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경성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한 단발미인은, 1930년대가 되면 어느 정도 일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마침내 근대적 선택항으로서의 단발이 식민지 조선의 취향으로 자리잡았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취향이라는 욕망을 심어준 매체를 주도한 것은 결국 식민지 지식인 남성들이었기에, 하나의 취향을 선택하기까지 그녀들이 겪었던 정치사회적 지향들은 오히려 외면되는 모순이 발생된다. 그들은 모던 걸의 단발을 여성 주체의 각성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부재를 채운 것은 그들을 '단발미인'이라 호명하는 또 다른 타자, 지식인 남성들의 욕망이었다. - '단발에 매혹된 근대' 중에서
그런데 그보다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더 있다. 1930년대 후반 장편소설에서 운동에 재능을 가진 만능 스포츠맨형 남성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거기엔 손기정 선수가 있었다. 바로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도 유명한, 손 선수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획득이다. 이는 근대스포츠와 그 경연방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끌었고, 김남천은 『대하』에서 그러한 독자들의 기호를 적극 반영하였다. 달리기, 줄다리기, 기마전 등 운동회 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룰과 경기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올림픽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라톤에서의 금메달 획득이 근대적 영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 것이다. -'운동회, 놀이의 근대성과 몸담론' 중에서
중앙시험소는 식민지 시기 조선에 설립된 유일한 공업 시험연구기관으로, 공업 종사자들이 의뢰한 공업원료를 분석, 시험, 감정하거나 공장을 방문하여 기술지도 및 강습 등의 사업을 전개했던 조선의 공업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었다고 평가된다. 「개척자」가 발표된 시기가 1917년이고, 이 발표 시기를 기준으로 주인공 성재의 귀국 시기를 가늠해보면 1910년 무렵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성재라는 인물을 형상화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해진다. -'실험실과 상상된 과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