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이 책에는 ‘우리 동네 인권 재판소’라는 가상의 법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법원의 청소년 판사가 되어, 이 책에서 소개할 여섯 개의 사건에 대한 판결을 직접 내려 볼 거예요.
인권도, 법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판결을 내릴 수 있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사건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건마다 재판 연구원이 보고서를 만들어 줄 테니까요. 그리고 보고서를 읽어 본 여러분들이 판결을 내렸다면, 제가 이야기의 참고가 된 실제 사건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줄 겁니다. 거기에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또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알려 줄 거예요.
- 5쪽
이번에 판사님께서는 두 개의 장애인 사건 재판을 맡아 주시게 됐습니다.
첫 번째 사건의 원고는 시각 장애인 홍희관 씨이고, 피고는 ‘미라클 월드’ 놀이공원입니다.
두 번째 사건의 원고는 역시 시각 장애인 홍희관 씨이고, 피고는 ‘명작’ 영화관입니다.
원고는 미라클 월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려다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했고,
명작에서는 시각 장애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필요한 보조 수단을 제공해 주지 않아서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피고들에게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피고들은 안전과 비용 문제 때문이지 원고를 차별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번 두 개의 사건에서도 판사님의 현명한 판결을 기다립니다.
- 31쪽
2019년에는 청각 장애인 부부가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하이원 리조트에 가서 ‘알파인코스터’라는 놀이기구를 타려고 했는데, 놀이공원에서는 ‘청각 장애인은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하고,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부부의 탑승을 거부했습니다.
이 청각 장애인 부부는 ‘알파인코스터’ 사건을 법원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로 가져갔고, 국가인권위원회는 하이원 리조트가 청각 장애인들의 탑승을 거부한 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놀이기구가 조작이 간편한 데다, 어린이도 혼자 탈 수 있는 만큼, 청각 장애인에게 안전 사항을 충분히 설명하고 안전 표지판을 중간에 설치해 두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후, 하이원 리조트는 놀이기구 코스에 반사 거울과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해서 청각 장애인도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었답니다.
- 50~51쪽
‘부성주의’는 왜 문제인 걸까요? 부성주의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순전히 아빠의 성씨만 쓸 수 있게 만들어서 가족 안에서 여성의 혈통을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또 우리의 언어 습관 중에, 아빠의 식구나 친척들을 부를 때는 친(親 친할 친)이라는 글자를 쓰고, 엄마의 식구나 친척들에게는 외(外 바깥 외)라는 글자를 쓰죠? 이 말도 잘 뜯어보면, 가족 안에서 엄마 쪽 식구들을 차별하는 의미가 있답니다. 부성주의는 이렇게 가족 안에서 차별을 만들어 내고, 이런 차별은 가족들 사이에 여러 갈등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성주의는 많은 비판을 받아 왔어요. 한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2021년 7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2%가 자녀의 성씨를 부모가 협의해 정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기구인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과 2024년, 한국 정부에게 ‘자녀의 성을 부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라’고 권고했어요.
- 70~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