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공부는 열심히 안 하더라도
밥은 굶지 말라는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학교 입구에만 들어서도 숨이 막히고, 수업 시간은 졸리기만 하고, 급식도 맛이 없는 것 같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어렵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국어 교사이자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학생부장인 이원재 작가는 교칙을 기준으로,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기 전에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하여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학생’ 집단이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을 청소년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어떠한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유쾌하고 다정한 친구이자 어른으로 학생들 곁에 있고 싶다는 이원재 작가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교사와 학생이 학교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는 저게 인간이 될까 싶었던 나의 첫 제자들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거꾸로 나를 잘 키웠다고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151쪽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아침 등굣길, 힘없이 걸어오는 학생들을 보고 먼저 반갑게 이름을 불러 주며 인사를 건네는 일, 급식 메뉴만 보고 맛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안 먹는 아이들이 뭐라도 좀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급식 먹방을 찍어 올리는 일,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간식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일. 이원재 작가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수 년째 해 오고 있다. 한 명의 교사가 시작한 다정한 말과 행동은 돌고 돌아 모두에게 퍼져 나간다.
문학 시험을 망치고 울고 있는 민호를 보며, 좋아하던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슬픈 성경이 사연을 듣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여름이가 쓴 글을 읽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당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새인이를 보며, 레슬링 국가대표를 꿈꿨으나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전학 온 상호에게, 이원재 작가는 짧지만 힘이 센 한마디를 건넨다.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이 담긴 다정한 한마디다.
선생님은,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힘이 센 만큼 조금 더 여유 있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 진짜 센 사람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91쪽
다정함이 삶의 태도가 되기까지, 이원재 작가는 결코 쉽지 않았던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의 자신을 만든 강렬한 기억을 떠올린다. 수능을 잘 보고 대학 입학만 기다리던 어느 날 집안이 망하고, 부모님은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시절, 그때 담임선생님은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국어교육과 입학 원서를 건네고, 4년 동안 전공책값을 보내 주셨다. 꺾일 것 같을 때 기적처럼 자신을 받쳐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삶의 경험으로 확인한 것이다.
우연히 내가 모는 배에 올라탄 그들에게도 위급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볼 수 있는, 혹은 진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생의 선배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141쪽
어떻게 보면 학교는 시험을 보고 등급으로 학생들을 나누는, 경쟁으로 가득한 차가운 공간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원재 작가는 학교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에서 학생은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은 학생을 만난다. 이 만남이 누군가에게는 일생을 바꾸는 운명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만난 인연을 함부로 하지 않기를, 서로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원재 작가는 오늘도 아침에 먼저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