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이자 작가였던 보리스 사빈코프의 대표적 작품 『테러리스트의 수기』를 정보라 작가의 초역으로 선보인다. 사빈코프는 러시아 제국의 심장을 겨눈 테러조직의 핵심 인물이자, 인간성과 윤리를 치열하게 고민한 문학인이었다. 『테러리스트의 수기』는 재무장관 플레베와 대공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암살을 비롯한 실제 테러 작전을 바탕으로, 치밀한 회고와 내면 고백, 그리고 극도의 절제된 문체를 통해 ‘혁명가의 얼굴’을 그려낸다.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총을 들었지만, 그 안에서도 흔들리고 갈등하는 인간의 윤곽이 이 작품 속에는 살아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테러 일지가 아니라, 윤리와 폭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군상의 기록이다. 죽은 동지를 향한 무덤 같은 부고, 믿었던 동지의 배신, 끝내 남겨진 이들의 고뇌는 20세기 러시아 격동기의 실루엣을 넘어 지금 우리 사회의 고민으로 되돌아온다. 2024년 12월, 한국 사회가 불법 계엄령과 정치적 혼란을 지나며 경험한 ‘빛의 혁명’은 이 회고록과 낯설지 않게 맞닿는다. 혁명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이 반복되어선 안 되는가―그 질문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