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계는 선생님이 인간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물건인 듯했어요. 인간이요.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악마라는 걸 알고 있는 인간인 모양이에요. 선생님은 그 시계를 사용해서 자기 몸과 감각을 인간계에 맞추고 있다고 해요. 지금은 악마인 걸 숨기지 않아도 되니, 인간에게 맞추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람에게 맞추는 건 인간이어도 힘드니 악마는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정했던 거네요. 이야기하다 겨우 알았어요. 선생님은 그 노곤함과 어려움을 어느 인간보다도 알고 있었던 거네요.
- “악마의 오블리주” 중에서
“사람 죽이니 어땠어? 즐거웠어, 슬펐어?”
미소를 지어가며 호감을 사려고도 하지 않고, 괜히 사람을 떠보지도 않는 그 방식을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욕망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계속 바라기만 하는 소녀에게 불쾌함보다도 오히려 일종의 걱정이나 한 줄기의 부러움이 솟구쳤다.
위태롭기는 하다. 구멍 속에 뭐가 있는지 호기심에 차서 들여다보는 병아리 같다. 동시에 만약 이렇게 쭉 살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통쾌할까 싶었다. 거대한 꿈을 꾸는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바라는 것을 전부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낼 수 있지 않을까.
- “형해화 멘톨” 중에서
하지만 지금 하라 씨의 얼굴에 우글우글 모여드는 저 녀석들이 말하길 세상은 이제 곧 멸망한다지 않은가.
사라져서 없어질 수 있다면 윤리관이나 혐오감은 버려도 된다. 오늘까지만 해도 나는 저 녀석들의 존재를 믿지도, 믿지 않지도 않았고, 하라 씨의 남편을 제정신이라고도, 제정신이 아니라고도 생각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자신의 취향대로 저울을 믿는 쪽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단정 짓고 나서야 처음으로 나 같은 인간은 정상이 아닐 수 있었다.
- “취향 저격 볼로네제” 중에서
'자신보다 정당하게 아름다운 무언가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순서대로 늘어세우지 않아도, 섞이지 않더라도 맨 처음부터 미움받을 필요도 없이 넌 음울한 이물 같은 존재야. 이제 와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아도 너 자신의 아군이 되어줄 수 있어. 너,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그만큼 똑같이 떠올릴 수 있잖아. 인정하고 다시 한번 더 들어봐. 피아노를 넣을 예정이었지만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겠습니다. 〈인상〉이라는 곡입니다.'
- “인상파적 애티튜드” 중에서
“감동은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실은 모두 그 근원이 되는 슬픔이나 괴로움을 아주 좋아해. 인간의 마음은 그걸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작가가 죽은 작품의 값은 오르고, 자신이 피해자 측에 속하는 역사 자료관 쪽이 인기가 있고, 특정 성질을 가진 인간이 죄를 지으면 차별주의자들은 기뻐하고 매운 카레를 먹지. 다만 그 마음에 대한 독해력이 없을 뿐이야. 내 여동생도 그래. 그러니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지켜줘야지.”
- “폭력적인 에피소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