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내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손자병법의 진리는 더욱 빛을 발했다.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을 꼽으라면 나는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과 ‘부전승 (不戰勝)’ 그리고 ‘형세절(形勢節)’을 말한다. 도천지장법, 부전승, 형세절 등 손자병법의 여러 구절들은 계엄과 내란 국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영감을 주고 또한 전술・전략의 기준점이 되었다.
― 10-11쪽, 〈프롤로그: 손자, 대한민국을 구하다〉 중에서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손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전쟁은 단지 1 대 1이 아니라, 수많은 주변국과의 싸움이다. 전쟁에서 지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해 또 다른 적들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계엄 전쟁으로 인한 타격을 최대한 줄이고, 새로운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안심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 그것을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손자병법의 구절이 있다.
“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전쟁은 국가의 중대사로 국민의 생사와 존망이 걸려 있다. 그러므로 세심한 검토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亡國 不可以復存 死者 不可以復生(나라는 망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사람은 죽으면 두 번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각각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과 〈화공(火攻)〉 편에 나오는 말들로, 손자가 ‘전쟁’을 얼마나 절박하게 인식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들이다. 손자는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이고,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음을 강조한다. 지금 이 시점에 와서 보니, 손자병법이 이야기하는 ‘전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
― 14-15쪽, 〈프롤로그: 손자, 대한민국을 구하다〉 중에서
만약 손자가 ‘지신인용엄’의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어떨까? 과연 그는 국군통수권자로서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낙제점이다. 가장 먼저 지(智)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지피지기부터 실패했다. 아군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대통령 윤석열은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군의 생리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했고, 전략적 사고 면에서도 훈련이 부족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을 옮긴 이후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10여 개 부대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자신이 군을 잘 안다고 착각했을 수 있다. 바로 그 착각이 2024년 12월 3일에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 망동을 저지르게 만든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 31쪽, 〈1장 장수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중에서
사실 손자병법은 철저히 공격수를 위한 책이다.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방어가 아닌, 내가 주도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위한 병법을 가르친다. 이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엄을 할지 말지 반신반의하며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계엄이 현실화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는 것 또한 하수(下手)의 전략이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즉 부전승(不戰勝)이 아니던가. 한마디로 저들이 감히 계엄을 꿈꾸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최고의 공격이자 최선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저들이 감히 계엄을 꿈꿀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또한 손자병법을 통해 답을 구하고자 했다.
― 64쪽, 〈3장 기만, 먼저 판을 흔드는 책략〉 중에서
이재명 대표의 방송을 시청한 시민들은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서로 앞다투어 국회를 향해 달려왔다. 유튜브 방송을 보고 국회로 모여든 국민은, 거대한 ‘세’의 물결을 이루었다. 마치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듯, 저수지에 가둬놓았던 물을 한꺼번에 터트리듯, 엄청난 기세로 군경을 에워쌌다. 그들은 불법적인 명령에 따르지 말라고 외치며 군경을 돌려세웠고, 맨몸으로 거대한 군용 차량을 막아 국회의원들이 안전하게 국회 담장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재명 대표의 기지와 용기 덕분에 강력한 ‘세’가 형성되었고, 그 덕분에 계엄 경찰과 계엄군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형세’를 통해 계엄의 판세를 뒤집은 우리는 단숨에 국회 본회의장을 장악하고 거침없이 ‘절(節)’을 이루어냈다. 순식간에 국회의원 190명이 모였고, 전원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절차상의 아무 흠결도 남기지 않고 드디어 계엄 가결 선포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린 순간, 바로 그 역사적 장면이 ‘절’에 해당된다.
사자가 들소의 목을 단숨에 물어 숨통을 끊듯, 독수리가 먹잇감의 목을 단번에 부러뜨려 낚아채듯, 계엄의 숨통을 끊어놓은 것이다. ‘형세절(形勢節)’을 통한 완벽한 승리였다.
― 98-99쪽, 〈4장 민주주의를 되찾은 밤〉 중에서
특전사와 수방사의 ‘계엄 명령 불복 선언’을 받아내고 나니, 다른 부대들의 지휘관들도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9일, 김현태 707 특임단장은 “부대원들은 김용현 장관에게 이용당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면서 “모든 잘못은 제가 지휘관으로서 내린 명령에 따른 것이며, 계엄 당시 국회의사당 진입을 명령한 것도, 헬기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해 지휘한 것도 저입니다. 707 특수임무단의 모든 잘못은 지휘관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라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 (…) 자신의 수족과 같았던 계엄 핵심 부대들이 연이어 ‘계엄 불복종 선언’을 했으니, 윤석열 대통령도 더 이상 2차 계엄이라는 허황된 망상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명령은 ‘내리는 자’가 아니라 ‘따르는 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17-118쪽, 〈5장 명령은 따르는 자에 의해 완성된다〉 중에서
방송에 출연할수록 더 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블랙요원들도 우리의 방송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불법적인 명령에 분노를 숨기지 못한 채 고발을 해오는 요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양심 고백을 할 테니 자신들이 제발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건 우리였다. 그들이 용기를 내서 증언해준 덕분에 ‘믿기 힘든 제보’는 ‘정확한 정보’로서 가치를 갖게 되었고, 우리는 그 ‘정보’를 통해 내란 세력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계엄을 준비해 왔는지, 수사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번 작전은 손자병법 〈모공(謀攻)〉 편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를 잘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개적인 문제 제기와 여론의 압력을 통해 적의 군사로 동원된 블랙요원 대원들의 계획을 중단시키고 무기를 반납하도록 만들었다. 싸우지 않고 적의 군사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계책이라고 했는데,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 없이 정보 공개와 언론 활용, 여론 형성 등의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으니, 손자의 가르침에 또 한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 142쪽, 6장 〈정보 우위로 막아선 내란〉 중에서
손자병법 ‘허실(虛實)’ 편에는 ‘피실격허(避實擊虛)’라는 말이 나온다. 불리한 판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서 적의 허한 곳을 치라는 것이다. 윤석열 측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리자 판을 바꾸기 위해 곽 전 사령관의 ‘인원’이란 단어를 약점 삼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역으로 더 크게 당하고 말았다. 허를 친 것이 본 실력이 아니라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얕은 술수였기 때문이다. 허함을 이기는 강함은 결국 진실이다.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의 힘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_181쪽, 〈10장 프레임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중에서
손자가 강조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우리가 맞서야 할 극우 세력은 그저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극우 세력의 특징을 꼼꼼히 분석하고, 그들의 전략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병무상세 수무상형(兵無常勢 水無常形)’이라는 말처럼 극우 세력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극우 세력은 체계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끊임없이 말과 행동을 바꿔 상대를 공격한다. 그에 맞서려면 우리도 고정된 전략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 202쪽, 〈12장 적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 중에서
국가적 비상 상황이었던 계엄 초기에는 국무위원을 모두 탄핵하더라도 ‘거국 내각’이라는 대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의견 충돌, 그리고 ‘대통령 흔들기’라는 프레임을 우려한 일부 중진 의원들의 반대, 더욱이 국민의힘의 극렬한 반발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에 거국 내각은 결국 불발되었다. 그 결과, 내란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한 국무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고, 이것이 결국 계엄 정국의 암초가 되었다. 그들은 끝까지 계엄에 동조한 것을 반성하지 않았다. 이런 그들에 ‘탄핵’으로 맞섰더니 ‘줄탄핵’ 프레임으로 오히려 역공을 당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우리의 단호하지 못했던 초기 대응이 상대를 강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반격의 빌미를 만들어준 것이다.
― 221-222쪽, 〈14장 자만과 방심, 스스로 부른 위기〉 중에서
손자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여 적의 허를 찌르고, 숲처럼 은밀하게 숨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불길처럼 거세게 공격하고, 산처럼 우직하게 진지를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적에게는 그림자처럼 예측할 수 없게 행동해야 하고, 움직일 때는 천둥처럼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핵심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악해봤다.
① ‘기다림과 빈틈 공략’을 통해 적의 허점을 노린다.
② ‘속도와 변화’로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인다.
③ ‘혼란 조성’으로 적의 판단을 흐려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전환한다.
― 240-241쪽, 〈15장 여론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찍이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용 대신 엄격한 단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남은 내란의 잔불을 완전히 제거하고, 내란의 잔불은 물론 잠재된 씨앗까지 완전히 말려버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고, 헌법 정신을 수호하는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권력 분립과 견제 원칙을 강화하고,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하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 또한 우리의 중요한 과제다. 12・3 내란의 잔불을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다.
― 260-261쪽, 〈16장 민주주의에 이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