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 응원봉을 들고 눈오는 밤을 지샌 키세스단을
그림으로 응원했던 이정헌 작가가 가슴 따뜻한 시사 만평 에세이 들고 찾아왔다.
정치가 국민의 일상을 보듬지 못하니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자신을 지키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사회 부조리에 희생되고 피해를 입거나 맞서다 핍박을 당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만평과 달리 그림 속에 위로와 치유의 마음을 담으려는 따뜻한 만화가 이정헌 작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상처받는 이보다 위로받는 이가 더 많기를 바라며 작업해왔다.
분노와 폭로가 아닌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묵묵히 지켜보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아픈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단죄하는 방식보다 약자와 피해자에 힘을 실어주고 응원하는 편이 훨씬 익숙한 우리 시민들은 이정헌 작가의 그림에 위로받고 연대할 힘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이정헌 작가가 우리 사회의 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기록하고 공개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들을 모아 책 《이정헌의 따툰》으로 엮었다.
비판보다 이해를, 분노보다 연대를
주로 만화책의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소개해온 이정헌 작가가 사회의 아픔을 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검찰의 칼에 도륙당하던 조국 전 장관이 딸의 생일 케이크를 들고 서있던 애잔한 뒷모습을 그린 〈그 남자의 뒷모습〉을 SNS에 공개하자 민주 시민들이 깊은 울림으로 크게 호응하고부터였다. 세간의 억울한 손가락질과 감시를 당하면서도 딸의 생일은 챙기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완성한 작품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여 그린 그림으로 많은 이들의 이해와 연대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정헌 작가는 현실을 풍자하거나 공격하는 전통적 만평의 문법에서 벗어나 비판보다 이해를, 분노보다 연대를 택한다. “상처받는 사람보다 위로받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시대의 상처 위에 조용히 손을 얹는 따뜻한 기록이다.
《이정헌의 따툰》에서는 여섯 갈래로 저자의 마음을 나누어 소개한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 윤미향 전 의원의 고단한 투쟁으로 일본이 사죄하는 희망을 붙잡는 마음, 검찰의 칼날 아래 상처입은 조국 전 대표와 그 가족의 삶에 함께 걷는 마음, 사법부와 언론의 폭력에 멍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고통을 이겨내는 마음, 국가의 무책임 속에 반복되는 참사와 스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마음, 우리 곁에 함께 하던 좋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마음과 광장에서 마침내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빛나는 마음이 그것이다.
기억이 곧 연대이다.
기억은 사회적 고통의 반복을 막는 가장 단단한 저항이다.
작가는 조금씩 지워지고,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을 그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일생과 노력, 저항이 의미없이 소멸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펜을 들고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과거의 회고록이 아닌, ‘기억의 손’을 함께 쥐자는 제안이자 연대의 초대이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추천사에서 “그의 만화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고 밝히며, “이 책을 통해 험한 세상을 이겨낼 힘을 얻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복동평화센터 윤미향 대표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 끝을 통해 온기가 전해진다”고 남겼다.
우리는 알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권이 교체된다고 세상이 곧바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기억이 곧 연대이고, 연대는 희망의 시작’이라고.
책을 만드는 동안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통령은 파면됐으며 새 정부가 출범했다. 행여 빛바랜 옛날 이야기처럼 시의성이 떨어질까 걱정했지만 교정교열을 보며 수차례 읽어가는 동안 여전히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할 화두이고 힘을 모아야 할,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연대하는 이정헌 작가의 기록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이정헌의 따툰》은 읽는 일은 그 궁리의 시작일 것이다.
기억의 책, 저항의 그림, 연대의 문장을 지금 함께 펼쳐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