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근(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표준말 산문 시조뿐인 시조 문단 현실에서 《토박이말 시조 100선》을 만남이란 반갑고 경이로운 일이다. 토박이말 시조는 절로 운문 시조가 되고 운문 시조는 가락이 잡혀 장언지長言之의 열지說之를 누리게 하는 《토박이말 시조 100선》이야말로 분명 우리 시조 문단의 경책警策이 될 터이다. 이에 표준말 산문으로 삼행시 같은 시조를 짓고 만족하는 시조인들에게 《토박이말 시조 100선》을 강권强勸하고 싶다. 시제詩題만 주면 1분 내로 시詩를 척척 지어내는 AI 시인도 《토박이말 시조 100선》의 토박이말 시조를 흉내 내지 못하리라. 누만년累萬年 우리의 삶이 녹아든 토박이말의 정情과 가락을 AI 시인이 오랫동안 소화하지 못할 터이니 《토박이말 시조 100선》의 등장은 더욱더 돋보인다. 시조인은 글짓기하는 문인이 아니다. 새로운 말소리를 찾아내 가락을 누리게 해 줌이 시조인의 본분이라고 《토박이말 시조 100선》이 경종을 울려 주어 참으로 감격스럽다. 새로운 말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새로운 말소리 가락은 공용어인 표준말 속에 있음이 아니라 골짝마다 말투와 말씨가 다른 토박이말 속에 숨어 있음을 알려 준다. 시조인 김복근이 보여 주는 《토박이말 시조 100선》이야말로 우리 시조정맥時調正脈에 참으로 반갑고 우뚝한 지남指南이 되리라 확신한다.
김정대(경남대학교 명예교수)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다. 긴 세월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는 도서관 하나에 가득 찬 책에 기록된 내용과 맞먹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그 노인(인간)의 지혜는 ‘말(언어)’로써 드러나니, 말이 어찌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때의 말은 그 노인이 살았던 지역의 말, 곧 토박이말이니 어떤 종류의 토박이말에도 지혜는 녹아 있는 법이다. 토박이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상의 대부분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비극(재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말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복근 시조인이 보여 준 겡상도 토박이말로 읊조리는 단시조 100선 《천지삐까리》는 대단히 소중한 시조집이 아닐 수 없다. 표준말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우리말 체계에서 토박이말로 한 권의 시조집을 묶어 내는 일은 대단히 용기 있는 작업이다. 그가 보여 준 경남 토박이말 잔치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면서 《천지삐까리》에 등장한 작품을 본뜬 시조 한 수로써 이 글을 마무리한다.
지역말꺼정 적을수있다 거룩한님 뜻을잇아
겡상도 토박이말 시조집으로 꽃피우니
말모이 돋아난별빛 묵묵옹손지 수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