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노자 『도덕경』은 주로 정치 사회적 의미로 많이 해석되었다. 그러나 도덕경은 단순히 유가儒家를 비판하면서 무위無爲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정치를 강조하는 저작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강조하는 저작으로 읽혀야 한다. 인간의 성품에 대한 선禪불교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노자 도덕경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자 도덕경을 정치 사회적 저작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신의 본성을 관조하는 선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고전은 낡지 않는다. 고전에는 인간 심성을 돌이키는 힘이 있고,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도리어 새롭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도 도덕경의 인기가 여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道와 덕德이란 무엇인가? 도란 생명이며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 그 자체다. 덕이란 도에 어긋남이 없이 행하는 것이며 자연의 이치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자신을 잃을까 걱정하는 것이 덕이다. 보고 있는 놈이 기기묘묘하여 도와 덕이 함께 한다. 노자는 도와 덕이 우리가 평소 인지하고 있는 도덕과는 다름을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라는 구절을 통해 드러낸다. 문자로는 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위자연은 의도하는 것이 없으면서, 꽃 피고, 새 울고, 비 오고, 바람 부는 것처럼 스스로 생성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의 성품도 이와 같다. 태고의 이러한 소박한 본성을 관조하게 되면 유위의 욕망들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소박한 본성을 어린아이, 가공하지 않는 통나무에 비유한다. 인간의 성품은 본래 무위자연과 같지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탐욕으로 성내고 어리석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으로 인간은 도와 덕을 저절로 체득한다. 나 자신의 본래 타고나는 성품을 보는 것이 도와 덕이며, 선의 이치이다.
우리의 성품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성품을 관조할 수 있는가? 자신의 마음 작용을 모르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자기가 일으키는 생각이 습관이 되고, 이 습관과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면서 평생 남들을 원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때 비로소 만물의 시작과 도의 근원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도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배이다. 이 보배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도덕경의 요지이다.
도를 형이상학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노자가 강조한 도의 본모습을 일면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천지를 본받고 천지는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은 인간과 천지자연과 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의 근원은 자신의 마음이며 이것을 아는 것이 도이며 무위이며 자연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노자 도덕경이다.
노자의 도덕은 무위자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무위자연이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선禪으로 볼 때 무위자연은 자신의 타고난 천성 즉 성품을 말한다. 도덕경을 선으로 읽는다니, 왜 도덕경을 선으로 읽어야 하는가? 도덕경을 펼쳐 읽는다고 하지만, 책에 있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덕경을 읽으려는 그 마음을 읽는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다시 말해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스스로 일으킨 안다는 생각, 배운다는 생각을 돌이키게 할 뿐이므로, 선으로 읽는 도덕경이라 한다.
도덕을 문자로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 선이다. 그렇다면 선으로 읽는 도덕경이란 무엇인가? 견성見性이 곧 도이고, 공들이는 것이 곧 덕이다. 도와 덕으로 스스로 일으킨 한 생각과 한 마음을 돌이키니, 곧바로 그 생각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다. 읽는 것이 도리어 일으킨 생각을 쉬게 하고, 근본자리가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므로, 선으로 도덕경을 읽는다고 한다.
도덕경과 선불교는 현실의 모습과 생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그럼에도 도리어 현실도피 내지는 현실회피를 조장한다는 지탄을 많이 받고 있다. 도덕경의 가르침을 오독하거나 과장하여 속세를 멀리하는 것이 곧 도피 내지는 회피라는 이미지를 강화시켰을 뿐이다. 생각의 본질을 외면하고 지식을 좇는 교육은 넘쳐나지만, 도리어 혼란이 끝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탐진치貪嗔癡에 갇혀 지내다가 문득 찾아야 할 것이 도덕경이며 선불교일 것이다.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어찌 회피이고 도피이겠는가? 다만 탐진치가 안다는 생각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곧바로 직시할 때, 무위자연의 이치가 스스로 드러날 뿐이다. 그러므로 선으로 성품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나고, 도는 진실로 나 자신의 허물을 보는 것이며, 덕이 절로 생성하게 된다.
필자筆者는 『도덕경』으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선禪의 눈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는 것 자체가 이미 필자의 허물을 피할 길이 없으니, 참회하는 마음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뛰어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도를 실행하려 한다. 평범한 선비는 도를 들으면 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의심한다. 어리석은 선비는 도를 들으면 도를 크게 비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