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이주, 달 기지 건설, 지구 궤도 개발…
새로운 우주 시대, 코스모스는 누구의 것인가?
우주 개발은 오랫동안 인류의 낭만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달 탐사, 화성 이주 계획, 소행성 채굴의 가능성이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으로 제시됐고, 세계 각국의 과학 정책과 기술 기업들이 내놓은 성과에 따르면 우주 시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이제 이렇게 질문할 때가 됐다.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로 우주에 가는가? 그리고 우주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은 수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기술·경제 질서, 그리고 미래의 인류상을 성찰하게 하는 뼈아픈 문제 제기다. 이 책은 지구를 넘어선 새로운 ‘프런티어’로 부상한 우주, 그 안에 감춰진 자본과 권력의 탐욕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따라서 이 책 앞부분에서 다룬 우주 개발의 흐름과 현황은 기술적 성취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린 식민지화의 구조를 폭로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주 개발의 역사를 식민지 개척의 역사와 나란히 놓는다. 달 탐사와 화성 이주라는 대담한 비전은, 사실상 ‘우주 식민지화’라는 새로운 패권 경쟁의 전초전이다. 민간기업의 위성망 사업과 화려한 우주관광도 ‘모두의 우주’가 아닌 ‘소수의 이윤’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이를 ‘자본이 점령한 궤도’라고 단언한다. 최첨단 우주산업의 상징인 스페이스X와 아르테미스 협정은 단순한 기술 혁신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군사 전략이 결합한 새로운 식민지 개척의 전조로, 민간기업과 국가 권력이 공모하는 복잡한 지형을 형성한다. 이 책은 그러한 흐름을 역사적,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풀어낸다.
우주 식민지화의 현실을 직시하라
화려한 우주 개발의 이면, 자본의 탐욕과 군사화의 그림자
먼저 1장에서는 지구 궤도를 점령하는 민간 위성망, 그리고 화성 이주의 경제적 가능성을 살피며 우주 식민주의의 현재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스페이스X, 스타링크, 버진 갤럭틱 등이 주도하는 민간 우주산업의 급부상을 다룬다. ‘새로운 개척자’로 포장된 이 기업들은, 실제로는 초국적 자본의 탐욕을 우주로 확장하는 주체이며, 지구에서의 식민지 패턴, 즉 ‘발견→소유→착취’의 논리가 우주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기업들이 주도하는 달과 소행성의 자원 채굴, 화성 이주를 둘러싼 투자 경쟁은 새로운 자원 약탈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우주를 ‘모두의 것’으로 보던 낭만은, 달과 궤도를 둘러싼 독점경쟁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구에서의 식민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저자는 기술적 낙관에 도취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아르테미스 협정의 실체를 다룬 2장은 이 협정과 국제우주법의 충돌을 비판한다. 미국과 일부 동맹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협정은, 표면적으로 ‘국제협력’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원 소유권을 정당화하려는 국가적 야망을 반영하여, 달·화성 자원의 ‘합법적 독점권’을 강대국에게 허용하는 장치가 된다. 이처럼 아르테미스 협정이 자국 법령을 기반으로 달과 화성의 자원 개발 권리를 주장하며 국제우주법의 공공성 원칙을 무력화한다고 이 책은 비판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비영유 원칙’은 점점 힘을 잃고, ‘안전지대’ 개념은 군사·경제적 선점 논리를 강화한다. 국제우주조약이 말하는 ‘인류 공동의 유산’ 개념이 점점 후퇴하고, 달과 화성은 군사화·상업화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저자는 이 협정이 “우주를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으로 보아온 국제적 합의를 뒤흔든다고 지적하며, 우주가 국가와 기업의 전유물이 되어 가는 현실을 폭로한다.
3장에서는 우주의 상업화와 자본 집중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위성망 서비스, 소행성 채굴, 우주광고 같은 신산업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부각되고 기술 발전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흐름을 ‘자본 집중의 새로운 형태’라고 규정한다. 밤하늘의 별이 소수 기업의 통제 아래 놓일 때, 우주가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할 때 기술의 진보는 곧 불평등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우주 개발의 민영화가 세계 질서를 바꿀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주 군사화의 위험을 다룬 4장 또한 심각성을 환기한다. 군사화는 무기 경쟁을 넘어선다. 우주 공간은 정보와 통신, 정찰·감시 체계를 통제하는 ‘제2의 땅’이다. 군사화는 곧 지구의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위협으로 이어지고, 극초음속 미사일, 위성 요격무기, 전자·사이버전은 우주를 새로운 전장으로 만든다. 미·중·러의 군사위성 경쟁은 단순한 국방력 강화가 아니라 우주 평화라는 인류의 약속을 해체하는 일이다. 저자는 “우주 군사화는 지구의 군비 경쟁을 우주로 확장하는 일”이라며, 기술·군사 패권이 우주에서 어떤 위협으로 작동하는지 꼼꼼히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우주 평화라는 공공의 가치가 자본과 군사력의 논리에 잠식당하는 과정”으로 진단한다. 우주 군사화가 결국 지구의 국제 질서와 군비 경쟁을 더욱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지구의 위험 또한 가중되고 있다.
5장에서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의 실상을 파헤친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은 ‘생존의 대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 비전을 ‘자본의 새로운 투자지’로 읽는다. 화성은 인류의 낭만적 개척지가 아니며, 자본의 축적구조가 반복될 위험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성 이주는 기술적 도전인 동시에 정치경제적 함의를 지닌다. 저자는 “화성 이주를 둘러싼 논리는 지구에서의 식민지적 패러다임을 그대로 복제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화성에 대한 자원 개발과 경제적 독립의 논의는, 지구에서의 자본축적 구조와 맞닿아 있다. 화성 경제가 ‘참여적 계획경제’와 ‘민주적 공공경제’라는 이상으로 구현될 수도 있지만, 자본과 국가 권력이 선점하는 순간 새로운 지구적 불평등과 착취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화성 경제는 결코 ‘민주적 계획경제’로 굴러가지 않는다. 자원의 선점과 이윤 동기가 앞설 때, 화성은 또 하나의 불평등 행성이 될 수밖에 없다는 통찰이다.
마지막장에는 ‘코스모스 코뮤니즘’이라는 핵심적인 대안이 제시된다. 코스모스 코뮤니즘은 단순히 ‘우주를 공유하자’는 이상론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생태·윤리적 공동체로 보는 시선이다. 이는 “우리는 우주의 세입자일 뿐”이라는 선언으로, 화성이나 달, 소행성 등 우주의 자원을 일방적으로 수탈하거나 군사화해서는 안 되며, 생명 다양성과 생태적 조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전은 한스 요나스의 ‘책임 윤리’와 맞닿아 있으며, ‘비영유’ 원칙과 ‘공공 임차’ 개념을 핵심으로 한다. 기술의 오만이 아닌 새로운 겸허를 강조한 코스모스 코뮤니즘은 생태 보존과 윤리적 탐사를 우주 개발의 중심에 놓는다. 이 비전은 지구에서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우주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자본의 지배를 넘어서는 윤리적·정치경제학적 상상을 요청한다. 이렇게 이 책은 우주 식민지화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보인다.
인류 공동의 유산에 관한 새로운 상상,
우주와 지구를 잇는 연대의 정치경제학
이 책이 우주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주를 통한 지구 문제 해결의 가능성도 긍정한다. 달과 소행성의 자원이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누가, 어떤 가치로 개발하느냐”이다. 지금처럼 자본과 군사력이 개발을 주도한다면, 우주는 또 하나의 약탈지로 전락할 뿐이다. 이처럼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우주개발을 둘러싼 낙관과 회의의 경계를 넘어선다. 우주가 단순한 과학기술의 성취가 아니라, 인간 문명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윤리·정치경제학적 과제라는 통찰이다.
특히 이 책은 기술 발전을 무조건 숭배하는 통념을 뒤흔든다. 기술 낙관주의에 빠진 사회에서, 저자는 기술이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되새긴다. ‘기술 진보=진보 사회’라는 명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술은 때로 자본주의적 축적을 강화하거나, 군사적 패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주로 확장될 때, 인류의 미래는 또 다른 위험을 맞이할 수 있다. 저자는 우주 개발이야말로 이러한 자본-군사-기술 삼각편대의 결정체임을 증명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최신 사례를 풍부하게 인용했고, 스페이스X의 위성 발사, 화성 이주 계획, 아르테미스 협정 등 구체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술, 정치경제학, 생태윤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또한 이 책은 우주를 둘러싼 논쟁을 지구적 맥락과 연결한다. 기후위기, 불평등, 생태계 파괴, 군사 경쟁과 같은 지구 내부의 모순이 우주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다. 따라서 ‘코스모스 코뮤니즘’은 먼 미래의 공상적 제안이 아니라, “지구와 우주의 문제를 하나로 연결짓는 새로운 윤리”이며 현재의 지구를 재구성하기 위한 긴급한 요청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주에 관심 있는 과학기술 애호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술 발전의 정치경제적 함의를 고민하는 이들, 기후위기·생태위기를 고민하는 사회운동가, 우주와 군사화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평화운동가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또한 ‘우주=진보’라는 도식적 사고를 의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유효하다.
결국, 이 책의 의의는 ‘우주로 가는 우리의 태도’를 묻는 데 있다. 우리는 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우주를 개발하려 하는가? 그것은 우주를 탐험하기 위한 기술적 해답이 아니라, 인류가 어떤 윤리와 책임의식을 가질 것인가를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며 지구와 우주를 하나의 윤리·정치경제적 공간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동시에, 그 답을 찾는 여정은 우주를 새로운 탐욕의 장이 아닌 공동의 미래로 만드는 상상력과 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