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 우리 역사에 중요한 씨앗이 뿌려졌다
그리고 지금 민주주의라는 꽃으로 만개했다
동학혁명의 주요 현장 답사, 동학을 다룬 역사서와 문학작품을 통해
동학혁명의 위대함과 역사적·세계사적 의의를 짚어냈다
『1860, 근대의 시작』은 문학평론가 김인호가 동학혁명을 읽어낸 책이다. 역사가가 아닌 문학 연구자가 어떻게 동학혁명에 빠져들게 되었고, 책까지 펴내게 됐는지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진실한 소회가 담겨져 있다. 이 책은 ‘발로 뛰면서’ 쓰였다.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이었던 주요 유적지들을 답사하고 동학을 담아내온 문학작품을 분석하면서 동학의 실체에 접근했다. 최제우의 『용담유사』부터 이돈화, 김지하, 박태원, 신동엽, 서정주, 이청준, 박경리 등으로 이어지는 문학 세계가 어떻게 동학을 그려냈고 해석했는지, 그들이 드러내고 감춘 것은 무엇인지 등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동학 이미지’의 역사적·문학적 전개를 포착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준비된 혁명인 동학이 어떻게 저평가, 간과되어왔는지 아울러 어떻게 면면히 이어지며 우리 역사 현장에서 부활해왔는지, 그 내적 동학을 푸코의 파레시아 개념을 통해 분석했다. 이 책은 현장답사와 이론적 탐구가 명실상부하게 결합된 동학에 대한 최근의 뛰어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아래와 같이 이 책을 평가했다.
“저자는 동학의 『용담유사』가 가사와 판소리의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 창작된 탁월한 문학이라는 역사적 해석에서 시작하여 여자와 아이와 노비를 최고의 인간으로 존중한 『용담유사』의 평등사상이 박태원과 송기숙의 작품은 물론 박경리와 신동엽 그리고 이청준, 김지하의 작품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동학사상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창조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새로운 주체’의 등장
19세기 말 동학농민군의 기세는 망국의 시절에도 우리의 주체성을 알린 놀라운 사건이다. 그렇게 일본군과 싸우겠다고 나선 농민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주체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수탈만 당했어도, 망해가는 나라를 걱정하고, 친일파를 공격하고, 변절한 자를 테러했다. 그들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내 몸에 하느님을 모신 이들이 그런 새로운 주체인데, 그들은 한결같이 현실에서 이상적 공동체를 세우고자 무모하게 나선 사람들이다.
미셸 푸코의 개념에 ‘파레시아’라는 말이 있다. ‘자기 고백’을 넘어서 ‘목숨 걸고 말하는 자기 진실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로 주체 선언을 하면서 시작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열 때는 더욱 그렇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목숨을 내놓고 임금께 상소문을 올리고는 했다. 어떤 점에서 조선이 세계사에서 파레시아가 가장 활발했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제우나 이필제, 전봉준에게서 나타난 파레시아는 그들을 따르던 농민들에게 전이되어, 우금티고개에서 온몸을 던져 파레시아를 보여준다. 그랬으니 그들이 죽은 뒤에도 당대 사람이건, 백년 후의 사람이건, 그 장엄하면서도 처참한 죽음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우금티 전투 뒤로도 독립운동을 하고, 독재자에게 저항하고, 평화통일을 추구했던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번영은 우리 내부로부터 찾아낸 그런 주체성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달리 말해 파레시아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갑오개혁’이 근대의 출발이라는 잘못된 인식
동학은 그 자체로 목숨 걸고 말하기다. 최제우는 시대와 불화하는 발언을 했기에 처형되었고, 이필제는 최제우와 동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고, 전봉준은 최제우가 기획한 보국안민과 ‘다시 개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최시형은 그들과 같은 혁명가는 아닐지라도 동학을 포덕하고, 조직화하고, 마침내 삶의 실천으로 만들면서 세상과 맞설 조건을 만든 사람이다. 최제우가 터득한 시천주侍天主 주체성은 최시형에게서 소통적 주체로 보완되었고, 이필제를 행동적 주체로 나아가게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근대를 알리는 출발점이다. 거기서 아직 산업화를 제시하지 못하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낸 ‘내장內張 근대’다. . 이는 ‘안에서 스스로 성장한 문명’이라는 뜻인데, 동학의 이념이 근대의 개념에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신분 해방과 주체 획득, 민관협치의 집강소 실시 등의 내용은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저 멀리 극동에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이 강제한 ‘갑오개혁’을 근대 기점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학혁명의 기간에 내놓은 폐정개혁의 조항들을 갑오개혁에서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집강소 시대의 개시를 근대 기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사이에 동학혁명이 있다
최제우와 최시형, 전봉준으로 이어진 동학의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금티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몰살당한 뒤에도 자신을 성찰한 양반들이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강점기에는 동학교도들이 기독교도와 협력해 3·1운동을 일으켰고, 그 후로는 민중과 양반이 서로 힘을 합해 독립운동을 했다. 동학혁명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사이에서 우리의 정신적 틀을 완성시킨 사건이다. 그 사건은 우리의 근대성을 자리 잡게 하고, 그 이후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항쟁 등은 모두 동학농민혁명을 뿌리로 해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동학과 파레시아
저자는 지난 몇 년간 삼남길을 따라 해남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혹은 지리산둘레길을 돌면서, 경주와 영해, 금강 유역, 원주와 보은의 동학길을 더듬으면서 동학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농민군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고, 그들이 발자국을 남긴 곳에서 새롭게 생긴 문화와 동학에서 비롯된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는 최제우의 사상적 기반과 전복적 힘의 원천을 찾아보고자 했다. 검곡의 화전민 터와 영해의 병풍바위 아래서는 최시형의 강인한 삶의 뿌리를 확인했다. 남원의 교룡산성에서는 최제우가 농악패의 풍물과 판소리의 애절한 호소를 들으면서 『용담유사』의 한글 노래를 썼는데, 남원이 그에게 어떻게 ‘다시 개벽’의 모티프를 주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원주에서는 최제우의 일대기로 쓴 김지하의 『이 가문날에 비구름』이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최시형과 장일순으로 이어지는 동학의 연장선상에서 김지하가 어떻게 현대적 활로를 찾았는지 확인해보았다. 거기서 1970년대 최고의 저항시인이던 김지하가 사상적 굴절을 하게 되는 양상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정읍, 고부, 태인, 백산, 원평, 삼례 등지를 돌아보면서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송기숙의 『녹두장군』을 읽었다. 공주와 부여를 답사하면서 신동엽의 『금강』을 만났는데, 동학혁명이 4·19혁명에 미친 영향, 즉 동대문에 올라온 소년이 우금티고개를 치고 올라가다가 희생된 농민군의 자식일 것이라는 환영과 만났다.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를 읽으면서는 동학의 핵심 지역에 살던 시인이 바로 집 부근에서 동학장수 손화중이 붙들려 가서 처형되었는데, 『질마재신화』에서 왜 그 이야기만 쏙 빼놓고 노래할까 생각해보았다. 이청준의 『비화밀교』를 읽으면서 장흥 석대들에서 벌어진 동학혁명의 최후 전투를 떠올렸고,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그 저항의 불씨를 어떻게 보존했는지 확인했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면서 하동과 통영, 원주 등지를 돌아보았는데, 강인한 영남의 여성들이 가문을 지켜내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영남의 힘이 지리산으로 대표되는 동학 세력과 결합해 새로운 문화, 새로운 가문, 새로운 국가를 이뤄내는 장면에 감탄하기도 했다.
풍자와 해학으로 통찰해낸 삶의 진실
저자는 이들 작품을 읽으면서 진실을 찾고 보존하려는 용기와 만났다고 고백한다. 최제우의 『용담유사』와 신동엽의 『금강』, 김지하와 김남주의 시에서는 강력한 파레시아를 만난다. 우리 문학을 이끌어온 힘은 어쩌면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노골적으로 체제와 권력에 저항한 작품도 많지만, 박경리는 『토지』에서 지리산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동학을 이야기했고, 이청준의 소설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 저항의 불씨를 감춘 채 숨겨놓은 파레시아를 보여준다. 한편 어느 시인은 자신의 가장 깊은 존재의 내면에서 두레박을 던져 뭔가 길어올린다고 하지만, 자기 주변에서 자기를 이루던 동학을 외면했기에 자신의 존재 자체까지도 잃어버린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
저자는 판소리의 해학과 풍자의 이면에도 파레시아가 담겼다고 주장한다. 농악패와 어우러져 신바람내면서 왕권의 무능을 폭로하고, 양반을 조롱하고, 잘못된 시스템을 폭파하자고 말하는 내용이 『수궁가』 『춘향가』 『흥보가』에 담겨 있다. 그러다가 『심청가』에 이르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심봉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장님의 눈을 뜨게 만드는 장면에서, 백성이 무지에서 깨어나고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확인해주는 파레시아를 만나게 된다. 몰락 양반인 청송심씨 심청이나, 반남박씨 박흥보, 기생 출신 성춘향에 이르기까지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근대를 연 자들이다. 그런 기운 속에서 임술민란이 일어났고, 동학농민혁명이 터진 것이다. 저자는 경주, 영해, 원주, 공주, 정읍, 고창, 남원, 장흥, 하동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런 기운을 느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19세기는 비극적 시대이지만 파레시아의 정신이 종합적으로 터진 시대이고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랬기에 더 위대한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다시 쓰이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