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령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멈추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한 마리의 늑대였다가, 사람의 모습이었다가, 뒤미처 발톱을 세운 새의 모습이 되었다. 처음엔 흐물거리는 안개인 줄 알았는데, 제멋대로 모습을 바꾸면서 대나무 주변을 휘돌았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차갑고 섬뜩했다. _ 12쪽
어떤 귀는 때때로 채령과 눈을 마주쳤고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채령은 애써 외면했다. 그 때문일까. 채령은 자꾸만 입안이 말랐다. _ 18쪽
어제 처음 알았지만, 희란은 정말로 고양이 점을 보는 사람이었다. 천변풍경의 창가 구석 자리에서 손님을 받았는데, 손바닥만 한 그림 종이 수십 장을 손님 앞에 늘어놓고 손님이 알고 싶은 것을 말하면, 고양이를 시켜 다섯 장의 그림 종이를 뽑도록 했다. 그것을 희란은 타로 카드라고 불렀다. 로사도 그랬지만, 가끔 의자 밑에 있던 다른 고양이들도 한 마리씩 탁자 위로 올라와 희란이 시키는 대로 앞발로 그림 종이를 골라냈다. _ 51쪽
그 ‘차갑고 섬뜩한 것’은, 때로는 조금 전처럼 희뿌연 그림자의 모습이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아지랑이처럼 그저 꾸물대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종종 형체는 없는 데 그 느낌만 강하게 밀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온몸이 바짝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_ 65쪽
그러고 보니 천변풍경은 참으로 희한한 곳이었다. 낮에는 과자와 가배를 마시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왔고, 해가 지면 오줌 색깔이 나는 술을 팔았다. (중략) 사실 천변 풍경 입구의 간판에는 ‘낮과 밤이 다른 다점 천변풍경’이라고 쓰여 있긴 했다.
고양이마저 예사롭지 않았다. 이름부터 카리나, 네온, 제노, 로사…. 양이의 이름을 붙인 것도 생경했는데 더 놀란 건, 그 이름들이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_ 66쪽
바로 그때, 채령은 눈을 의심했다. 손에 쥐자마자 회령도의 크기가 팔 길이만큼 커졌다. 칼날은 더 날카로워졌고, 그 반대쪽은 호랑이의 발톱처럼 뾰족한 갈고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_ 118쪽
“왜입니까? 일본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총과 칼로 조선을 다 빼앗았습니다. 더 무엇이 필요합니까?” _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