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안희제와 연구자로서의 인연은 1994년 「백산 안희제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은사이신 고 박영석선생님의 지도로 대종교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안희제 관련 논문을 시도하였다가 사실은 자료부족과 게으름으로 답보상태였다. 다행히도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조선국권회복단 재판기록에 백산상회 관련내용을 접하면서 용기을 내어 안희제관련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안희제 활동분야별로 몇편의 논문을 계속발표하고 연구를 이어갔다.
안희제의 국내활동은 교육구국운동, 비밀결사단체 결성, 국내독립운동기지 백산상회 설립, 문화운동, 사회운동,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한 장학재단인 기미육영회 설립, 협동조합운동, 항일언론투쟁 등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낀 안희제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로 발해농장을 경영하였고 만년에는 대종교에 귀의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안희제의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접할때마다 안희제선생께서 마치 독립운동사 연구를 폭넓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느껴졌다.
안희제의 활동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보다도 독립운동 자금조달이다. 안희제의 다양한 활동은 독립운동 자금조달을 위한 방편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 자금은 성격상 증거자료가 남아 있기 어렵다. 그런관계로 그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안희제가 국내 독립운동 자금조달을 위해 노력한 부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안희제를 비롯하여 독립운동 자금조달 사례를 모아 논문을 발표하면서 안희제를 ‘독립운동의 CEO’였다고 썼다. 안희제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의 젖줄이 되고자 하는 심정으로 자금을 조달하였을 것이다.
1995년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일보사에서 「백산의 동지들」을 연재하고, 1998년 발굴인물독립운동사 『백산의 동지들』(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을 출간하였다. 이책에는 안희제, 윤상은, 이우식, 정재완, 권오봉, 문영빈, 김동삼, 윤병호, 최준, 김홍조, 최병찬, 손병순, 남형우, 신필수, 장건상, 박상진, 서상일, 서상호, 변상태, 이수영 등 20명의 생애와 활동을 수록하였다.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 100인을 선정하여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인물 열전 발간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를 발간하였다. 이책은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책이다. 이후 안희제 관련 연구가 부족함을 느끼고 자료를 추적하고 연구를 계속하였다. 마침 2013년 백산안희제선생순국70주년추모위원회에서 추모논총 『백산 안희제의 생애와 민족운동』이 발간되었다. 학계 전문가들이 안희제의 독립운동을 분야별로 분담하여 집필하였다. 「의령 입산리 안씨의 전통과 문화유산」(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 「대동청년당의 결성과 활동」(김성민/국가보훈처 연구관), 「안희제의 계몽운동과 문화운동」(장석흥/국민대 교수),「백산무역주식회사의 설립과 경영」(권대웅/대경대 교수), 「백산 안희제의 항일 언론활동」(정진석/한국외국어대 교수), 「백산 안희제의 대종교 독립운동과 순국」(이동언/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 「백산 안희제의 민족운동사적 위치」(이만열/숙명여대 교수), 「백산 고택의 숨은 이야기」(안경하/안희제 사손) 등 입니다.
이 추모논총의 연구성과를 참고하고 자료조사를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양정의숙 졸업년도, 대동청년단 명칭문제,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망명, 블라디보스토크 최광(최병찬)과의 인연, 백산상회 설립연도, 백산상회 터, 백산상회 지점 및 출장소, 독립운동자금 임정지원 문제, 발해농장 건설과 김태원과의 관계, 임오교변 전말 등을 규명하고 보완하고자 하였다. 아직 규명하지 못한 부분은 연구과제로 남기며 안희제 연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광복50주년인 1995년 부산에 백산기념관이 개관하였고 2024년 부산 KNN에서 ‘의령에서 발해까지 백산’영화를 제작하여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습니다. 관람객들의 소감은 ‘안희제를 몰랐다, 감동적이다’라는 평이었습니다. 2025년 5월 21일 안희제의 고향인 의령에 ‘백산 나라사랑 너른마당’전시관이 개관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연구에서 대상인물의 생애와 활동을 팩트체크를 통해 과연 몇 %를 복윈할 수 있을까? 완전히 복원하고 제대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안희제는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독립운동의 CEO’라는 의미부여와 함께 재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025년 8월 선인역사문화원에서
이동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