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야, 그냥 내가 살게!”
지원이가 무인 계산기 앞으로 다가왔다.
“우아!”
우람이가 골을 넣었을 때보다 더 큰 함성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메웠다.
“너 또 용돈 받았어?”
민휘가 지원이에게 물었다. 지원이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어제 카트도 새것으로 바꿨잖아!”
또 다른 아이가 모바일 게임 씽씽고를 들먹였다. 씽씽고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게임인데, 카트를 새것으로 바꾸었다는 건 지원이가 제법 많은 돈을 썼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지원이는 우람이가 사기로 한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겠다고 나섰다. 우람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원이가 무인 계산기 결제창에서 카드를 선택했다.
“우아, 너, 카드 써?”
아이들이 소리쳐 물었다.
“응! 용돈 카드!”
지원이가 싱긋 웃으며 지갑에서 반짝이는 노란색 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카드 출입구에 카드를 밀어 넣었다.
“띠릭.”
소리와 함께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글자가 무인 계산기 화면에 떴다.
“역시 강지원!”
-17~19쪽
“애들이 사 달란다고 다 사 줘?”
엄마 목소리가 쨍하니 솟았다. 아빠가 나섰다.
“내가 그랬잖아. 애들한테 신세 진 것 갚으라고. 그래서 그랬나 보지.”
아빠 말이 딱 맞았다. 우람이는 아빠 말대로 아이들에게 신세 진 걸 갚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섭게 닦달을 당해야 하는 걸까. 왈칵 설움이 밀려들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야. 겁도 없이 십만 원을 넘게 쓴다고?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아빠가 어르는데도 엄마는 화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우희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엄마 편을 들었다. 우람이는 억울하고 속상했다.
“이제 용돈은 땡이야!”
엄마가 짧게 말을 뱉더니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제대로 준 적도 없잖아요!”
우람이가 빽 소리쳤다. 엄마는 물론 아빠와 우희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제대로 주지도 않고, 어떻게 쓰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고, 왜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요? 흐엉!”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우람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엉엉 눈물을 쏟았다.
-76~77쪽
“너 또 다른 애한테 사 달라고 해서 갚을 작정이야?”
우람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납게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지원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우람이가 지원이 앞에 쭈그려 앉아 지원이의 멱살을 덥석 잡았다.
“네가 갚는다고 했잖아! 빨리 갚아!”
지원이에게서 만 원을 받으면, 우희의 용돈 카드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그러면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질 거였다. 하지만 지원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람이가 지원이의 멱살을 잡은 채 지원이를 흔들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지원이가 우람이의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우람이가 옆으로 팩 쓰러졌다. 지원이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돈이 없는데 어떡해? 돈이 없다고!”
“야! 네가 갚는다고 해서 사 준 거잖아….”
우람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지원이가 우람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도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 씽씽고 랭킹 올릴 생각에 캐릭터랑 카트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느라고…… 흑, 경찰관까지 쫓아올 줄은…….”
지원이도 눈물을 쏟아 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우람이는 지원이를 보았다. 지원이도 경찰차를 보고 도망을 친 모양이었다. 볼수록 화가 나고 답답했다.
-125~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