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낼 때마다 다양한 반응을 접한다. 『버릴 수 없는 티셔츠』 때는 ‘멋진 티셔츠 카탈로그인 줄 알았는데 예상과 딴판이었다!’라고 화내는 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았던 것은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했어!”라는 친구들의 연락이었다. “우리 집에도 있다고!” “나도 쓰고 싶었어!” 그럴 때마다 정말로 누구에게나 버릴 수 없는 티셔츠가 존재하는구나 다시금 실감했다.
「한국어판 발간에 부쳐」, 13쪽
하지만 보통 ‘몇 번 입고 버리는’ 속옷 대용 티셔츠에 이렇게나 많은 사연이 깃들어 둘도 없는 자신의 일부가 된다.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만난 한 문장, 만화 속 한 장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구절이 인생을 바꾸거나 지탱해 주고, 잊고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스위치를 누르듯이 말이다. 이렇게나 마음을 움직이는 옷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굉장히 기뻤다.
「에브리 티셔츠 텔스 어 스토리」, 21쪽
대학 시절에는 밴드 티셔츠나 취미 티셔츠만 입고 다니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말을 걸어주고, 어쩌면 인기가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 티셔츠도 효과 없는 건 마찬가지다. 티셔츠로 인기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최근 들어서다.
「데이비드 린치」, 84쪽
고베에서 도쿄로 올라온 지 팔 년째. 다이쇼 11년 11월 11일에 태어난 할머니도 93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마다 내 나이를 십 분에 한 번 꼴로 물어보신다. 그래도 옛날 야마구치구미의 항쟁 이야기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자세히 들려주신다. 다음번에 이걸 입고 찾아가면, 야마구치구미처럼 기억하실까?
「SUMICHAN OKAERI!!!」, 204쪽
“머리는 좋은데, 오늘의 경험에서만 배울 수 있는 운명이군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노가다 인생이랄까?” 생각해 보면 우리 할아버지도 노가다 일을 했고, 그 딸이 우리 엄마니까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나의 절실한 소원은 지금 오르고 있는 이 산이 이번에야말로 틀림없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딸이 내 전철을 밟지 않는 것. 참고로 이 티셔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 파자마로 입고 잔다.
「알로하 하와이」, 222쪽
지하철역 서쪽 출입구에서 만난 ‘못 씨’는 대단히 귀여운 여성분이었다. 허둥대며 돈을 받고 티셔츠를 건넸다. 이대로 사랑으로 발전해 서로의 애칭을 ‘못 씨’라고 부르면,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왠지 즐겁겠다는 망상을 이어나갈 새도 없이 거래는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그날로부터 벌써 십 년 넘게 지났다.
그분은 아직도 티셔츠를 입고 있을까? 나는 아직 입고 있다. 그리고 재고도 많이 남아 있다.
「못 씨」, 228–230쪽
처음 봤을 때부터 낡은 느낌이 꼭 지금까지 그럭저럭 성실하게 살아온 청년이었던 내가 이방인이 된 계기를 만들어준 미국을 향한 애증이 뒤범벅된 듯해 이끌리듯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꽤 마음에 들어서 주로 멀리 나갈 때 챙겨 입는다. 아마 무슨 페스티벌에 갔을 때 나무에 기댔다가 등 쪽에 송진이 묻은 것 같다.
나는 세탁 마니아라서 와인 얼룩이나 오래된 옷에 배인 겨드랑이 땀내도 전부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송진만은 없앨 수 없었다. 세상일 중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아이오와」 245-246쪽
첫 번째 남자 친구가 내 집에 자러 왔다가 두고 간 티셔츠가 바로 이것이다.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려고 하지만, 추억이 너무 강렬해 버릴 수 없다. 이걸 보면서 가슴 아픈 첫 연애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입지는 않지만, 가끔 냄새는 맡는다.
「아베크롬비」, 296쪽
벌써 삼십사 년째 한 번도 입은 적 없다. 하지만 버릴 수도 없다. 왜인가 하면, 이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뛴, 기념비적인 풀 마라톤 레이스니까. 하와이에 간 것도 처음이었다. … 최근 호놀룰루 완주 티셔츠는 대단히 스마트해졌다. 삼십사 년 전 티셔츠를 끄집어내 바라보고 있자니, ‘옛날은 순박했지.’라며 그리움에 젖어든다. 그래서 입을 거냐고 물으면, 입지는 않겠지만.
「호놀룰루 마라톤」, 348쪽
무모한 일을 늘 베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도 내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리스크를 나 혼자서 짊어질 수 있다면, 그만두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실패하는 편이 행복하다고, 이 티셔츠는 아직도 나에게 교훈을 준다. 그때의 무아몽중한 마음을 지금도 갖고 있는지 질문도 던진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 이 「버릴 수 없는 티셔츠」의 출판 기념 티셔츠를 만들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다.
「후기」,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