영웅의 죽음이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으로 처리되는 방식은 ‘17년 시기’ 전쟁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77-178

 

사실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 탄생 이후, 단 한 번도 완벽한 동맹을 이룬 적이 없었다. 두 나라는 항미원조 전쟁 기간에도 ‘전쟁의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로 갈등했으며, 중·소 논쟁 시기에도 소련에 반대하는 이유가 서로 달랐다. 결정적으로, 북한은 중·소 갈등 당시 중국 쪽으로 기울면서도 소련과의 관계를 배려하면서 ‘중국일변도’는 회피하고 ‘주체’를 강조하는 독자노선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쨌든, 항미원조 전쟁 이후 북·중 관계가 매우 긴밀한 시기로 평가되었던 해가 1963년이었다. 특히, 당시 미·소 양 진영으로부터 고립된 중국에 제3세계는 유일하게 교류할 수 있는 ‘세계’였고, 그중에서도 북한은 지리적 위치로나 전략적으로 소련을 견제하면서도 AALA 국가들의 민족해방을 중국 인민이 몸소 느낄 수 있게 하는 우방이었다. 북한 역시 중·소 대립을 이용해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203-204

 

1960년대 영화 속 어머니는 더는 전쟁 속에 아들을 잃고 눈물을 적시는 연약한 피해자의 형상이 아니다. 또한, 중국 지원군을 아들처럼 여기며 밥을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에 머물지도 않는다. 미군에게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따지고, ‘우리 땅 조선에서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강인한 어머니다. 이 시기 조선의 부녀 형상은 과거의 역할, 즉 지원군에게 구사회의 고통을 되새기며 머지않아 자신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자극하는 ‘거울’ 역할에서 벗어나, 조선의 민족해방과 혁명 실현의 주체로서 더욱 강인하고 역동적으로 형상화되었다. 210-211

 

항미원조 전쟁은 외세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는 민족주의 전쟁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을 발휘하여 미 제국주의로부터 ‘계급의 형제’인 북한을 돕는 ‘국경 밖’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항미원조의 특수성으로 인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하고 전투원 인민지원군의 전의를 고무하고 격려하는 ‘타자’의 역할, 즉 전쟁의 수난자는 ‘중국/여성’이 아닌 ‘북한/여성’이 담당했다. 이에 따라 항미원조 문예 속 북한은 대부분 유일한 ‘보호자/남성’인 중국 지원군과 그들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북한 여성과 아동으로 묘사되었고, 인민군을 포함한 북한 남성은 서사에서 아예 삭제되거나 축소되었다. 이런 특징은 전 인민의 참전 지지와 동원이 절실했던 전쟁 시기 문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99

 

논란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향후 항미원조 전쟁을 다룬 작품들은 중국의 대중문화에서 부단히 시도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아편전쟁’이 서구 문명에 의한 중화제국의 몰락이라는 ‘굴욕’을 상징한다면, ‘항미원조 전쟁’은 제국주의와 식민으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굴욕을 끊어내고 다시 일어선 ‘승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중심에는 ‘중국공산당’이 있다. 따라서 공산당이 집권하는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항미원조’에 내포된 ‘혁명’과 ‘내셔널리즘’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반미’와 ‘친북’의 기억은 이념보다는 국익에 따라 적절히 소환될 것이다. 350

 

마오쩌둥 시대와 달리 시진핑 시대의 항미원조 서사는 ‘공산당의 위대한 승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열강에 침략당해 온 중국’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민족적 치욕을 부각하는 중국의 근현대사 교육은 기존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에 봉착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다. (…)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가 통합 논리로 부상했으며, 특히 외부의 적에 대한 저항적 내셔널리즘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인민을 결속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항미원조는 장기간 이어질 중·미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새로운 불씨가 되어 인민을 단합하고 ‘대미항전’을 승리로 이끌 가장 강력한 ‘설욕’의 서사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384-385

서평

경험이 아닌 기억으로, 여전히 소환되는 전쟁
70년 동안 중국과 중국인의 정체성을 세우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은 ‘항미원조’다.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돕고, 나아가 내 집과 나라를 지킨 전쟁이라는 의미다. 항미원조 전쟁과 그 기억은 오랫동안 ‘반미’ 이데올로기를 고취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제로 작동해 왔다. 전쟁 동원기, 문화대혁명 시기의 상징화, 개혁개방 이후의 망각, 그리고 최근의 재소환에 이르기까지, 항미원조는 중국 사회의 집단기억과 국가 정체성 형성을 이끌어온 핵심적 매개였다. 이 책은 마오쩌둥 시기부터 시진핑 시기까지 이어진 항미원조 서사를 문학과 예술의 기록 속에서 추적하며 통시적으로 분석한다.

1950년대 항미원조는 군사전투를 넘어 전국적 동원, 문학·영화·연극을 통한 문화 선전으로 확산하며 사회주의 세계관과 계급 질서를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게 했다. 1960~70년대 회고와 문화대혁명 속에서 ‘혁명적 승리’로 재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 이후에는 정치·외교적 부담 속에 잊혔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된 2020년대, 항미원조는 다시 국가 기념식과 대규모 콘텐츠로 부활해 ‘애국’과 ‘저항’의 감정을 결집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항미원조가 ‘직접 경험된 전쟁’이 아니라 ‘상상된 전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인의 대다수에게 한국전쟁은 문화적 재현을 통해 접한 전쟁이었으며, 이를 통해 반미 이데올로기와 애국주의가 내면화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전쟁사를 군사·정치적 사건으로만 다루는 기존 연구와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항미원조의 기억사는 국가가 만든 것이지만, 동시에 중국 사회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오늘날 항미원조는 그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기억으로 부활해 중국인의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현재진행형 담론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한국전쟁을 동아시아 냉전사의 문화정치학적 차원에서 재조망한다. 이로써 중국의 집단기억이 어떻게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되었고, 그 기억이 오늘날 어떤 정치·문화적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중국인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인지에 관해 가장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은 혁명의 언어로 살아났다
신중국을 세운 집단적 신화이자 정치적 서사, 항미원조

첫 장 ‘1950년대 전쟁 시기: 전쟁 동원과 신중국의 형성’은 항미원조 전쟁이 신생 중국의 국가 정체성과 국민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다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중국은 경제적·사회적 혼란과 국제적 고립에 직면했다. 미국과 대립하면서 ‘친소반미’ 노선을 택한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국가 생존을 도모하고 사회주의 질서를 공고히 했다. 전쟁은 국경 방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정권을 대중적으로 정당화하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키는 기회였다. 정부는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구호 아래, 전국적인 선전·동원 운동을 조직했으며, ‘삼시(미국을 증오·경멸·멸시)’ 교육을 통해 반미 의식을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항미원조는 사회주의 개혁정책(토지개혁, 반혁명 진압, 지식인 사상개조)과 결합해 ‘인민’과 ‘비인민’을 구분하는 정치적 과정으로 작용했다. 또 문학·예술은 새로운 국가의 가치와 세계관을 구체화하는 데 핵심적 수단이 되었으며,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다수의 중국인들에게 ‘상상된 전쟁’을 경험하게 했다. 결국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을 냉전 질서 속에 편입시키고, 사회주의 신질서 속에서 인민을 조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장 ‘1960년대 전쟁 회고: 항미원조 기억의 첫 소환’은 전쟁 종결 후 약 10년이 지나 항미원조 기억이 어떻게 재소환되었는지 보여준다. 1960년대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에 봉착한 시기였다. 소련과의 갈등, 국내 정치 불안이 겹치면서, 국가 권력은 과거의 전쟁 기억을 불러내 체제 결속을 강화하려 했다. 이때 항미원조는 더 이상 현재의 전쟁이 아니라, 회고와 기념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와 문학에서 전쟁은 혁명적 신념과 희생정신의 상징으로 재현되었으며, 인민지원군은 그냥 군인이 아닌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 전사’로 묘사됐다. 항미원조를 통해 중국은 ‘우리’의 적을 미국과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 건설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특히 전쟁 기억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냉전기의 새로운 국제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이라는 타자를 거울삼아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혁명운동과 연대하는 국제주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따라서 항미원조 회고는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1960년대 중국의 혁명적 자아정체성을 강화하는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

세 번째 장 ‘문화대혁명 시기: 세계혁명의 꿈과 항미원조’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항미원조가 어떻게 다시 재구성되었는지 분석한다. 문화대혁명은 기존 질서와 가치가 전면적으로 뒤집힌 시기였으며, 이 과정에서 항미원조는 계급투쟁의 혁명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항미원조는 더 이상 과거의 전쟁으로 남지 않고, ‘제3세계 혁명’의 일환으로 재해석되었다. 대표적으로 혁명가극 〈기습백호단〉과 영화 〈해항〉은 중국 지원군을 평범한 전쟁 참여자가 아니라, 전 세계 혁명 전선을 이끄는 선봉대로 묘사했다. 전쟁의 역사적 복잡성은 삭제되고, 항미원조는 ‘세계 인민이 단결하여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간단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로 변모했다. 또한 ‘혁명 후계자’ 담론과 결합해 젊은 세대에게 혁명 정신을 계승할 것을 강조했다. 이 시기의 항미원조 기억은 실제 전쟁 경험과는 점점 멀어졌지만, 오히려 중국 혁명 이데올로기의 상징적 자산으로서 강력한 정치적 기능을 했다. 즉, 문화대혁명은 항미원조를 국방 전쟁에서 세계혁명의 서사로 승격시킨 결정적 시기였다.

잊힌 전쟁이 다시 불려나와 현재를 규정하다
중국인의 내셔널리즘을 움직이는 오늘의 항미원조

네 번째 장 ‘1980년대: 영화 〈마음 깊은 곳〉과 포스트 사회주의 문화 재구성’은 개혁개방 이후 항미원조 기억이 어떻게 약화되고,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는지 보여준다. 1980년대는 중국이 냉전 구조의 변화와 시장화 정책의 충격을 겪던 시기였다. 이때 항미원조는 더 이상 국가 서사의 중심에 서지 못했고, 공적 기념에서 점차 배제되거나 주변화했다. 전쟁을 직접 다룬 문예 작품은 드물었고, 등장하더라도 부차적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전쟁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영화 〈마음 깊은 곳〉은 항미원조를 통해 전쟁의 상흔과 생존자의 기억을 다루며, 이전과는 다른 개인적·가족적 서사를 중심에 놓았다. 또한 젠더적 관점에서 여성 지원군과 전쟁 속 여성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이는 항미원조 기억이 국가적·집단적 영웅서사에서 개인적·일상적 기억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변화는 항미원조가 정치적으로는 ‘잊힌 전쟁’이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다양한 층위에서 재생산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장 ‘2010년대: 영화 〈나의 전쟁〉과 항미원조 기억의 균열’은 2010년대 들어 항미원조가 다시 소환되는 과정을 살핀다. 특히 영화 〈나의 전쟁〉(2016)은 1960년대 작품 〈영웅의 아들딸〉과 비교되며, 같은 전쟁을 두고 전혀 다른 기억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60년대 작품이 집단주의와 혁명성을 강조했다면, 〈나의 전쟁〉은 개인적 사랑과 가족 서사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을 재구성한다. 이로써 항미원조는 더 이상 순수한 ‘혁명전쟁’으로 그려지지 않고, 오히려 내러티브적 혼종성과 균열을 드러내게 되었다. 또한 영화 홍보 과정에서 “전쟁 정당성” 논란이 불거지며, 항미원조 기억의 정치적 민감성이 재확인되었다. 이 장은 항미원조 기억이 단일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때로는 사회적 갈등을 촉발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섯 번째 장 ‘2020년대: 항미원조 국가 기억의 부활과 문화 내셔널리즘’은 최근 항미원조가 국가 기억의 전면으로 다시 부상한 과정을 다룬다. 2020년 참전 70주년은 결정적 계기였다. 대규모 기념식과 문화행사, 항미원조 콘텐츠 제작 붐은 항미원조를 다시 국가적 기억으로 호명했다. 특히 영화 〈장진호〉 시리즈와 〈저격수〉는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며, 전쟁을 ‘중국이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항미원조는 역사 기억이 아닌,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인의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고취하는 현재진행형 서사로 자리 잡았다. ‘가정과 국가가 하나’라는 구호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일상 감정을 결합시켜 강력한 통합 효과를 발휘한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을 문화적 유행이 아니라, 중국이 직면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정치적·문화적 전략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항미원조는 1950년대 전쟁 경험을 넘어, 21세기 중국의 자기 인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살아 있는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넘어 동아시아의 오늘을 읽다
기억의 정치가 만든 중국의 얼굴을 이해하기

한국전쟁은 한국만의 비극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기억이다. 중국은 이를 ‘항미원조’라 부르며 신중국의 출발점이자 정체성의 기초로 삼았다.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단순한 역사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자신을 어떤 나라로 규정하고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와 직결돼 있다. 이 책은 이에 주목해 소설과 영화, 연극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재현되고, 시대마다 다른 의미로 소환되었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이 항미원조를 통해 국민을 조직하고, 잊힐 뻔한 전쟁을 다시 불러내어 오늘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을 ‘사건’이 아닌 ‘기억’의 차원에서 읽어내는 독창성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오늘날 미중 갈등은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중국이 반복해서 항미원조를 소환하는 이유를 알 때, 우리는 동아시아의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넘어, 기억의 정치가 국가를 만들고 미래를 규정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읽는 이에게 중국을 이해하는 새로운 창을, 아울러 동아시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을 읽는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냉전 이후에도 살아남은 전쟁 기억이 어떻게 국가와 대중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오늘날의 국제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려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한담
국립목포대학교 동아시아문화전공 조교수.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마오쩌둥 시기 항미원조 문예를 통해 본 신중국의 자아인지와 세계 상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중국인문연구소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지냈다. ‘당대 중국/인의 자아정체성 정립과 재구성’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항미원조 문예서사를 통해 본 중국/인의 정체성, 양안(兩岸)의 문화 연쇄를 통해 본 1980년대 탈냉전 전환기의 정체성, 그리고 청년위기와 젠더 문제 등 경계에 선 주체들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시진핑 집권 이후 강화된 국민화 담론에 주목하며, 고등어문(국어)교과서를 통해 청년들이 중국 국민으로 형성되어가는 내적 논리를 탐구하고 있다.

출판사소개

기울어진 세상에서 중심 잡기. 올곧게, 재미있게 읽는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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