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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1


  • ISBN-13
    978-89-7012-179-6 (0484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문학사상 / (주)문학사상
  • 정가
    18,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8-18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R. F. 쿠앙
  • 번역
    이재경
  • 메인주제어
    SF: 스팀펑크
  • 추가주제어
    판타지 , 역사판타지
  • 키워드
    #SF: 스팀펑크 #판타지 #역사판타지 #네뷸러상 #로커스상 #휴고상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4 * 208 mm, 448 Page

책소개

“그녀는 깨쳤다. 혁명은 사실상 언제나 상상 불가라는 것을. 
혁명은 알던 세상을 부순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기에 가능성으로 넘쳐난다.”

19세기 초반 옥스퍼드대학교를 무대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확장, 
그리고 학계의 공모를 다룬 스팀 펑크 & 다크 아카데미아 걸작

 

★★★네뷸러상, 로커스상, 영국도서상, 알렉스상 수상★★★
★★★판타지 거장 조지 R. R. 마틴이 직접 선정한 알피상 수상★★★
★★★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트와일라잇〉 제작사 템플 힐에서 영화 판권 획득★★★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석권한 R. F. 쿠앙의 대표작.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 중 하나였으나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이유(검열 스캔들)로 후보 명단에서 제외됐던 휴고상까지 거머쥐었다면 『바벨』 한 작품으로 세계 3대 SF 문학상 석권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2023년 휴고상 행사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 유출된 조직위원회 측의 내부 이메일에 따르면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소재, 서술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바벨』을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바벨』이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마저 획책하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수많은 SF/판타지 애호가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으며, 「왕좌의 게임」 원작자로 유명한 판타지 거장 조지 R. R. 마틴이 이에 반발해 자신이 제정한 알피상을 『바벨』에 수여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바벨』은 19세기 초반 은(銀)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세계 최강대국이 된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를 무대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확장, 그리고 학계의 공모를 다룬 스팀 펑크, 즉 대체역사소설이다. 영국의 세계 경제 패권이 마법의 ‘은막대’로 이루어진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추가했을 뿐, 실제 역사와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당시의 시대 상황을 놀랍도록 정교하고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은막대의 마법은 그 자체가 아니라 은막대에 새겨진 단어의 번역 대응 쌍(매치페어)에서 나온다. 말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 유실되는 것의 차이에서 힘이 나오고, 은이 그 유실된 것을 포착해서 힘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매치페어가 새겨진 은막대는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기차, 선박, 방직기 등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총포탄의 힘과 정확도를 높이며 부상을 치료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안 보이게 하는 등의 현실 왜곡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 즉 실버워크(silver-work)를 전담하는 기관이 바로 옥스퍼드대학교 왕립번역원(바벨)이다.

 

“전지구적 체제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등장하고, 
바벨은 무자비한 역사의 실험실이 된다.” (LA타임스) 
제국주의와 세계화에 관한 흥미 만점의 마법적 스팀 펑크

 

그런데 유럽의 언어들이 교류와 확장으로 서로 가까워져 단어의 함의들이 변하고 합쳐지면서 사용 가능한 매치페어가 갈수록 고갈되고, 비슷하나 동일하지 않은 새로운 언어들에 대한 필요가 절실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벨은 비유럽(특히 중국과 인도)의 언어들에서 강력한 매치페어를 찾는 데 주력한다. 주인공 로빈 스위프트를 비롯한 바벨의 학생들은 바로 이러한 용도로 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언어 천재들이다. 
로빈은 대영제국의 기반인 실버워크를 책임질 엘리트 번역사로서의 자질을 착실히 키워가지만, 어느 날 이복형 그리핀을 만나면서 평화로운 학창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리핀 역시 중국계이자 바벨 출신으로, 그리핀이 바벨에 반기를 들고 잠적하자 대타로 러벌 교수가 로빈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핀은 로빈에게 바벨이 어떻게 외국 언어들을 이용해 대영제국의 식민지 침탈에 앞장서고 있는지 설명하고, 이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 조직 ‘헤르메스 협회’에 가담하라고 설득한다. 로빈은 중국계로서의 정체성과 제국 번역가로서의 안락한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리핀과의 관계를 끊는다. 발각될 경우 궁핍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비참한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4학년 때 실습 과정의 일환으로 동급생 친구들과 함께 중국 광둥으로 파견된 로빈은 대량의 은을 얻기 위해 청나라에 자유무역(핵심은 아편 판매)을 강요하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욕, 밀수된 아편에 중독되어 폐인처럼 살아가는 중국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도한다. 바야흐로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로빈은 바벨이 식민지 침탈의 앞잡이라는 것, 영국 정부가 실버워크에 필요한 중국의 은을 독차지하려고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는 식민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 내에서도 은산업혁명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은 이미 부자인 사람들과 부자가 될 간계와 운을 겸비한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뿐이었다. 

 

그 순간 로빈의 머릿속에 거대한 거미줄이 떠올랐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는 목화,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아편,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로 바뀌는 은,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흘러 들어가는 영국. 처음에는 아주 추상적으로 들렸다. 그저 용도, 교환, 가치의 범주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추상적이던 것이 추상적이지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지, 그 거미줄 속에서 자신의 생활방식이 어떤 착취를 야기하는지 깨닫는 순간, 그 거대한 거미줄 위에 식민지 노동과 식민지 고통의 망령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것이 보였다. (2권 본문 62쪽)

 

그 사건들은 모두 같은 억압과 착취의 그물망에 걸려 있었다. 랭커셔 방적공에게 일어나는 일은 인도 방직공에게 먼저 일어난 일이었다. 은갑을 두른 영국 방직공장의 땀과 피로에 찌든 노동자들은 미국 노예들이 수확한 목화로 면사를 뽑았다. 은산업혁명은 어디서나 빈곤과 불평등과 고통을 초래했고, 거기서 이득을 보는 것은 제국 중심부의 권력자들뿐이었다. (2권 본문 331~332쪽)

 

결국 로빈이 같은 처지의 식민지 출신 친구들과 함께 헤르메스 협회 편에 서기로 결심하면서, 제국에 맞선 옥스퍼드 번역사 혁명의 막이 오른다.

 

“서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도록,
즉 재번역하도록 한다.”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번역은 반역’이라는 명제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

 

『바벨』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이들을 고통과 도탄에 빠트리고 있는 제국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신랄한 정치·사회적 비판 외에도, 언어와 번역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해석으로 지적 포만감과 읽는 맛을 한층 배가시킨다, 세상의 언어가 그렇게나 천양지차인데 번역의 정확성과 충실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번역은 가치중립적인가? 소설 속에서 플레이페어 교수는 학생들에게 번역은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원문을 다시 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충이 있지. 다시쓰기도 글쓰기고, 글쓰기는 늘 작가의 이념과 편견을 반영하니까. 라틴어 트란슬라티오는 옮긴다는 뜻이야. 즉 번역은 공간적 차원을 포함해. 말 그대로 점령지를 가로질러 텍스트를 수송하는 일이고, 이국의 향신료를 나르듯 단어들을 나르는 일이야. 단어들은 로마의 궁정에서 현대 영국의 찻집으로 여행하면서 무척 다른 의미를 얻게 되지.”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즉 번역의 정치성이다. 소설 속에 잘 나와 있듯이 번역학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기점으로 제국주의의 전성기에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했다. 서구 제국주의가 주도한 전 지구적 근대화는 비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식민지 쟁탈전에 다름 아니었는데 이 과정에서 번역은 식민화의 필수 도구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식민화의 첨병인 바벨(왕립번역원)에 맞서 식민지 출신인 로빈과 친구들이 혁명의 기치를 치켜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들은 바벨이 지식의 상아탑인 척, 사업과 통상 같은 세속적 관심사 위에 존재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바벨은 식민주의 사업과 긴밀히 엮여 있어. 아니, 바벨 자체가 식민주의 사업이야. 생각해봐. 문학과는 왜 작품들을 영어로만 번역하고 반대로는 하지 않는지, 통역사들은 해외에 파견돼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바벨에서 하는 일은 모두 제국의 확장을 위한 일이야. (1권 본문 171쪽)

로빈과 옥스퍼드 번역사 친구들이 주도한 혁명의 목적은 제국주의의 일방적 식민화에 봉사하는 번역이 아닌, 상호 소통과 이해라는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번역을 완성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폭력과 비폭력 투쟁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들이 결국 번역 마법으로 바벨을 폭파시키는 결말 역시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번역 아냐? 대화도 마찬가지지. 상대의 말을 듣고, 편견의 벽을 넘어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엿보려 애쓰는 것. 세상에 자신을 내놓고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 (2권 본문 423쪽)

 

“끊임없이 팽창하는 제국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함께 언어학, 역사, 정치 및 
빅토리아시대 영국을 면밀히 탐구한다.” (라이브러리 저널)
판타지 문학의 성지 옥스퍼드와 빅토리아시대를 생생하게 재현하다

세계 최고의 명문이자 영문학의 산실인 옥스퍼드대학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하고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어왔다. 판타지 장르만 해도 옥스퍼드 출신인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 루이스 캐럴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불후의 걸작들을 써냈고,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과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고색창연한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놀라운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냈다. 이러한 옥스퍼드 판타지의 연장선상에서 『바벨』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중국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작가의 유학 경험에 각종 역사 기록 및 문학작품의 세부 사항을 토대로 하여 초기 빅토리아시대, 즉 19세기 옥스퍼드의 생활상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내고 있다. 주 무대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래드클리프 카메라, 보들리언 도서관과 각양각색의 상점들이 밀집한 하이 스트리트, 브로드 스트리트를 종횡무진으로 활보하는 주인공들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옥스퍼드로 여행 가서 시내 투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바벨』이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 다크 아카데미아 장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걸작으로 불리는 이유다.

 

미래를 위한 혁명이냐? 안락한 현재냐?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선발된 식민지 아이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레티샤 프라이스를 제외하면 식민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영제국의 막강한 슈퍼 파워를 지탱하는 근간인 은막대 마법을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 사용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벨(왕립번역원)이 중국과 인도 등의 식민지에서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한 것이다. 
로빈 스위프트: 바벨의 리더인 러벌 교수가 중국 광둥에서 중국인 여성과의 정략적인 관계로 얻은 사생아. 러벌 교수가 고용한 영국인 하녀로부터 영어를 배우며 자랐고, 어머니가 유행병으로 죽은 후 집으로 찾아온 러벌 교수의 손에 이끌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라미(라미즈 라피 미르자): 인도 캘커타 출신으로 우르두어, 아랍어, 페르시아어에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 에스퍄냐어, 이탈리아어까지 섭렵한 언어 천재. 라미의 가족은 영국인 귀족인 윌슨 경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했는데, 비상한 기억력과 말재주로 윌슨 경의 눈에 들어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빅투아르 데그라브: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출신으로 크레욜어와 프랑스어,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하다. 영국을 거쳐 프랑스에서 엘리트 가문의 하녀(사실상 노예)로 있다가 고용주의 소개로 바벨에 입학하게 된다. 
레티(레티샤 프라이스): 영국 해군 제독의 딸로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여성 차별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이 예정된 상황에서 옥스퍼드 재학생인 오빠의 자살 후 간신히 바벨에 입학한다. 
그리핀 스위프트: 로빈 이전에 러벌 교수가 중국 마카오에서 중국인 여성과의 정략적인 관계로 얻은 아들. 즉 로빈의 이복형. 바벨이 대영제국의 앞잡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반체제 조직인 헤르메스 협회에 가담하여 폭력 투쟁을 이끈다.

목차

저자의 일러두기 
1부 (1~4장) 
2부 (5~12장) 
3부 (13~15장) 

본문인용

『바벨』은 사변소설이다. 즉 판타지 버전의 1830년대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옥스퍼드의 역사는 실버워크(silver-work, 이에 관해서는 곧 나온다)로 인해 실제와 크게 달라졌다. 다만 초기 빅토리아시대 옥스퍼드의 생활상은 가급적 역사 기록에 충실하면서 서사에 필요한 경우에만 허구를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1권 본문 11쪽)

 

로빈이 살게 될 곳은 유니버시티 칼리지였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곳은 흔히 유니브(Univ)로 불리고, 왕립번역원에 학적을 둔 학생들은 모두 이곳에 거주했다. 미학적으로는 “엄숙하고 덕망 있는, 옥스퍼드의 장녀라는 위상에 걸맞은 외관을 지닌 곳”이었다. (1권 본문 88쪽)

교수는 열쇠로 왼쪽 서랍을 열고,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빈 은막대를 하나 꺼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야. 실제로 은에는 특별한 성질이 있거든. 은은 우리가 하는 일에 이상적인 매체야. 난 은이 신들의 축복을 받은 물질이라고 생각하네. 은은 수은(mercury)으로 정제되는데, 머큐리는 전령의 신이고, 머큐리의 그리스 이름은 헤르메스야. 이렇게 따지면 은이 해석학(hermeneutics)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자, 너무 심한 낭만은 피하세. 사실 은막대의 힘은 단어에 있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 말이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옮겨질 때 유실되는 것에서 힘이 나와. 은이 그 유실된 것을 포착해서 발현시키는 거야.” (1권 본문 142-143쪽)

 

낯선 마법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실버워크의 효력을 접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이를 피하기가 더 힘들었다. 하지만 은막대의 작용, 즉 실버워크가 고기능 선진사회의 기반임을 그저 아는 것과, 실버워크가 일으키는 현실 왜곡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은이 형언 불가의 것을 포착해서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실제로 일으키는 광경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1권 본문 144쪽)

 

“지금쯤이면 너도 런던이 팽창을 멈출 생각이 없는 거대 제국의 심장이라는 걸 알았을 거야. 이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바벨이야. 바벨은 은을 비축하는 것처럼 외국어와 외국 인재도 수집해서 이를 이용해 오직 영국에만 이익이 되는 번역 마법을 만들어내. 세상에서 사용되는 은막대의 대부분이 압도적으로 런던에 밀집돼 있어. 현재 사용되는 은막대 중 가장 새롭고 가장 강력한 것들은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아랍어로 작동하는 것들이야. 그런데 막상 이 언어들이 사용되는 나라들에는 은막대가 천 개도 되지 않아. 그것도 부유한 권력층의 집에만 모여 있지. 그건 잘못이야. 그건 약탈이고, 근본적으로 부당한 일이야.” (1권 본문 170쪽)

 

“마법.” 교수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마법이야. 항상 그렇게 느껴지진 않겠지만 말이야. 오늘 밤 자네들이 하게 될 과제만 해도, 덧없는 추구보다는 빨래를 개는 느낌일 거야. 하지만 자네들이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대담한 과업인지 절대 잊지 말도록. 자네들은 신이 내린 저주에 맞서고 있는 거야. 그걸 잊지 말도록.” (1권 본문 184쪽)

 

“그럼 교수님은 무력 사용을 지지하시나요?” 레티가 물었다.
“저들에겐 그게 최선일지 모르지.” 교수가 놀랄 정도로 격하게 말했다. “저들에겐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중국은 미개한 만주족 통치자들에게 휘둘리는 반야만국이야. 강제 개방이 그들의 상업과 진보에 득이 될 거야. 맞아, 난 약간의 충격 요법은 반대하지 않아. 우는 아이에겐 때로 매가 답이거든.” (2권 본문 37쪽)

 

“신기한 변론이네요.” 라미가 말했다. “악덕을 미덕으로 정당화하다니.” 
베일리스 씨가 코웃음 쳤다. “하, 청 황제는 악덕이든 미덕이든 관심 없어. 인색할 뿐이지. 은이 나가는 게 싫은 거야. 하지만 무역은 주고받는 게 있어야 성립해. 현재 우린 만성 무역 적자야. 우리가 가진 것 중에는 저 중국인들이 원하는 게 없어. 아편밖에는. 저들은 아편을 끝도 없이 원해. 아편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거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나라의 모두가 정신 줄을 놓을 때까지, 아편을 피워대게 할 거야.” (2권 본문 51쪽)

 

그 순간 로빈의 머릿속에 거대한 거미줄이 떠올랐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는 목화,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아편,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로 바뀌는 은,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흘러 들어가는 영국. 처음에는 아주 추상적으로 들렸다. 그저 용도, 교환, 가치의 범주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추상적이던 것이 추상적이지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지, 그 거미줄 속에서 자신의 생활방식이 어떤 착취를 야기하는지 깨닫는 순간, 그 거대한 거미줄 위에 식민지 노동과 식민지 고통의 망령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것이 보였다. (2권 본문 62쪽)

 

뻔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들의 의도였으니까. 그들은 무력 충돌을 원했다. 은 때문이었다. 청 황제가 마음을 바꾸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은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중국에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들은 출항 전부터 이미 전쟁할 작정이었다. 흠차대신 린쩌쉬와 성실히 협상에 임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 회담은 적대 행위를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전쟁 결의안을 의회에 상정하기 전, 그들은 마지막 탐색을 위한 러벌 교수의 광둥 여행에 자금을 댔다. 그들에게 러벌 교수는 악랄하고 효과적인 전쟁 수행과 승리를 위한 초석이었다. (2권 본문 127쪽)

“지금 당장은 그런 음모에 대해 우리가 손쓸 방법이 없어.” 그리핀이 말을 이었다. “세계 혁명 같은 걸 논할 때가 아니야. 왜냐, 불가능하니까. 우리에겐 그럴 인원이 없어. 지금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광둥 침공을 막는 거야. 영국의 승리가 불 보듯 뻔한데, 그렇게 되면 영국은 상당 기간 은을 거의 무한정으로 확보하게 돼. 만약 영국이 패배하면 은 공급이 말라붙고, 영국의 제국주의 역량이 크게 줄어들겠지. 바로 그거야.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이고.” (2권 본문 189쪽)

 

그들의 미션은 참담할 만큼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로빈은 이 일에서 어떤 신명을 느꼈다. 이런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라면, 막중한 미션을 이렇게 수십 개의 작은 과제로 나누고, 이에 엄청난 행운을 결합하고, 가능하면 신의 개입까지 유도한다면, 어쩌면 그들이 승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권 본문 195쪽)

 

“폭력은 저들에게 우리가 이판사판이라는 걸 보여주지. 폭력이 저들이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야. 저들의 착취 체제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거든. 폭력은 체제에 충격을 가해. 그리고 체제는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넌 꿈에도 몰라. 네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영영 알 수 없어.” 그리핀이 중간쯤의 자작나무를 가리켰다. “방아쇠를 당겨, 꼬마야.” (2권 본문 204쪽)

 

그녀는 깨쳤다. 혁명은 사실상 언제나 상상 불가라는 것을. 혁명은 알던 세상을 부순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기에 가능성으로 넘쳐난다. 식민주의자들은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것이 그들을 허둥대게 한다. 공포에 몰아넣는다. (2권 본문 430쪽) 

서평

추천 810표를 받았음에도 휴고상 투표용지에는 『바벨』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나는 특히 그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휴고상 후보에 올랐더라면 세계 3대 SF/판타지 문학상을 모두 휩쓰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조지 R. R. 마틴(「왕좌의 게임」 원작자)

 

『바벨』은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과 N. 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처럼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며, 열정적이면서도 정확하다. 
- 아말 엘모흐타르(소설가), 뉴욕타임스

 

판타지의 매력은 현실 세계로부터의 탈출이지만 이 소설에는 탈출구가 없다. 실제 역사를 유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만든다. 이야기의 결말이 보여주듯 벽을 날려버린다. 
- 앤서니 커민스, 가디언

 

서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도록, 즉 재번역하도록 한다. 
-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언어학자 괴짜들이 번역 작업에서 마법 같은 능력을 얻고, 두 언어로 된 단어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창의적인 개념으로 시작해서,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비판과 고찰로 훌륭하게 변형시킨다. 
- 워싱턴포스트

 

전지구적 체제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전략(폭력과 비폭력의 선택)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바벨은 무자비한 역사의 실험실이 된다. 
- LA타임스

 

마법으로 강화된 은막대 부적에 힘입어 끊임없이 팽창하는 제국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함께 언어학, 역사, 정치 및 빅토리아시대 영국을 면밀히 탐구한다. 
- 라이브러리 저널

 

우리는 『바벨』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쿠앙은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꾼이며 우리는 이 작품이 『해리 포터』 이후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판타지 소설 중 하나라고 믿는다. 
- 폴 리(Wiip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저자소개

저자 : R. F. 쿠앙
1996년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조지타운대학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후 마셜 장학생에 선발되어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중국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예일대학에서 동아시아 어문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스물두 살 때 펴낸 첫 소설 『양귀비 전쟁』이 네뷸러상, 로커스상, 세계판타지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스물여섯 살 때 펴낸 네 번째 소설 『바벨』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데 이어 네뷸러상, 로커스상, 영국도서상, 알렉스상 등을 휩쓸면서 영미권에서 가장 핫한 스타 작가가 되었다.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으나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이유로 불발됐던 휴고상까지 거머쥐었다면 『바벨』 한 작품으로 세계 3대 SF 문학상 석권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왕좌의 게임」 원작자인 판타지 거장 조지 R. R. 마틴이 이에 반발해 자신이 제정한 알피상을 『바벨』에 수여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다음 작품 『옐로페이스』 역시 아마존 올해의 책,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2023년 최고의 소설에 선정되는 등 자신이 반짝 스타가 아니라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차세대 작가임을 전 세계 독서계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번역 : 이재경
경영컨설턴트와 출판편집자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타오르는 질문들』 『나사의 회전』 『위험을 향해 달리다』 『젤다』 『두 고양이』 『성 안의 카산드라』 『스페이스 보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고전 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해』를 엮었으며, 에세이집 『설레는 오브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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