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길은 험하고 날씨는 변덕스럽고 식사는 형편없고…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오지를 찾아 떠난 와일드하고 터프한 모험기
거룩한 성(聖)과 거친 속(俗)의 세계가 선사하는 깨달음의 이야기
단짝 사진가 마쓰무라 에이조의 흑백사진 144컷 수록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단순히 여행을 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늘 여행에 관한 단상을 가볍지만 의미 있는 필치의 에세이로 여러 권 묶어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글을 로테이션하듯 번갈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특히 장편소설만 계속 써나가다 보면, 정신적으로 산소 결핍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 여기저기 닫혀 있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
하루키는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약 3년간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에 대표작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원고를 완성했는데, 그와 함께 이 시기의 여행 경험을 에세이집 『먼 북소리』와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원제: 雨天炎天)에 담아냈다. 즉 그에게 소설과 에세이는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와 같은 경쾌한 글쓰기를 ‘신선한 공기 끌어들이기’에 비유한 하루키의 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색다른 맛이 느껴질 것이다.
『먼 북소리』는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3년에 걸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쓴 에세이집이고,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에 그리스의 아토스반도와 터키를 여행하고 쓴 에세이집이다. 1988년의 여행만을 떼어내어 한 권의 책에 따로 담아낼 만큼, 그리스의 성지 아토스반도와 터키의 변경 지대는 하루키에게 아주 특별한 여행지였다. 그는 이 여행의 계기를 책 속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책에서 아토스에 관한 얘기를 읽은 뒤로 어떻게 해서든지 꼭 한 번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실제로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 외교부로부터 특별 비자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금녀의 땅’ 아토스반도와 온갖 민족이 뒤섞여 분쟁과 테러가 끊이질 않는 튀르키예 국경지대는 예나 지금이나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험난한 난코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길을 하루키는 현지 가이드도 없이 떠났으니, 온갖 고생을 겪게 될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다. 하루키는 그리스 아토스반도에서는 대책 없는 장대비 때문에 내내 고초를 겪고, 튀르키예에서는 불볕더위에 시달렸다. 그의 표현대로 “길은 한없이 험악했고, 날씨는 매우 변덕스러웠으며, 식사는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리스정교의 땅인 아토스반도에서 때때로 길을 잃어가며 스타브로니키타, 이비론, 필로테우, 카라칼루, 대라브라 등 여러 수도원을 거치면서 현실 세계 너머의 다른 세계를 목도한다. 세속적 쾌락과 동떨어져 고립된 채,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수도사들을 바라보며 ‘성(聖)’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튀르키예에서는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갈 수 없을 곳들을 역시 때때로 길을 잃어가며 서부에서 동부로 헤쳐 나간다. 어딜 가나 군인으로 가득하고, 사진 한 장 마음대로 찍을 수 없는 삼엄한 위험과 먼지와 양 떼가 가득한 그곳에서 ‘속(俗)’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키는 이토록 뚜렷한 성과 속의 대비에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인생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