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00년 넘게 지난 지금, 1923년 간토대학살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가짜 뉴스가 퍼지며 무참히 희생당한 이들의 넋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인가
역사 속 진실을 밝히고, 내 안의 혐오를 경계하게 하는 동화
간토대학살은 1923년 9월 1일 규모 7.9 이상의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가짜 뉴스가 퍼지며 자경단이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1923년 12월 5일 자 『독립신문』엔 당시 일본 전역에서 숨진 조선인이 6,661명에 달한다고 했지만, 일본 정부는 희생자 수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덮어 왔다.
이 동화는 1923년 간토대지진을 배경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왜 조선인들이 죄 없이 무참히 죽임을 당했는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2025년의 일본 소년 히로시를 통해 보여 준다.
아라카와강에 걸린 6,661장의 넋전,
“나를 잊지 마세요, 끔찍한 죽음을 되풀이하지 마세요”
도쿄 스미다구 아라카와강 제방은 간토대지진 때 지진을 피해 온 재일 조선인이 학살당한 대표적 장소 가운데 한 곳이다. 지진으로 불이 번지고 온 마을이 혼란에 빠진 사이, 지역 재향군인회와 청년단이 꾸린 자경단은 일본에 와 일하던 조선인들을 찾아내 학살했다.
당시 자경단이 가짜 뉴스를 퍼뜨려 학살한 사실을 알려 주는 기록과 증언은 넘쳐난다. 자경단원은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어에 서툰 오키나와, 오사카 출신 일본인과 민권 운동에 힘썼던 일본인들도 골라 죽였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일본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을 더 퍼뜨렸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책에 그대로 녹아 있어, 어린이 독자들의 역사 이해를 돕는다.
조선인을 학살하던 자경단원의 혐오와 일본 정부의 가짜 뉴스를 경계하며,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추모와 반성이 함께하기를
주인공 히로시는 복잡한 한일 관계에 별 관심 없는 아이였다. 어느 날 아라카와강에 걸린 수많은 종이 인형(넋전) 사이에서 헤매다 웬 아저씨와 함께 1923년 어느 식당에 도달했다! 며칠 뒤 대지진이 벌어지고 분노에 찬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학살하며 다니자 이를 막던 히로시도 자경단원의 죽창을 눈앞에 맞닥뜨린다.
히로시가 갑작스럽게 과거로 떨어진 데는 다 까닭이 있다. 우리는 동화 속 히로시와 넋전 아저씨의 인연을 따라 간토대학살의 역사를 기억할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경계해야 할 혐오와 이민족을 향한 분노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사죄와 반성 그리고 역사를 바로 아는 일이야말로 가짜 뉴스와 혐오와 학살을 막는 밑바탕이라는 걸 강조하며, 100년도 넘은 간토대학살을 오늘날 다시 꺼낸 이 책의 의도가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다양한 작품으로 방정환문학상, 강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함영연 작가는 특히 『일본군‘위안부’ 하늘 나비 할머니』 『함경북도 만세 소녀 동풍신』 『석수장이의 마지막 고인돌』과 같은 역사 동화도 꾸준히 써 왔는데, 이번 책을 통해 또 한 번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간토대학살을 오늘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동화로 재해석해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 배중열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그림이 만나 1923년 간토대학살 현장과 2025년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연결되는 소중한 다리 역할을 하는 책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