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정년을 눈앞에 둔 나를 여전히 ‘김교수’라 부른다. 머쓱하기도 하지만,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 앉아서 책을 쌓아놓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연구와 교육으로 강단에서 살아온 책임감을 책상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역사란 사료로만 얻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료 속 글귀로 과거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전통과 현실에서 직접 얻기도 하고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친 결과이다. 선배들이 늘 했던 말, 주변에 흔하게 있는 조형물, 땅 위에 새겨진 이름, 그리고 청소년이 꿈꾸는 미래까지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일부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을 구상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350년 ‘왜구 시대’를 고발한 6부작 왜란 이야기 가운데 제1권이다. 1223년부터 1555년까지를 다룬 것으로, 이를 통해 도발과 응징, 폐쇄와 재개, 단절과 복원이 반복되는 한일 관계의 특징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을묘왜란은 조선 건국 이래 최대 충격이어서, 그 흔적이 실낱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갈등은 풍선에 묶어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평화가 온 누리에 널리 퍼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25년 8월 김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