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다. 빨간 버찌책방 로고 스탬프를 찍은 종이책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제안해왔다. 온라인 영상물이 진짜 경험을 감쪽같이 대체하는 세상에서 책과 사람 사이 인간다운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종이책을 손에 꼭 쥐게 한다. ‘함께 읽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콘셉트와 슬로건 ‘read your life’은 책과 사람을 잇고, 그 연결 고리를 꾸준히 돌보기를 잊지 않으려는 방향타였다. 끊임없이 변화하되 한결같은 마음은 유지하기, 그것만이 책방지기의 변함없는 계획이었다. 버찌책방에서 책은 판매 수단일 뿐, 우리는 생의 온기가 깃든 경험을 판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책방지기의 경험이 ‘계획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치밀한 계획 따윈 없었다. 단지 책에 집중하고 책에 대한 경험으로 깊게 나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이 책은 ‘책을 이만큼 팔았어’의 결과라기보다 ‘책을 함께 나누었어’라는 과정에 가까운 이야기다.
- 프롤로그 중에서
“월세 비싸지 않아요? 돈은 벌어요?”
책방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여기서 판매하는 책을 보니 궁금해졌어요. 뭐 하셨던 분이세요?”
그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어떻게 책방을 차리게 되셨어요?”
다행이다. 책방의 이야기를 궁금해해서. 길게 설명하기보다 지역 도서관 월간지에 소개된 기사를 슬며시 내민다. 카운터 앞에서 한 쪽짜리 책방 소개 글을 유심히 읽는 손님의 표정을 바라본다.
“아, 잘 읽었습니다. 공간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공간 이야기를 알게 된 손님의 눈빛이 전보다 힘이 있다. 말투와 표정이 조금씩 변하는 걸 느낀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보이지 않던 요소들이 피부에 와닿아 책을 파는 상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공간이 하나의 작은 세계로 변모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통과해 온 시간을 고작 한 페이지에 축약한 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제한된 분량의 백지 안에 다 담을 수 없던, 매일 일어났던 책방 이야기를 가장 많이 받는 두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 전세 보증금을 빼서 책방을 열었습니다 중에서
2019년부터 ‘책방지기’라는 직함으로 살아왔다. 이사 하면서 10평에서 20평으로 책방 규모는 커졌고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났지만 ‘책을 팔아서 돈은 버냐?’라는 질문에 아직도 쉬이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책방이 어렵다, 쉽지 않다는 말은 진심으로 그만하고 싶다. 그렇지만 책방은 책방지기 가족과 책방을 애용하는 책벗들에게 읽고 쓰는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책방에서 자라다시피 한 아이는 10대가 되었고, 남편은 책방을 함께 가꾸며 자연스럽게 약을 끊었다. 매달 갚는 대출이자는 월세나 마찬가지지만 책방에서 각기 다른 삶을 만나고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견디고 산다. (이제 이자 말고 원금도 갚고 싶다!)
책방을 찾는 손님은 귀하다. 온라인 서점의 편리와 가격, 대형서점의 쾌적함과 다양하고 넉넉한 재고라는 장점을 마다하고 작은 책방을 일부러 찾아온다는 건 굉장한 노력이다.
“어서 와.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한결같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 책처럼 내 손으로 꾸며놓은 공간이 일상에 쉼표를 선사하는 휴게소가 되길 바란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숨 가쁘게 살아가다 나로 되돌아갈 수 있는 책 휴게소.
- 전세 보증금을 빼서 책방을 열었습니다 중에서
일과를 마치고 손목시계를 벗을 때마다 타투가 눈에 들어온다. 타투에 담았던 나의 소망도 좋든 싫든 매일 떠올리게 된다. ‘맞아, 사랑과 평화였지’ 매사 감시와 평가였던 금융회사 조직에서 폭식과 거식을 오가며 불안을 잠재웠던 스물아홉 살 그리고 결혼과 출산, 서점업으로 30대를 살아오며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완전한 사랑과 평화는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다만 좋아하는 무언가를 마음껏 좋아하는 시간만큼은 내 안에 사랑과 평화가 잠시 머문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종이책과 연필 그리고 빈 노트라는 사실을.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는 친구들까지.
- 살갗에 새기는 다짐 중에서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이사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가구와 책이 빠진 공간은 여전히 정리할 게 남아있었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간판을 떼어냈다. 책방 시작할 때 간판업자의 손으로 설치했던 간판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져보고 안아도 보았다. 내가 직접 만든 로고가 그려진 책방 간판을 달았던 날, 환하게 켜놓은 채로 가족이 다 함께 바라보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버찌책방의 간판은 책방의 ‘이름표’이고 책방지기 가족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2년 2개월 동안 책벗들과 함께 사용했던 물건과 책들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들여놓았다. 익숙했던 책방 물건도 아파트로 옮기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새 가구를 산 기분, 책을 선물 받은 기분이 잠시 들었다. 작은 방 한 켠에 책방에서 사용했던 책장을 놓고 이삿짐센터 아저씨와 함께 책을 꽂았다. 한 권 한 권 손에 잡힌 책을 마주하며 책으로 이야기 나누던 순간들이 퍼즐 조각이 되기 시작했다. 책장을 거의 다 채웠을 즈음엔 버찌책방의 2년이라는 시간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퍼즐로 완성되었다.
- 버찌책방의 첫 번째 매듭 중에서
착공 7일 차 2022년 7월 8일, 잘 부탁드립니다
아침 7시 반, 공사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새벽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날씨는 어떨지(더 이상 일기예보 안 믿음) 오늘은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궁금해요. 돈 걱정은 잠시(철근, 콘크리트가 금값), 집을 짓고 있다는 설렘에 잠이 싹 달아납니다.
“쓴 거 안 먹어요!”
첫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갔다가 혼났어요. 작업 하는 아저씨들에게 원두커피보다 커피 우유에 초코파이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메뉴를 바꾸었습니다. 커피 향 은은하게 풍기는 새벽 공사장을 상상한 건 모든 것이 처음인 건축주의 몽상이었나 봐요.
매일 간식을 사 들고 현장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눕니다. 달콤하고 시원한 간식으로 공사장의 더위와 피로를 달래드리고 싶어요. 안전모와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벗으면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인 분들이니까요.
- 공사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엄마 따라 책방을 지킨 지 4년 반, 아이는 스스로 ‘꼬마 책방지기’라고 부른다. 아이에게도 학교와 집 밖에서 부캐, 사회적 역할이 생겼다. ‘꼬마 책방지기’는 엄마의 가게가 아닌 가족이 함께하는 가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책방을 시작하며 지은 별칭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목록 8할 이상이 그림책 주문에 영향을 주었으니, 아이도 책방의 큐레이션에 참여해 온 셈이다.
종종 엄마와 함께 책방을 지키는 주말 동안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전면 진열 칸으로 옮겨 놓고는 종이 아까운 줄 모르고 능숙하게 책갈피 하나를 ‘툭’ 꺼내 ‘꼬마 책방지기 추천 도서’라고 ‘쓱’ 적어 마스킹 테이프로 ‘착’ 붙인다.
- 꼬마 책방지기는 언제 와요? 중에서
독서 모임에서 만나 끝없는 책 수다를 나누던 사람이 남편이 되었다. 남편은 아빠가 되고 나서 중증 불안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남편이 매일 복용한 약은 평균 열 알 가까이 되었다. 수많은 의사와 상담사가 우리 가족을 거쳐 갔고, 심리 상담과 치료는 언제나 관심 레이더의 한가운데 있었다. 치료 중인 배우자, 병명과 약 봉투와 함께 살아온 5년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치료 초반 ‘내 결혼 생활은 왜 평범하지 못한 걸까’라는 자책으로 나를 적잖이 괴롭혔다.
자신도 모르게 가까운 이들에게 투사하는 분노와 불안, 우울이라는 감정의 화살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긴 터널을 통과하며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 작은 틈이라도 내려고 몸부림쳤다. 그 몸부림의 하나가 바로 ‘책방’이었다.
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책방에서 가족의 미래를 긍정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혼돈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남편, 밝은 기질과 너른 마음을 가진 아이, 하루하루를 지탱하게 만드는 문장 그리고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책방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오늘치 아픔을 마주하면서도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 오늘은 돌고래 책방지기가 지킵니다 중에서
독립 출판을 하고 싶어 배운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책을 만들어 보기 전에 시도했던 인쇄물이 바로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수 있는 책갈피와 로고 스티커였다. 책방의 슬로건 ‘Read your life’ 같은 간단한 문장을 초록 바탕색 위에 앉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저렴하고 빠르다는 평으로 지인에게 소개받은 대전역 근처 인쇄소에 가서 종이를 골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 즉 문장이나 이미지를 담아내는 종이의 물성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음을 책갈피를 만들어 보고 깨달았다. 일단 시도해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다시 시도해 보고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찾는, 결국 ‘제작비’라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알 수 있는 과정이었다.
종이의 질과 가격은 거의 비례했다. 종이 가격에 타협하면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렇다고 너무 비싼 종이로 만들면 마음 편히 나눠주기도 망설여진다. 티슈 뽑듯 아무렇지도 않게 ‘몇 장 더 가져가겠다’ 혹은 ‘아이가 낙서하게 넉넉히 가져가겠다’라는 말을 듣거나 아무 말 없이 카운터에서 여러 장을 챙겨 넣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 책을 몇 권 이상 샀는지, 얼마나 자주 오는 사람인지, 책방을 찾아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보이지 않게 셈을 하게 되면서 괴로워지기도 한다. 스스로 엉큼하고 옹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책갈피와 스티커를 적당한 비용과 품질을 유지하되 마음 편히 나눌 수 있는 지류의 수준을 파악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방지기와 손님 모두 재미를 느끼는 부담 없는 작은 변화이다.
- 무료하다 싶으면 책갈피를 만들어 중에서
책방을 막 시작한 2019년 가을, 독립 출판 수업을 듣고 ‘인디자인’이라는 책 만드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3시간짜리 수업이라 ‘배웠다’보다 ‘알게 되었다’가 적절하다). 일단 뭐라도 만들기 위해 뭐라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파기 시작했다. 인디자인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책의 물성을 결정짓는 편집 과정에 서서히 눈을 떴다. 인디자인 프로그램으로 내지와 표지를 만드는 기초를 익히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올렸던 이야기는 배우자가 그동안 매일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기록이었다.
‘가장 좋은 글쓰기란 자신에게 솔직한 문장을 쓰는 것’이라는 에세이스트 최유수의 말처럼 나의 배우자, 아니 돌고래 작가의 기록은 ‘진정성’ 있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자연과 사람이 만드는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풍경을 내면에서 우러나는 대로 책 쓰기를 의도하지 않고 꾸준히 쓴 글.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의 바깥 세계를 들여다보는 각별한 마음, 삶을 대하는 정성 어린 마음을 담은 아주 평범한 직장인의 기록을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세상을 향해 평범한 40대 가장의 존재를 노래 부르고 싶었다. 비록 독자에게 가닿는 힘이 부족할지라도 그의 이야기를 책방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다. ‘싶었다’라는 말을 남발할 정도로 그 당시 나에겐 제작이 절실했다!
- 버찌책방 출판사가 첫 책을 냈습니다 중에서
저자와의 만남 같은 오프라인 책 읽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궁극의 목적은 결국 손님에게 이곳에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를 제안하기 위함이다. 책방을 찾는 분은 책방지기가 밑줄 그은 문장과 그 문장에서 감응한 이유에 마음이 움직여 온다. 북토크 때 질의응답 시간에 참가한 독자들이 “책방지기님이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라는 답이 제법 많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책과 이벤트를 소개할 때 고스란히 전달된다. 모임을 주최하는 책방지기가 읽고 책과 저자를 이해하고 있어야 소개할 수 있다. 제아무리 인기 많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공간의 결과 맞지 않는 책은 설득하기가 어렵다. 출판사에서 저자 거마비 부담이 적은 행사 제안이 와도 쉽사리 진행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 북토크 맛집이 되는 비결 중에서
첫 전시의 반응에 힘입어 1년 넘도록 책방에서 다양한 전시가 끊임없이 성사되었다. 결과를 막론하고 지역 책방에 관심을 보내주고 협업에 응한 출판사 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전시 효과로 책이 잘 팔리면 고마운 일이겠으나, 전시 감상이 해당 도서 판매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시물과 소개 글, 책 앞에서 한참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그 책의 주인이 되어 주길 바랐다. 전
시 초반에는 전시를 보고 사진만 찍고 책을 사지 않는 손님들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하지만 책방의 방향성과 방문하는 이들의 목적이 항상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시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판매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조금씩 덜어내게 되었다. 공간을 이끌어가야 하는 나 자신을 위해, 공간을 경험하는 손님들의 편안한 시간을 위해.
- 책방 안 작은 갤러리 중에서
“반가워요, 여러분. 책방지기 버찌라고 해요. 혹시 책방이 뭐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
“책 한 권이 만 원이라고 치자. 그럼, 책방지기는 얼마를 수익으로 가져갈까?”
“하루에 몇 권 정도 팔까?”
“책 파는 것 이외에 뭐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책방을 운영하며 드는 고정비용은 뭐가 있을까?”
“자, 대형서점과 무엇이 다를까? 독립 서점이라는 말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10,000원짜리 책 한 권 팔면 약 2,500원에서 3,000원 정도 남는다는 책방지기의 비현실적인 말에 아침잠으로 반쯤 감겨 있던 학생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책에 관심 없는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으니 일단 시작은 성공이다. 책을 좋아하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책과 책방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청소년에 비해 책방에 관심이 없는 청소년은 책에 관한 관심의 출발점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말을 걸어야 한다.
- 학교로 찾아가는 책방 중에서
책방에서 맞이하는 새벽을 위한 그들의 수고로운 과정을 상상해 본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른 시간 벗들과 모여 함께 마시는 오늘의 첫 커피의 맛과 향은 차분한 공기 속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이 주는 해방감 때문인지 표정도 한결 편안하다. 책방지기 역시 새벽 모임을 할 때마다 자유로워지는 걸 느낀다. 이 시간에는 책 주문을 할 필요도 없고 전화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책방을 찾는 사람도 없으니까. 해방의 공간에서 해방의 시간을 살며 잠시나마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정혜윤 작가의 《삶의 발명》에는 ‘이야기 공동체’라는 단어가 나온다.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품은 각자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산다는 것. 서로의 이야기에 감탄하고, 서로의 감탄 포인트에 자기 자신을 결합하고, 이야기를 통해 영향을 받으며 생의 에너지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새벽 시간에 모여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마음 주머니에 모아둔 나의 이야기와 밑줄 그은 문장을 꺼내어 도란도란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가 주는 치유를 경험한다.
- 새벽에 오실래요 중에서
당시 열 살이었던 꼬마 책방지기는 북페어 최연소 창작자였을 것이다. 이틀 동안 엄마가 부스를 지키는 내내 아이는 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놀았다. 독립 출판물 《안녕 햇살, 나는 도쿄》를 구매하는 손님에게 쿨내 진동하는 사인을 해주느라 고사리손이 꽤 분주할 때도 있었다. 어린이 책방지기가 계산과 사인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했는지 또래 어린이와 부모 손님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카드 수수료 많이 나가요. 볼펜은 현금으로 결제해 주세요.” 자영업자의 심정을 담은 꼬마 책방지기의 명언이다. 내색하지 못하는 엄마 책방지기의 속마음을 대신 드러내는 아이의 모습이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어린이 책방지기의 야무진 응대에 너그러이 반응했다. 한참 동안 책이 팔리지 않으면 “실컷 만져보고는 왜 안 사가!”라고 화내면서 속상한 티를 팍팍 내기도 했다.
- 작은 책방의 첫 북페어 중에서
김용택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북토크는 후기가 아니라 직접 선생님께 편지글로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가끔 어스름한 새벽,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천장을 바라본 채 가만히 누워 있으면 선생님 계신 진메마을이 떠올라요.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섬진강 상류의 유리같이 투명한 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에서 지금쯤 선생님께서는 무얼 하고 계실까? 뉴스를 보신 뒤에 일기를 쓰고 계시겠지. 고양이 보리는 슬금슬금 걸어 다니다가 마당이 보이는 커다란 창가에 누워 있겠지. 사모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시다가 ‘아내의 말’을 적기도 하시겠지.
- 진메마을에 사는 섬진강 시인 중에서
스마트폰이 연달아 울린다. 인스타그램 알람이다. 몇 주 전 추천 도서를 사갔던 손님이다. 아, 잘 읽고 계시는구나. 안심한다. 드르릉. 그 다음 태그는 몇 시간 전 책방에 들렀던 손님의 방문 인증.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다. 드르릉. 이번에는 온라인 필사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 사는 손님. 아, 오늘 필사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드셨구나.
책방이 걸어온 시간을 함께 해오며 연결된 책벗들과 SNS의 스토리와 태그로 이어져 있다. SNS 태그는 마음의 실이다. 책방에서 산 책과 굿즈, 책갈피를 정성껏 사진으로 담아 안부를 건넨다. 6년째 일일 책 판매량에 일희일비하는 나약한 존재에게 그들이 공유하는 기록은 공간의 항상성을 지켜주는 버팀목이다. 애정 어린 부름에 책방을 지키는 시간이 흘려보내는 ‘크로노스’에서 의미가 담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거듭난다.
-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중에서
마음속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일, 휴한기를 ‘윈터링(wintering)’이라고 한다. 혹독한 시간의 ‘끝’은 분명히 있다. 중요한 것은 윈터링을 겪는 동안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리라. 막막한 고통과 슬픔, 그 터널을 통과하는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예은은 늘 뭐든 ‘하는 사람’이에요.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과거 한 지인이 나를 ‘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준 적이 있었다. 무척 고마웠다.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책을 펼치고 밑줄을 그을 수 있도록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앎과 삶이 맞닿을 수 있도록 나는 읽는 힘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책을 닮고 책이 나를 닮아간다(고 믿는다).
- 책방지기의 틈새 독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