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2016년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과 경험, 가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 “이 책은 하나의 패배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_정재승(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추천
★★★ 조훈현, 유창혁, 박정상, 김지석, 신진서… 바둑계 전설들에게 직접 듣는 AI 이후의 세계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장강명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고, 일과 경험을 변질시키고,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은 평생 알고 있던 이론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인공지능에게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바둑은 예술이자 철학이었고, 프로기사로서의 삶은 바둑의 최고 권위자라는 자부심을 의미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3년 후 이세돌 9단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가 모두 달라졌다. 장강명은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전망한다. 압도적인 실력의 인공지능이 헐값에 보급되는 것.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며,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하는 것. 예컨대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책은 바둑계의 경험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가 마주할 근미래의 풍경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_26쪽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수학의 난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작품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
창의성, 문학성,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묻다
AI 시대에 ‘인간의 문학’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는 컴퓨터니까 계산력이 중요한 후반에 강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창의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초반 포석에서 오히려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은 많은 프로기사가 알파고의 바둑이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인공지능에게 창의성이 있다면, 창의적인 문학작품도 매일 수천 편씩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장강명은 문학은 바둑과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실제로 불가능한 것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그것이 알파고가 남긴 교훈이라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에도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바둑을 두겠다’라고 말한 프로기사들이 있다. 막상 이들에게 인간의 바둑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하면 착각과 실수,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과 제스처, 승부를 둘러싼 스토리 등 탁월함과는 무관한 요소들이 답변으로 돌아온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수백 편의 걸작을 쏟아낼 때, ‘인간의 문학’도 그와 비슷한 의미가 될지 모른다. 문장력은 부족해도 독특한 ‘인생 스토리’가 있는 작가가 더 주목받을 것이다. 문장력은 인공지능이 보완할 수 있으니까. 장강명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여러 업계에서 추구하던 가치가 변질되리라 전망한다.
어떤 업계에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이를 멈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수혜를 입는 그룹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기사 중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바둑에 늦게 입문해서, 초반 감각이 부족해서, 정상급 기사들과 정보 격차가 있어서 생기는 실력 차이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느 날 자신의 장기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장강명은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AI 기술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이 어떤 업계의 판도와 그 업계에 속한 이들의 삶을 좌우해도 되는가?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AI 시대에 예술가들은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잘 만드는 기술과 그 자신을 교묘하게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포츠카를 사서 인증하거나, 다른 유명 인사를 저격하는 요령도 함께.” _268쪽
“나는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
가치 있는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만 나온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거짓말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의 통제가 가능하려면…
일부 전문가는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라고 주장한다. 장강명은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사용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의 추천 경로를 따르는 것도, 대중음악 뮤지션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유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놓았다. 인공지능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가 될지 모른다.
한편 ‘AI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에서 말하는 일자리는 사회적 가치와 자부심의 원천일까, 아니면 급여를 받는 이유에 불과할까? 책은 그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알파고 이후에도 프로기사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권위와 자부심은 추락했다. 실력이 급상승한 프로기사는 ‘AI 치팅’을 의심받는다. 바둑 팬들이 해설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의 견해가 아니라, ‘AI 추천수’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진보라는 대의 앞에서 전문가의 자부심은 사소한 가치일까? 인공지능의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더라도 급여만 주어지면 괜찮을까?
장강명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제약회사가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을 예로 들며,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통제를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끼칠 파급력에 비해 이를 견제할 장치는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한 핵무기·원자력 통제, 국가 간 조약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대응도 주문한다. 장강명은 더 나아가 빅테크 기업들이 말하는, 과격하고 납작한 의미의 ‘좋은 삶’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믿고 상상하는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 상상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사상가를 기다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가지 말고 이 문제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_338~3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