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트위드 재킷을 입고 사냥 모자를 쓴 아프리카계 중년 남성이 지나갔다. 같이 마시던 한 나이지리아인이 “어이, 카라마” 하고 그를 불러세우더니 “이 여자가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시험 삼아 무슨 얘기라도 해봐”라고 말을 건넸다. 내가 스와힐리어로 인사하자 그는 “나는 미스터 카라마. 청킹맨션의 보스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오, 정말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알아”라면서 놀리려던 나이지리아인에게는 “세계는 넓어. 이런 아시아인도 있는 거야”라고 받아넘기며 곧 자리를 떴다. 나중에 카라마는 “사야카가 처음에 나를 알게 된 게 정말 행운이었어”라고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 말대로다. 이날 카라마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홍콩과 중국에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장사와 동료들 사이의 일상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20쪽
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 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연결·특이점·기본 소득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31쪽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은 늘 “아무도 믿지 않아”라고 단언한다. 이는 ‘본성’,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을 몰라서 그런다기보다 누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 카라마와 동료들은 “저 사람은 지금 잘나가니까 돈을 빌려줘도 괜찮아”, “저 사람은 지금 수입한 천연석 품질이 나빠서 크게 손해를 보고 있으니까 조금 주의하는 게 좋아”, “저 사람의 연인도 함께한다면 그는 좋은 녀석이니까 놀러 가”라고 ‘지금’의 상황에 한정하는 형태로만 타자를 평가한다. 언뜻 냉정하게도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관용과도 표리일체다.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自己)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91~92쪽
어느 날 카라마가 내게 물었다. “사야카, 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내가 “음… 경찰이나 변호사?” 하고 대답하자 “아니지. 그야 사기꾼의 친구인 게 당연하잖아. 누가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모르는 거야. 왜냐하면 미래는 아무도 모르거든. 성공한다면 대기업 경영자인 동료가 중요해질 수 있어. 하지만 체포당하면 수감자인 동료가 중요해지는 법이야. 일본에 가는 날이 온다면 일본인인 사야카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겠지만, 어쩌면 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동료의 숫자가 아냐. [유형이 다른] 이런저런 동료가 있는지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타자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고,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확대 증식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이들은 부담 없는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안전망(safety net)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96~97쪽
돌아오는 길에 “성실하게 일하는 게 아니었어요? 이스마일에게 가면 차 판매를 잔뜩 맡아서 그만큼 수수료를 벌 수 있잖아요? 왜 매일 가지 않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카라마는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매일 이스마일을 만나러 가면 그는 나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거야. 이스마일이 화를 낸다고 그의 말에 따르는 태도를 보이면 나를 자기 직원처럼 취급하겠지. 나는 파키스탄인과 수년 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건 예측이 아니라 사실이야. 만약 이스마일에게 고용되면 이스마일만 돈을 벌고 나는 그의 돈벌이를 위해 일을 하게 돼. 우리 아프리카인이 홍콩의 업자들과 대등하게 비즈니스를 하려면 그들이 나를 그리워할 무렵에 가는 게 딱 좋아.”
-107~108쪽
나아가 TRUST가 공식 중고 거래/경매 사이트와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TRUST가 ‘신용할 수 있는 브로커/고객’과 ‘신용할 수 없는 브로커/고객’을 점차 가려내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이다. TRUST에는 변함없이 누구나 신용할 수 있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계·인간관이 유지되고 있고, 거래 실적이나 자본 규모, 과거의 실패나 배신과도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돌아간다. TRUST에 참여하는 브로커 사이의 ‘불신’과 ‘신뢰’의 균형은 카라마나 동료들이 매일 보여주는 (솔직히 말해 조금도 재미가 없는) 웃긴 동영상이나 그들이 빈번히 나와 찍고 싶어 하는 ‘기념 사진’, 택시 운전기사까지 끌어들이는 라이브 방송, 나아가 ‘상업적 여행자’와 함께 ‘겸사겸사’ 행하는 매일의 상호 부조와 조합 활동과 연동하면서 창출되고 있다.
-157~158쪽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애당초 이들은 타자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 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도리어 인간미 없어 보이지만, 그때그때의 재정적인 여유, 개인의 지위·신분은 그 인물이 ‘이 정도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하지는 않겠지’라는 기대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근거다. 물론 부자가 좋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가정이 전혀 옳지 않다는 사실은 이들도 잘 알고 있다.
-166~167쪽
남자가 가버리자 체스터는 “저 사람은 알코올 의존증이야. 나는 그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몇 살인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아무것도 몰라. 돈을 많이 주면 (술값으로 써버려서) 그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만은 알고 있지”라고 설명했다. 내가 놀라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런데도 매일 100위안씩 줘요?”라고 되묻자 “의존증인 걸 알기 전에는 매일 200위안씩 줬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내가 더욱 놀란 얼굴을 하자 “사야카, 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주는 거야. 지인이었으면 하루 종일 감시하면서 돌봐줄 거거든”이라고 하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241~242쪽
박사 과정 시절에 조사한 탄자니아의 영세 상인들도, 홍콩의 탄자니아인들도 다들 “인생은 여행이다(maisha ni safari)”라고 말한다. 여행이라고 하면 여행의 끝이 걱정된다. 나는 이들이 현재의 연장선상으로 단선적인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 것도, ‘퇴직’이나 ‘노후’라는 명확한 인생의 단락을 의식하지 않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며 이를 전제로 이야기해왔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스스로의 인생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각각의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라고 상상하면 나는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나는 홍콩에서의 불안정한 신분, 한번 성공을 거머쥐었더라도 약간의 불운이나 방심으로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할 수 있는 삶은 목적지에 이르는 여행의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에 금방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나 매일의 생활 자체에 실현해야만 할 즐거움이 묻혀 있다면 일생을 그저 여행으로 끝낸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244쪽
단,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자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쾌락, 타자를 기쁘게 해주는 쾌락을 곧이곧대로 표현하거나 추구하는 것에 나는 늘 회의적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회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발적인 도움을 계속 촉진하며 누구에게도 과도한 부담을 부여하지 않는 교역의 구조와 ‘겸사겸사’를 조직하는 플랫폼형 조합 활동에 대해, 또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남녀 사이의 서로 돕기에 대해 기술해왔다. 이들이 대범하게 “그야 내가 청킹맨션의 보스이니까”라는 식으로 표명하며 많은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도 불쾌하지 않고 오만함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들이 ‘보스가 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목표로 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장사꾼이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벌이’이며 보스가 되려 한다든가 선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좋아할 수 있게 된다.
-248쪽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 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앙스파크는 이러한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가 자기희생을 해서 선순환 안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정신론이 될 수 있으며 전체주의와 연결될 위험성도 있다.
-259~260쪽
타자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담은 듣고 깨끗이 흘려버리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약속을 파기한다. 조합 참여 활동이나 기부금도 사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느라 참여할 수 없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헌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독립독행으로 살아가는 타자에게 자신의 요망을 들어 달라, 정체를 알지도 못하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포착되고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돈벌이나 호구지책이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타자에게 공감이나 공공성을 띤 행동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참모습’을 ‘미지/불가지의 가능성’으로 환영하고, 상장 기업의 사장이나 대통령의 비서만이 아니라 비합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겸사겸사’ 친절을 주고받음으로써 선뜻 연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263쪽
마찬가지로,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인간, 완벽한 인간이 되게끔 노력해서 자신의 가능성에 베팅하거나 또는 가치관과 자질이 서로 비슷한 동질적인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이에 따른 호수성 및 응답할 의무에 확실히 응답해가는 대신에, 능력, 자질, 선악의 기준, 인간성이 다른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느슨하게 연결되고 타자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우발적인 응답’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은 ‘이질성과 유동성이 높고 누가 응답해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불합리한 전략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나름대로 해내는 제너럴리스트인 동시에 어떤 인간과도 나름대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나가는 것이다.
-264쪽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 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 — 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인공지능이든 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