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3개월의 여름이 지나가던 2023년 9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가 지옥문에 들어섰다.”라며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홍수에 작물이 쓸려나가는 것을 농부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찌는 듯한 무더위는 질병을 옮기고 수천 명의 주민이 산불에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은 미미하기만 하다.”라고 그는 공개적으로 평가했다. (…) 실제로 2024년이 지난 후 찾아온 2025년 1월에도 지구 평균 기온은 내려갈 줄 몰랐다. 2025년 2월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월은 산업혁명 이전의 평균보다 1.75도, 1991년에서 2020년 평균과 비교하면 0.79도나 높은 매우 더운 1월이었다. 2023년 여름 이후 거의 1년 반 동안 월별로 측정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도 이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기후 변화 연구자들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여 1.5도 이내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 시작했다. 얼핏 들으면 1.5도라는 온도 차이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이가 인류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 p41~42
우리나라는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2023년 우리나라 정부가 발표한 식량 자급률은 44%를 힘겹게 넘겼지만 곡물의 자급률은 20%를 겨우 넘긴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게다가 식량 자급률과 곡물 자급률은 지난 몇 년간 계속 하락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를 포함한 몇몇 연구 기관에서도 유엔식량농업기구 및 미우주항공국의 연구 결과와 유사한 수준, 즉 2100년까지 쌀 수확량이 25%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곡물 자급률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기후 변화로 식량 부족이 현실화되면 우리나라에 곡물을 공급해 주던 국가들이 지금처럼 선뜻 곡물을 수출해 줄지, 그렇지 않으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량을 줄이거나 심지어 금지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빈곤과 식량 위기를 그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오던 우리나라에도 이제 식량 위기가 현실로 다가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가 든다.
- p57~58
스턴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기후 변화를 그저 ‘여러 가지 환경 문제 중의 하나’ 또는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기 어려운 미래의 문제’로 취급해 왔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농업 생산성 저하와 식량 부족이 나타나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와 생물 다양성 감소가 나타나게 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스턴 보고서는 콕 집어서 설명했다.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스턴 보고서를 두고 ‘기후 변화가 환경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증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12년이 지난 2018년,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위원회는 기후 변화가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공로를 기려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기후 변화가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문제라는 점을 국제 사회가 인식한 지 불과 10여 년이 흐른 후에 이제는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제학계가 인정한 것이다.
- p75~77
매년 평균 2,000만 명 이상이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는데 이러한 ‘기후 난민’이 정치적, 사회적 박해를 피해서 난민이 된 사람들보다 2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 이렇다 보니 2050년에는 기후 변화와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의 규모가 최대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 결과도 나와 있다. 2050년 전 세계 인구가 약 100억 명으로 예상되니 10명 중 1명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2070년에는 약 30억 명의 삶의 터전인 지표면의 19%가량에서 인류가 거주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2015년 발생한 시리아 난민의 유럽 이주 사태에서 보듯이 난민의 대량 유입은 옮겨가는 난민에게도, 난민을 수용하게 된 국가에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이러한 고통을 더 많은 난민과 더 많은 나라가 겪어야 할 것이다. 이제 기후 변화가 단순히 기온이 몇 도 오르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하루라도 빨리 기후 변화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p98~99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엄청난 후폭풍 때문에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제기구 또는 조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받아들여지면서 여러 가지 국제기구와 조약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최소 한두 개 이상의 각종 환경 또는 기후 변화 관련 조약에 서명하거나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후 변화를 보여주는 각종 증거를 살펴보고 향후에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며 이를 각종 조약이나 협정 등으로 옮겨 적어서 그에 서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약이나 협정이 모여서 국제적인 기후 정책 및 각 회원국의 기후 변화 정책에 근간이 되는 것이다.
- p137~138
선진국들은 수백 년 동안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이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피해는 기후 변화에 대응할 재정적, 기술적 역량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 집중되는 기후 불평등 현상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제27차 당사국총회를 통해 비로소 국제 사회는 기후 불평등 현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기금을 조성해 개발도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도와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이 기후 변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재확인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p178
가장 먼저 정부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에 배출 한도를 부여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기업은 자신에게 주어진 배출 한도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또 다른 기업은 배출 한도보다 더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제 배출 한도보다 더 적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기업이 남아있는 배출 한도, 즉 배출권을 배출 한도보다 더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에 팔 수 있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듯이 탄소 배출권의 가격도 자유롭게 변동한다.
탄소세의 경우 기업이 납부해야 할 가격이 정해져 있었지만 배출권 거래 제도는 가격이 시장의 원리에 맞게 변동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정부가 기업의 배출량 한도를 정하고 그것을 넘는 부분을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이 제도를 ‘Cap and Trade’라고 부르기도 한다.
- p187~191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유럽연합처럼 규제가 엄격한 국가로 물품을 수출할 때 탄소국경세를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시멘트, 알루미늄, 철강 등의 제품은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즉 탄소발자국이 큰 제품들이다. 이러한 제품이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만들어져 유럽 국가로 수입되어 들어올 때 유럽 내 탄소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다.
유럽 국가에 시멘트, 알루미늄, 철강 등을 수출해 왔던 국가들은 ‘또 다른 형태의 무역 장벽’이라며 항의하고 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철강 제품을 포함하여 탄소발자국이 큰 제품을 유럽에 많이 수출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 p192~193
2도와 1.5도는 고작 0.5도 차이이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아닌 듯하지만 이는 엄청난 차이이다. 우리 동네의 기온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0.5도 오르거나 오르지 않는 것은 이미 타는 듯한 여름을 매년 겪고 있는 남부 유럽, 호주 그리고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야채, 바닷속의 산호초 그리고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 0.5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온도 상승의 폭을 그만큼만 줄일 수 있어도 굶주림과 무더위에서 벗어나 생활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한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 p2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