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균적인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인을 대표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극히 사적인 관점이지만, 그래도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니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해가 더 많은 면도 있다. 그 작은 오해가 양국 사이에 큰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인에 대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진다면 좋겠다.
_〈프롤로그〉
일본의 지방은 한국의 지방보다 독립적이다. 한국은 중앙 집권 체제가 구축된 지 오래지만, 일본이 중앙 집권 체제가 마련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다. 게다가 나라가 길고, 크게 4개 섬으로 나뉘어 있어 국내 이동이 쉽지 않아 수도 도쿄의 영향력은 한국의 서울만큼 크지 않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다.
_〈47개 색깔의 나라〉
제주도 사람들이 한반도 본토를 “육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 오키나와 사람들도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을 “나이치(内地)” 또는 “야마토(大和)”라고 한다. 마치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오키나와를 보면 제주도를 생각하게 된다. 말이 다른 것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역사가 4.3 사건을 겪은 제주를 떠올리게 한다. 나한테 오키나와와 제주는 공통점이 많은 곳이다.
_〈시코쿠와 규슈는 가깝고, 훗카이도는 너무 멀다〉
일본 사람은 대체로 섬세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상처받기 쉽다는 이야기다. 나도 처음 한국에 유학 왔을 때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한국 친구들에게 상처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편하다. 오히려 일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조금 조심스럽다. 이런 말을 하면 상처받지 않을지, 오해하지 않을지 생각하면서 이야기하게 된다.
_〈“부부즈케 먹을래요?”〉
‘이렇게 작은 나라가 2위라니 대단하다’라며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그전에는 돈벌이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버블 붕괴를 계기로 일본인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다. ‘이코노믹 애니멀’처럼 맹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졌다. 실제 세상은 바뀌었는데, 고도 성장기 당시의 일본인의 이미지가 내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_〈‘일본인=근면’설의 유래〉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격리를 하는 사이에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라면이나 인스턴트 카레 같은 구호 물품이 도착했다. 외출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호 물품을 받으니 고마웠다. 이런 걸 받았다고 트위터(X)에 사진을 올렸더니 갑자기 비난 댓글들이 달렸다. “일본에 돌아오지 마”, “한국에 귀화하라” 같은 말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깜짝 놀랐다.
_〈같아야 하는 ‘동조 압력’〉
한국 관련 강의를 하는 대학 교수들도 학생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교수에게 고백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한국이 젊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_〈자이니치 차별〉
그런데 사실 일본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방문 후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이 일본의 국민 감정을 건드렸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착하고 온화하고 평화주의자인 천황인데 옆 나라 정치인이 왜 건드리냐는 반응이었다. 헤이세이 천황은 한국을 방문할 생각도 있었지만 이 일로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있다. 천황이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방증이다.
_〈천황의 존재감〉
나는 ‘나카이’ ‘후지TV’ ‘아나운서’ ‘트러블’만 들어도 어떤 사건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방송 담당 기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후지TV 회식에 불려 갔는데 그 장소는 개인 집이었고 그곳에는 남성 한 명만 있었다. 기자는 도망가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 후 휴직했다. 한 남성 방송 담당 기자는 후지TV 회식 때 “아나운서 부를까요?”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조직적이고 상습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_〈일본판 #MeToo〉
한국에서 살아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이 가해한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되지만 일본에 계속 살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에 전하려고 하지만 거부당할 때도 많다.
_〈외면하는 가해의 역사〉
나도 일본 총리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과거에 사과를 했다고 해도 그렇게 못 느꼈다면 몇 번이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심 어린’에 집착하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_〈사과해도 사과한 것 같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