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상황과 인식의 조합으로 촉발된다. 혼자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외롭다는 인식이나 느낌을 갖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럿이 함께 있는 상황이라도 외롭다고 인식할 수 있다. 반대로 혼자라서 자연스럽게 외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럿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외롭다는 인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과 인식의 조합을 자세히 보면 외로움은 상황보다는 인식이 더 중요한 조건임을 알 수 있다. 홀로이든 여럿이든 상황과는 관계없이 ‘지금 외롭다’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정서가 외로움의 정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로움의 인식에 상황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외로움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특정 상황뿐만 아니라, 심리적, 인식적 반응으로서의 정서까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상황과는 상관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인식적 경향, 성격적 특징, 심리적 성향 등의 내면을 고려해야 한다. 외로움은 인식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로움은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과 공유할 수 없는 것, 남과 공유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칼 융이 말하는 이야기는 외로움을 분석하는 데에 두고두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_Part1. 외로움은 어떻게 함정이 되는가 중에서 80쪽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능력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능력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실패자로 간주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낙오된다는 느낌이 강해서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가 성공과 성취에 의해 정의되다 보니,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스스로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개인의 능력 차이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집단이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무능력으로 간주되면서 이들 집단은 더욱 고립된다. 과도한 경쟁으로 신뢰가 부족한 사회가 되면 사람들 간에 갈등과 공동체의 분열이 초래된다. 심한 경우, 실업과 조기 퇴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순간, 다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밀려난다. 경쟁 격화로 인한 사회적 배제는 개인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성과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_Part2. 사회구조적으로 고립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중에서 108쪽
현실의 대면 접촉이 서툴거나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고 고립을 택
할 위험도 안고 있다.
고립에 빠진 청년들은 의논할 상대가 없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서 각종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다.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그나마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믿고 범죄 조직으로 들어가 위험을 알고도 불안과 공포심 때문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 일에 가담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를 받아주는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라는 절박함이 묻어나오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사회정서 기술Social and Emotional skill을 갖게 해줄 수 있는 정책 같은 건 없었다. 그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청년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사회정서 기술은 더 어린 나이에 형성된다. 누군가가 나서서 부모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부모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국가가 개인의 사회정서 교육에 필요한 습관과 지식, 정신적 특성 등, 진짜 중요하지만 숨어 있는 소양을 개발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_Part3. 우리 사회에서 고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중에서 178쪽
일본의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고독사 사례의 약 80%가 ‘자기방임’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기방임이 고독사의 큰 위험 요소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고립에 대한 초점은 고독사 예방에 맞춰져 있지만, 고독사 자체를 예방하는 것은 어렵다. 그보다는 고독사의 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기방임에 대한 초기 개입이 더 효과적인 예방책일 것이다. 고립이 시작되어 삶의 의욕을 잃고 일상생활의 루틴이 깨져 버리는데 걸린 시간만큼 생활 감각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방임이 심화되면서 사회문제로 부상한 고독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일상생활의 수행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활용하여 자기방임을 사전에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
_Part4. 고립에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에서 228쪽
외로움의 함정에 빠져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괴로움, 불안, 전망의 부재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반복된 체험을 통해 형성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상처’ 를 경감함으로써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실감을 불러일으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기하고 있던 소망과 희망이, 지원자와의 연결 속에서 ‘실현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느낀 순간을 계기로 생활 의욕이 회복되고 생활 개선으로 이어진다. 지원을 통한 작은 변화를 ‘기분이 좋다’고 느끼게 한다. 이러한 작은 성공의 누적 경험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과 더 큰 성공으로의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_Part4. 고립에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에서 250쪽
외로움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며, 결혼하고 자녀가 태어나도 평생 동안 외로움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항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따라서 개인마다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해 어떻게 관리할지 지속적인 관리 체제를 갖추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관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나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방법이다.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아직까지 현대 과학은 다정한 말 몇 마디보다 더 효과적인 안정제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요즘 SNS나 유튜브의 경우, 귀신같이 나의 니즈를 알고리즘화하여 개인 맞춤형 정보를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나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나의 우울함을 풀어주는 데에는 그런 콘텐츠를 몇 시간씩 들여다 보는 것보다 나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의 짧은 대화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최근 들어 뇌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마음의 구조에 대해서도 방대한 논문이 나오고 있다. 외로움에 대한 중간 결론은, 사람 간의 건강한 네트워크 연결이 마음의 건강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_Part5. 고립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중에서 279쪽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 구성의 변화, 생애미혼율 증가, 이혼율 증가 등의 추세라면, 앞으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혼자 살더라도 소속감을 위한 공동체도 필요로 하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기 때문에 적극적 의미로 각자 외로울 수 있어야 한다.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가 성공적인 노후를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격의 성숙을 엿볼 수 있는 척도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혼자 있는 시간들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비즈니스적인 접근도 많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이 부분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지 않지만 궁금한 독자들은 졸저 『외로움을 소비하는 사회』를 참조해 주길 바란다.
_Part5. 고립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중에서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