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만 있어도 이리저리 떠밀리는 듯한 사막 같던 서울 생활에서 요가원은 오아시스 같았다. 매일 똑같이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생활에서 요가 동작을 하나씩 만들어 갈 때면 일상에 생기가 추가됐다. 지루한 회사 생활에 지쳐 땅굴을 파고 지하로 들어가고 싶을 때마다 요가는 나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나누는 것은 역치가 높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한번 맛본 이상,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강렬한 경험.
‘생각은 적게 하고 더 많이 느끼는 것. 내 안의 균형을 찾는 것.’
그렇다. 요가는 유연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돌보는 와중에 마음 작용을 조절하는 명상인 것이다. 요가와 함께인 퇴사 여행을 통해 생각은 적게, 감정은 더 많이 느끼며 내 삶의 균형을 잡고 싶다.
치앙마이에는 공원에서 선생님들의 재능 기부로 진행하는 요가 수업도 거의 매일 열린다. 마음만 먹고 준비만 된다면 어디서든 돈을 벌며 여행할 수 있는 디지털노마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만 부러워할 게 아니었다. 평범한 문과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뭐든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기회는 도처에 있다는 것을 치앙마이에서 깨달았다.
요가 하나만 보고 온 인도, 안되던 동작을 마스터하고 대단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내 인도 여행과 연관되는 부정적인 편견과 반대되는 시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들, 머리를 깨우치는 장면들, 맛있던 음식과 발전된 기술까지. 벗길수록 새로운 매력이 나오는 양파 같은 나라에서 나의 편협한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 편견에 사로잡혀 고지식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인도가 알려주는 듯이.
요가는 퇴사하고 떠난 세계여행을 완성시켜주었다. 그냥 여행해도 좋았겠지만, 요가는 이 여행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조미료가 되어주었다. 매트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가까워질 수 있었고, 잊지 못할 순간들을 선물 받았다. 그 경험들은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단초가 되었다.
불을 맹렬하게 내뿜다 분화구만 남긴 채 고요히 멈춘 화산 앞에서 내 존재가 티끌만큼 작게 느껴졌다. 마그마를 내뿜던 화산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춘 것처럼, 그 당시 마음을 어지럽히던 고민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하다. 쓸데없는 감정은 호수로 던져버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써야지.
코스타리카에서는 ‘Pura vida(뿌라 비다)’라고 인사한다. 직역하면 ‘순수한 삶(Pure life)’인데 ‘잘 지내, 안녕, 행복해라’ 등 좋은 뜻은 다 품고 있다. 할 게 없으니 좋아하는 것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었던 코스타리카에서의 열흘은 ‘뿌라 비다’ 그 자체였다. 순수한 삶은 단순하다.
나에게 요가는 여행, 여행은 요가다. 얇은 여행용 매트 하나 들고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아시아 11곳, 유럽 3곳, 아프리카 2곳, 미국 6곳, 중남미 6곳, 총 28개 도시에서 다양한 요가를 경험했다. 요가를 하다 보니 여행지가 정해졌고, 요가를 하며 얻게 된 힘과 유연성으로 여행과 나아가 인생을 조금은 더 유연하게 살게 되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삶에서 나와 내가 길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들어서자 비로소 여행 같은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일상 같은 로컬 여행. 요가 여행을 하며 막연히 꾸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제주도 시골 마을의 작은 요가원은 요가로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전 세계 사람들이 발리로 요가하러 여행을 떠나듯 K-웰니스 여행을 위해 제주도를 찾게 하고 싶다.
서른 살에 퇴사하며 주어진 객관식 답안지 중에 가장 좋은 답을 찾던 학생과 직장인의 삶은 막을 내렸다. 대신 내가 쓰기 나름인 주관식에 써내려 가고 있다. 이게 맞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쓰다가도 지우개로 박박 지우기를 반복. 그렇게 요가와 함께 나만의 답을 찾아나가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회사 바깥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며 불안했던 과거의 나에게 요가 여행의 시간은 새로운 열쇠 하나를 주었다. 언제까지 요가원을 운영하며 제주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요가 덕분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지금 당장은 무용해 보이더라도 스물네 시간의 시간을 오로지 내 마음대로 써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일지. 행복은 살 수 없지만 요가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