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소리
이십 년 전의 일로, 다니던 회사를 어처구니없이 나오게 되고 잠시 쉬다가 다시 재입사하는 곡절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월급쟁이 탈출이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어차피 오너가 아니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못 볼 꼴을 보고 살게 되어있다. 게다가 아무리 약육강식의 링에 올라섰다고 해도 약한 놈이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내 구조가 정말 싫었다.
마침 새로 부임한 사장이 필요한 주요 부품업체를 설립하여 계열사처럼 운용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덥석 물었다. 안 그래도 다니기 싫었던 차에 독립의 결정적 기회가 왔으니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내건 조건도 좋았다. 실제로는 직을 유지하며 부하 직원들도 그대로 휘하에 두고 다만 공장만 창업, 운영하라는 것이다. 공장 설립은 일사천리, 첫 물량도 수의계약, 여유 있게 받아서 부담 없이 생산, 출하하니 금세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터져 나왔다. 물량이 늘어날수록 용량에 맞는 제작 장비들이 부족했다. 동시에 제품의 기술검사나 감독기관의 승인도 문제였고 출하한 물건의 A/S 처리 역시 골칫덩이였다. 만들고 납품만 하면 될 줄 알았지 리스크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었으니, 한마디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자금압박은 당연한 일, 은행 대출을 받아 가면서 계속 끌고 나갔다. 곧 좋은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하지만 국내 조선 경기는 날로 악화, 주문량 자체가 줄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