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힘이다
“결국 시는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라 추위에 떠는 이들을 위한 불이며,
길 잃은 이들에게 내려진 밧줄이며, 굶주린 자들의 주머니 속 빵처럼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 무수한 독자를 위로해온 「기러기」의 시인,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한강, 김연수, 김소연, 이제니 등 수많은 문인이 아껴 읽은 메리 올리버의 『시 쓰기 안내서』가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일찍이 『천 개의 아침』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등의 시집뿐 아니라 『긴 호흡』 『완벽한 날들』과 같은 산문으로도 사랑받아왔지만, 시 쓰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써 내려간 작법서는 처음 소개된다. 무구한 시적 언어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외하는 메리 올리버의 창작 비밀이 담긴 책으로, 시를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이끄는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첫 시집을 펴낸 지 30여 년이 흘러 원숙한 경지에 이른 시인이 그간의 시력(詩歷)에서 얻은 통찰을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하는 건 아주 많다.
이 책에는 그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담겨 있다”
『시 쓰기 안내서』는 정직한 제목처럼 시어의 운율과 소리, 행 나누기의 효과, 시적 형식, 어조와 이미지, 고쳐쓰기에 이르기까지 시 창작의 모든 과정에 대해 자상하면서도 엄정한 가르침을 전한다. 메리 올리버는 이 책에서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교사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와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등 그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영미 시인들의 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시 쓰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그보다 폭넓은 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마음가짐까지 아우른다.
“시를 쓰는 건 마음과 의식적인 정신의 학습된 기술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사랑 이야기다”
이 책에서 메리 올리버는 창작을 둘러싼 일련의 낡은 믿음들을 산뜻하게 쇄신한다. 예술은 흔히 영감이나 타고난 소질에 기댄다는 오해를 받지만, 『시 쓰기 안내서』에서 그는 문학적 기교를 훈련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시 쓰기는 ‘마음’과 ‘기술’이라는 “두 존재가 약속을 잡고 그 약속을 지킬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인이 되기 전에 연습을 해야 하고, 모방은 진짜 시를 탐구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는 그의 말은 오직 독창성을 추구하며, 모방을 금기시하는 통념을 가뿐히 깨뜨리며 새내기 시인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준다.
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나 반 고흐의 작품을 열심히 베끼며 자신이 귀중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믿는 젊은 화가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감정의 자유, 작품의 진정성과 독창성—이것들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온다. 인내심 있고 부지런한 사람, 그리고 영감을 받은 사람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_본문에서
이어서 그는 ‘고쳐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힘주어 말한다. 고쳐쓰기는 물론 고되고 때로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메리 올리버는 창작 초기에는 고쳐쓰기에서 많은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며 “글을 쓰고 다시 고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줄 것을 요청한다. 일견 물 흐르듯 순연히 시를 쓸 것 같은 그조차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까지 적어도 사오십 번을 고쳐야 한다는 고백은 고투하는 창작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런 한편으로 이미 수없이 아름다운 시를 남긴 메리 올리버가 이제까지 쓴 시에 자족하기보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고자 연마하는 모습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긴 여정을 걷는 이들이 창작에 임하는 각오를 새로이 다지도록 북돋는다.
“시란 태도이며 기도이다.
시는 종이 위에서 노래하고, 그 노래는 종이 밖으로 울려 퍼진다”
이 책은 시 쓰기를 꿈꾸는 이들이 창작의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시를 읽는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환영하고자 쓰였다. 시가 태어나는 과정, 시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시인이 쏟는 시간과 노력을 이해함으로써 독자 또한 마침내 ‘시’라는 경이로운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다. 기도하는 방식에 정답이 없듯이, 메리 올리버는 시 읽기에 있어서도 유일한 해법은 없으며 오히려 “각자가 개별적인 억양으로 읽음으로써 시와 개인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여기 담긴 메리 올리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독자는 사랑하는 시인을 문학적 스승이자 벗으로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한다. 시를 아끼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메리 올리버의 초대장과 같은 책이다.
오직 분투와 뒤엉킨 말들뿐이던 자리에서 마침내 아름답고 멋진 형태를 갖춘 시가 탄생하는 달콤한 순간, 그런 순간에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창작 교실의 즐거움이다. 모두가 그 기적을 조금씩 나누어 가진다. 그 기적은 단지 운과 영감, 우연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술적 지식과 성실한 노력이라는, 어쩌면 덜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필수적인 요소들의 결실이기도 하다. 이런 요소들이야말로 ‘시’라는 움직이는 빛, 그 형언할 수 없는 존재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