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알리는 데 목적이 있지만, 내가 나고 자라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내가 감히 네팔을 대표하지는 못하지만, 네팔인 수잔 사키야를 대표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 네팔이 아닌 나의 이야기라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_프롤로그 | 인연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두 손을 모으는 합장은 무드라 중에서도 가장 쉽고 기본적인 동작이다. 손바닥이 만나는 순간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는 의미다. 요가에서 가장 쉬운 동작의 이름이 나마스테인 이유와도 통한다. 모든 사람이 다치지 않게끔 하자는 의미다. 나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도 챙기자는 것이다.
_신과 만났다면 이렇게 인사하세요, “나마스테”
네팔 사람들은 적어도 결혼 때문에 분쟁을 만들지 말자는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만이 아니다. 다른 민족들의 문화를 간섭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도 우리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네팔에는 민족 갈등이 없다. 종교 갈등도 없다. 존중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_‘로미오와 줄리엣’의 눈물이 네팔에도 있다
석가모니는 산스크리트어 샤키무니(Shakyamuni)를 음역한 말이다. 샤키무니는 ‘샤키야의 현자(Sage of the Shakyas)’라는 뜻이다. 여기 나오는 샤키야가 바로 우리 가문의 샤키야다. 그뿐만이 아니다. 네팔에는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를 샤키야 또는 버즈라차르여(Bajracharya) 가문에서 선발한다. 특히 카트만두의 로열 쿠마리는 샤키야 가문에서만 선발한다. 내 둘째 여동생은 어릴 적에 쿠마리 후보로 뽑히기도 했다. 바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_내가 하는 일이 나의 카스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당부하자면, 석가모니의 탄생지가 인도라는 말은 피하자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탄생지는 현재 네팔의 룸비니 지역이다. 인도와 가까운 지역이고, 사실상 네팔이라는 나라가 없던 시기에 태어난 위인이라 국적을 따지는 건 합리적이지 않지만, 네팔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네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네팔에서 석가모니가 인도 사람이라고 하는 건, 한국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굳이 필요 없는 말은 하지 말자.
_한국에서 네팔 맥주를 마시기 어려운 이유
그만큼 소가 신성시되다 보니 웃지 못 할 일이 종종 벌어진다. 나하고 사이가 나쁜 이웃이 있으면, 그 이웃이 농사를 짓는 밭에 소를 풀어놓는다. 소에게 돌을 던지거나 쫒아낼 수도 없다. 그저 알아서 나가 주기를 바라야 한다. 이웃한테 가서 항의해 봐야 소용없다. 자기도 난처한 척, “소가 당신네 밭으로 간 걸 어쩌라고” 하면 그만이다. 두 집이 모두 소를 키우고 있으면 무한 보복전이 일어난다. 그래서 소가 없는 집은 난처하다. 민사상 방어 수단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_소똥도 신성하다
네팔에서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들이 산에서 산다고 믿는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는 시바 신이 살며 명상을 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신성한 곳이다. 8,000미터가 넘는 유명한 봉우리에는 각각 신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에베레스트는 ‘서거르마타(Sagarmatha)’ 또는 ‘초몰랑마(Chomolangma)’다. ‘서거르’는 ‘하늘’, ‘마타’는 ‘머리 위’라는 뜻이다. ‘하늘보다 높다’는 의미다. ‘초몰랑마’는 티베트어로 ‘세상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_눈의 안식처, 히말라야
티베트어로 룽따는 풍마(風馬, wind horse)다. 여기에 불경을 써 넣고 소원을 빌어 걸어 놓으면 바람이 소원을 산에게 전달해 준다는 믿음이 있다. 이 모든 게 산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는 의식이다. 룽따는 일반인들도 원하면 걸 수 있다. 셰르파들이 의식을 할 때 소원을 담아 함께 룽따를 걸어 보는 것도 좋다.
_내 인생을 바꾼 히말라야 등정
쿠마리는 저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일이었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네팔에서는 쿠마리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쿠마리 제도를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쿠마리의 역사도 깊어요. 네팔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문화 중 하나예요. 네팔은 이런 문화와 역사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요. 쿠마리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서 이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_인터뷰 | 머띠나 샤키야(카트만두 로열 쿠마리[2008~2017])
단순히 높은 급여만으로는 구르카 병사들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구르카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 둘째, 명확한 목적과 가치. 셋째,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르카 정신에 부합하는 환경. 규율과 명예와 자부심을 가지고, 봉사한다는 사명에 걸맞은 임무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구르카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_인터뷰 | 파라스 구룽 하사(영국 육군 왕립 구르카 소총연대)
서로 섞이지 않지만 서로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 이게 네팔 사람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존중한다. 다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는 타협하지 않는다. 우리도 다른 민족끼리 섞일 수 있으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 했을 때의 대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이 크다.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카스트를 유지하고 신을 믿을 것이다. 네팔 사람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 카스트를 대체할 제도와 방법을 만들고 민족들이 지금처럼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일지 모른다. 여러분이 네팔을 좋아한다면 더디게 나아가는 네팔의 미래를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_섞이지 않지만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
띠즈는 명목상으로는 여성들이 남편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축제다. 원래 주인공은 사실 남편이 돼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남편들은 부인들 눈에서 사라지는 게 좋다. 귀찮게 하면 안 된다. 금식 전에 먹는 덜은 모두 남편 책임이다. 집안일, 식사, 육아 모두 남자들 몫이다. 남자들은 “이게 무슨 우리를 위한 날이야? 여자들을 위한 날이지.” 하면서 농담 섞인 불평을 한다. 하지만 축제 때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간 큰 사람들은 없다.
_축제에 오신 당신이라는 신(神)을 환영합니다
그들의 대가족 문화 속 ‘개인의 자리’는 우리나라의 핵가족 문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대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라기보다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얽혀 살아간다. 모든 것이 공유되고, 관계가 느슨하게 연결된 구조 속에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억압이 아닌, 깊은 유대감과 자연스러운 배려가 녹아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서서히 이해해 가고 있었다.
_외전 | 한국인 아내의 네팔 문화 관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