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라는 광활한 우주의 가장 독보적인 별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장편소설 국내 첫 출간!
‘훌륭한 SF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늘 테드 창, 그렉 이건과 함께 빠지지 않고 해외 독자들에게 거론되는 작가가 있다. 바로 영국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다. 즉,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SF 명예의 전당에 오래도록 이름을 남길 중요한 작가 한 명을 영영 놓친다는 말과 같다. 198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로커스상, BSFA상, 세이운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고, 휴고상, 아서 C. 클라크상, 필립 K. 딕상에 후보로 다회 지명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왔다. ‘하드 SF의 거장’, ‘스페이스 오페라의 대가’라는 타이틀은 그의 작품 세계를 향한 독자와 평단의 두터운 신의를 보여준다.
앨러스테어 레이놀즈는 천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유럽우주국의 천체물리학자로 일했다. 그가 현재의 과학으로 미래 기술을 추론하는 작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는 범위 내에서만 과학 기술을 다루는 작가로 유명해진 배경이다. 천체물리학자만의 전문성은 작품에 특유의 과학적인 설득력을 부여해 왔다. 이런 창작 신념에서 엿보이는 치밀함은 작은 설정과 장치에도 천착하는 그 특유의 장인정신을 이뤄낸 배경이기도 하다. 올해로 약 30년째 왕성한 작품 활동 중인 그는 2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정교하고 매혹적인 세계관, 참신한 플롯, 인간 존재와 우주에 관한 깊이 있는 철학, 세밀하지만 낭비 없는 묘사를 펼치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전환》은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수작 중의 수작이다. 19세기의 한 범선 위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원정대와 탐험하는 도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탐험과 죽음이 20세기, 근미래, 먼 미래에도 반복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구성이다. 그러나 작가는 미묘한 변주와 의미심장한 암시로 이를 능란하게 돌파해 나간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탐험 수단이 범선에서 증기선, 비행선, 우주선으로 바뀌며 이들의 과학 지식 수준 또한 점차 높아지는 식의 철저하게 고증된 설정은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조금씩 달라지는 인물들의 현실 인식과 딜레마는 몰임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또한 다양한 장르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작품 전반에서 미스터리, 고딕호러, 러브크래프트의 분위기가 적재적소에서 긴장감을 살린다. 하여 작가 김겨울이 다음과 같이 평한 것도 과연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아주 잘 만든 SF 게임 한 편을 끝낸 기분이다. 숨 가쁘게 이야기를 따라갔더니 수 시간이 흘러있었고, 현실로 돌아오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범선, 증기선, 비행선으로, 그리고 우주선의 다른 모습으로 여러 번 떠나고 여러 번 죽는 동안 어느새 데메테르호 원정대의 일원이 된 모양이다. 당신도 함께 모험에 나설 텐가? 미지의 구조물과 용감한 대원들, 미스터리한 죽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일단 탑승하면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_김겨울(작가·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미지의 구조물을 찾아나선 데메테르호 원정대
이들에게 반복되는 탐험과 죽음의 이유는 무엇인가?
풍파가 휘몰아치고 유빙이 떠다니는 19세기의 음울한 노르웨이 해안. 그곳의 해안 절벽을 따라 항해 중인 범선 한 척이 있다. 탐욕스러운 대장 토폴스키가 이끄는 데메테르호다. 보조의사로 고용된 사일러스 코드를 포함한 그 배의 원정대는 토폴스키의 야망에 이끌려 지도에도 기록되지 않은 장소 ‘균열’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것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원정대원 중 한 명인 수학 천재 뒤팽이 기적적으로 ‘균열’을 발견하는데. 목표물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난파선을 발견하고, 사일러스 코드는 배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일러스 코드의 죽음은 다음 세기, 그 다음 세기에서도 반복된다. 늘 알 수 없는 기시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원정대와 함께 ‘균열’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구조물로 다가가지만, 거부 반응을 일으키듯 그의 운명은 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죽음 직전,자신이 이전에도 여러 번 죽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전에도 죽은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데메테르호의 현실을,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직시하려 들지 않으니까요.”
사일러스 코드가 계속해서 파멸에 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가 직시하려 들지 않는 데메테르호의 현실이란 무엇일까? SF 평론가 심완선은 ‘뭔가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중얼거림이 작품 내에서 기이한 선율처럼 울리며, 이것이 읽는 이를 불안감으로 몰고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뭔가’를 둘러싼 기나긴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흔히 소설에 기대하는 점이다. 이 책은 “끝까지 풀지 않고는 못 배길 수수께끼”다. 초반부를 지나 급경사의 긴 미끄럼틀로 진입하는 순간, 쉽게 풀리지 않아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라는 심완선 평론가의 평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은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다. 이 책은 의미심장한 단서를 흩뿌려 놓은 입체적인 퍼즐이다. 처음에는 모양을 짐작하기 어려울지라도 뒤로 갈수록 손을 바삐 움직이게 된다. 작중 “끝까지 풀지 않고는 못 배길 수수께끼”라는 표현은 소설 자체에도 어울린다. 이것은 끝이 궁금하면서도 끝나가는 게 아쉽다는 양가감정을 자극한다.
_심완선(SF 평론가)
‘진실에 다가갈 때마다 내 세계는 뒤집혔다’
꿈과 현실의 자리를 뒤바꾸는 존재에 관한 딜레마
진실에 관한 암시는 《대전환》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은밀하게 퍼졌다가, 진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쯤 정교하게 수거된다. 이는 이야기의 외연을 파악하게끔 도와주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읽는 이를 무지의 한가운데로 내모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그중 가장 의미심장한 단서 혹은 함정이 있다면 ‘전환’에 관한 메시지일 것이다.
데메테르호 원정대의 지도제작자이자 수학 천재인 뒤팽은 ‘구면 전환’이라는 위상수학적인 문제에 집착한다. 3차원 공간에서 구면의 내부와 외부를 뒤바꾸는 방법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전환이 도중에 멈췄을 때의 ‘모린 표면’ 상태, 즉 뚱뚱한 거미나 검은 문어 같은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또 사일러스 코드가 쓴 소설 위에 누군가 적어놓은, 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적어놓은 “전환!”이라는 메시지는 어떤 실마리인가? 우리가 진실의 일면을 확인하는 순간, 소설은 다시 한번 ‘대전환’을 시도한다. 이전까지 이야기된 모든 것들, 이를테면 직전에 알려진 진실마저 새롭게 만들어진 허구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작과 끝, 허구와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사일러스 코드가 현실에 완전히 발붙이기 위한 방법은 유일하다. 바로 그가 마주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일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그러나 본성이란 무엇이며, 그 본성에 사일러스 코드의 의지는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
“내 의무는 딱 하나, 바로 승무원들의 안녕입니다.”
《대전환》은 그동안 우주를 배경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썼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대한 시간 배경을 펼쳐두고 그 위에 매력적인 세계관을 창조해낸 그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제시하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인 고민이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