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의 세계에서 인간은 대체로 유죄이고, 가끔씩 무죄지만, 그런 뻔한 것들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죄와 무죄의 틈바구니를 애써 버티는 힘으로 사람의 역사는 쓰인다. 그러므로 검사로 일하며 내가 매일 마주한 것은 시커먼 악의 얼굴도 청명한 정의의 얼굴도 아니다. 다만 애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여기에 조금씩 기록해보았다. 거기에는 직업병처럼 미간을 좁힌 채 각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분투하는 나와 내 동료들의 표정도 들어 있다._8쪽
확인되지 않은 괴벨스의 어록 중에 ‘100퍼센트의 거짓보다 1퍼센트의 진실이 섞여 있는 쪽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100퍼센트 진실일 수 있는 영역에도 습관적으로 거짓을 섞었다. 그리하여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진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일 자체가 허망한 것이 되기까지 그녀는 삶의 전방위에서 끊임없이 거짓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사기꾼으로서 그녀의 위대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_31쪽
그 판단의 기로에서 내 마음의 축을 조금 기울인 것은 앞으로도 가족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그들의 남은 삶이었다. 어쩌면 무모하고 비논리적이고 모순 가득한 가족애라는 이름의 희망. 어떤 행위가 어떤 범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는 일에 그런 비정형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을 섞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의 일을 다룸에 있어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온당한가 하는 생각으로 오래 창밖을 응시하게 되던 시절이었다._52쪽
다소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남자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오래전부터 내심 궁금했던 의문, ‘왜 수많은 남자들은 싸울 때 웃통부터 벗어 던지는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멱살을 잡히지 않기 위해 웃통을 벗어 던진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자신의 몸매나 문신을 과시하려고 그러는 줄로만 알았었다. 문신도 없고 몸도 좋지 않은데 웃통을 벗어 던지는 남자들도 꽤 있어 좀 의아하기는 했다. ‘혹시 열이 나서 더워서 그러나?’ 정도 생각해보았지, 그렇게 전술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_55쪽
다만 설사 그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가 무너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폼생폼사의 인생에서 그의 폼은 이미 죽은 것이다. 인간은 놀랍도록 영특하고 찬란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저토록 한없이 무너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자주 보는데도 매번 아찔하다. 그의 안에서 무너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결국 무너진 것은 과거의 그를 지탱하던 것일 텐데, 그런 것에도 꿈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우정이라든가 신뢰 같은 이름을 붙여도 좋은 건지에 생각이 이르면 입안이 쓰다._74~7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죄가 곧 공판검사의 패배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다만 피고인이 아니다. 이 싸움에 대해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법정이 내어줄 수 있는 답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그런 방식으로 기껏 다가간 진실의 근처가 참 별것 아니라는 사실에 무력해진다. 최선을 다해 달려간 성취의 끝에서조차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의 슬픈 얼굴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애가 쓰인다._122쪽
좁아터지더라도 1층에는, 그것도 민원실 옆에는 검사실을 설치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보통 검사실은 엄격한 출입통제선 뒤에 있으면서 출입등록이 된 사람들만 드나드는 공간이었지만 민원실은 달랐다. 분기탱천한 민원인들이 민원실 옆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다행인 것은 당시의 내가 20대의 앳되고 미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다짜고짜 검사 어디 갔냐고 찾는 사람들에게 컴퓨터 뒤에 있다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지금 검사님 안 계세요” 하면 쉽게 수긍들을 했다._125쪽
‘너만 나에게 술을 주지 않았어’라고 그가 내게 말하던 순간, 존재하였으되 애써 무시했던 것들, 그와 나 사이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권력, 그 간극을 채워보기라도 하겠다는 양 그 자리에 넘치던 과장된 충성의 잔들, 거기에 담긴 욕망과 그들로부터 애써 초연하고 싶었던 나의 욕망, 그러면서도 나의 초연함이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 실은 절대 초연하지 않았던 나의 두려움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민낯을 드러내버려 어찌할 바 모른 채 치를 떨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_149쪽
6시 퇴근 종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맹렬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가슴을 안고 정신없이 퇴근해 아기를 안으면 아기도 허겁지겁 젖가슴을 파고들었다. 아기의 조그마한 입이 오물거려 터질 듯한 압박감이 마침내 풀리는 순간, 그 시원함과 안도감은… 역시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 걸 알 리 없는 남자 상사들이 종종 회식을 잡았다. 친목이고 뭐고 해결되지 않는 압박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기 일쑤였다. 이성을 잃은 내가 상을 뒤엎거나 부장을 향해 주먹을 날리게 되는 미래가 자꾸 그려졌다._177쪽
실은 인간의 선의를 오롯이 믿지 않는다. 자신의 이해득실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숭고한 친애를 확신하지 않는다. 언제고 돌아서서 송곳을 겨눌 수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신뢰라는 사실을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놓고 잊지 않으려고 한 번씩 꺼내어 만져보는 못난이가 바로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한 말과 글이, 어떤 절박한 이의 이야기를 듣는 짧은 시간이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잠시나마 막을 수 있다면, 무너지는 하늘 아래 속수무책 서 있는 누군가의 곁에 같이 서 있는 일은 해볼 만하지 않은가._187쪽
그리하여 마주한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 앞에 어떻게 성장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는지는 오직 나에게만 속한 일이었다. 법정이라는 무대의 한편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나만의 춤을 완성하기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지켜보는 이가 몇 명 되지 않는 어느 국민참여재판 법정에서, 나만의 치열한 춤을 구사하던 어느 날, 재판을 방청하러 왔던 후배가 말했다. “와 선배님 최종진술 할 때 보니 무당이 작두 타는 거 같았어요. 홀려서 보다가 벌떡 일어나 박수 칠 뻔했다니까요.” 무대 뒷줄의 가장자리에서 나만의 춤이 천천히 완성되고 있었다._205쪽
한창 공판검사로 재판 현장에 설 때 나는 이상하게 재판을 마치고 오면 다리가 아팠다. ‘재판이라는 것이 다리로 하는 일이 아닌데, 왜 다리가 아프지?’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생각해보니 나는 법정에 서 있을 때 발가락 끝부터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서 있는 버릇이 있었다. 법정은 자주 세상의 끝이거나 갱도의 막장 같은 곳이어서, 겨우 흔적들을 모아 진실의 원형을 입증받고자 하는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다리에라도 힘을 주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_223쪽
그런데 다 비슷해 보이는 슬픈 인간들의 도시 너머 어느 곳엔 유독 심쿵요정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도 사기, 음주운전, 절도와 폭력 사건들이 벌어지고 기록으로 묶여 검사의 책상 위로 배달되지만, 그 위로 불쑥 꽃을 내밀고, ‘심쿵!’해버린 검사의 표정이 어떻게 풀리는지 기대에 차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 어떤 꽃이 피는지 다 알아두었다가 철마다 찾아보고, 그 좋은 걸 나누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범죄도 조금은 유순해지고 상처도 조금 빨리 아문다._237쪽
“10월 말, 감 수확철 동안에는 사람을 부르지 말아주세요. 그 시기 상주에서는 손 달린 사람은 모두 감을 깎아야 합니다. 심지어 양로원에 누워 있던 할머니들까지 모두 나와서 감을 깎습니다.” 다시 한 번 상주의 유구한 전통에 대해 알려준다는 듯이 엄숙하면서도 어딘가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에게 외지에서 온 풋내기 검사가 천진하게 묻는다. “꼭 그때여야 합니까?”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단호하게 말한다. “네, 그때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감이 물러져버리거든요.”_242쪽
어떤 날은 부장이 사건을 반려한 직후 또각또각또각 기세 좋게 오다가 갑자기 또오각 또오각 걸음이 느려지더니 발걸음 소리가 부장 방문 앞에 잠시 멈췄다가 또각 또각 또각 돌아가더라고 했다. 필시 반려를 받고 들이받으려고 기세 좋게 오다가 ‘아닌가?’ 잠시 생각하다가, 마침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부장은 분석했는데, 정말 귀신같이 맞았다. 역시 부장검사의 촉은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아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채로 슬픈 얼굴을 마주하는 일들에 제법 익숙해졌다. 결국 그 무엇도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며 각자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의 아픔이 있다는 정도로 나의 세상에 대한 관점은 정리되었다. 그 옆에서 다만 슬픈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정도가 세상의 물결 속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살아가기를 꿈꿨던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하고 굳은살이 좀 생긴 마음으로 수긍해본다._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