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산 면티를 입고 해변에 누워 있던 강우는 액괴에게 옷을 뜯어 먹혔다. 구급차에 실려 온 강우의 티셔츠에 크고 동그란 구멍이 났고, 그에 꼭 맞춘 듯 통통하고 물렁한 액괴가 붙어버렸다. 의료진이 떼어내려 해도 여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심박이 정상 수치보다 조금 낮아진 것 말고는 크게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김나현, 「미스터 액괴 나랑 떨어지지 마」) (10쪽)
“그래! 그런데 내가 뭐, 자네를 때리기라도 했나? 다들 그 정도는 하면서 사는 거잖아. 자네가 그렇게 약한 걸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지 않나. 버텨야지,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 순간 액괴의 팔이 길게 늘어났다.
“그럼…… 버텨보든가…….”
그러더니 고 과장의 얼굴을 향해 액괴의 팔이 날아갔다. 으아악. 겁에 질린 남자의 비명이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김나현, 「미스터 액괴 나랑 떨어지지 마」) (24쪽)
얼마 후, 한 언론사에 의해 너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누군가의 품에 아이처럼 안긴 채 손가락을 빨고 있는 영상이었다. 귀여운 얼굴에 맑고 동그란 눈, 미소를 지은 듯 위로 살짝 올라간 입꼬리. 심지어 온몸을 뒤덮은 검은 털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저렇게 귀여운 침팬지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이렇게 사랑스럽게 생겼다고? 나는 영상을 보자마자 너를 안아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서이제, 「내가 사는 피부」) (55~56쪽)
“근데 쟤는 왜 지리산에 있었지?”
“그건 아직 안 밝혀졌어요.”
“별일이야, 정말.”
직장 동료들이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텔레비전 속 침팬지는 야무지게 과일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그 뒤를 쫓았다. 침팬지를 따라가보니, 야외 방사장 한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침팬지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자신의 품에 살포시 안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인간이 아기를 다루는 것 같았다. (서이제, 「내가 사는 피부」) (66~67쪽)
“너무 맛있어서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라고 느낄 때 손바닥에 있는 이 버튼을 꾹 눌러요. 그러면 ‘클라이맥스 포워딩’이 시작돼요. 알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서 눈을 뜬 뒤 손바닥 피부 속에 이식된 작은 버튼이 볼록 튀어나온 걸 보았다. 이게 나를 구한 대가로 아저씨가 요구하는 일이라는 걸 곧장 깨달았다. (황모과, 「오감 포워딩」) (89쪽)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마음이 조급했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나는 내가 복수해야 할 대상을 떠올리며 아저씨를 찾아갔다. 다시 클라이맥스 포워더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손바닥에 버튼을 재이식했다. 서버와 연결되었다는 연락을 듣자마자 그 길로 나는 3층 높이의 가파르고 긴 계단의 가장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고 관절이 이상한 각도로 꺾이고 전신에 타격을 느낀 그 순간, 나는 손바닥의 버튼을 힘껏 눌렀다.
‘고통스러운 순간까지 네가 다 가지렴!’ (황모과, 「오감 포워딩」) (106~107쪽)
이른바 ‘풍선 전쟁’이라고 명명됐던 그 어이없는 전쟁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오래 이어졌다. 선선히 불어오는 북해의 계절풍을 타고 남녘으로 날아온 첫 번째 풍선에는 어느 곳에서도 쓰지 못할 정도로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진 화폐와 곳곳에 싹이 자라난 썩은 감자 몇 덩이가 묶여 있었는데, 사령부 과학수사 연구소의 정밀 조사 결과 치명적이진 않지만 만지면 귀찮은 몇몇 증상에 시달릴 수 있는 유해 물질이 잔뜩 발려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김쿠만, 「벌룬 파이터」) (127쪽)
소장을 받은 관리소장은 곧바로 네 번째 벌룬 파이터가 되려고 시도했는데, 안타깝게도 자전거 전용 공기 주입기로 바람을 불어 넣은 풍선은 진짜 벌룬 파이터의 풍선처럼 사람을 허공에 두둥실 띄우지 못하고 처참히 추락시켰다. 추락한 것은 소장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고궁 근처의 주상복합아파트보다 매매가가 비쌌던 종합 업무지구의 매매가도 함께 떨어졌다. 그 추락은 순전히 벌룬 파이터의 낙하 때문이었다. (김쿠만, 「벌룬 파이터」) (136쪽)
중앙공원에서 발견된 여자의 소식은, 이를 목격한 또 다른 이들이 지역 커뮤니티에 게재한 글에 의해서 퍼져 나갔다. 여자의 얼굴이 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는 대목에서 사람들은 공원의 나무를 떠올렸다. (변미나, 「나무인간」) (163쪽)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이 기이한 시도는, '나무가 된 사람은 나무처럼 보살펴야 한다'는 속설과 함께 급속히 퍼져나갔다. 환자의 하반신을 흙에 묻고 정기적으로 물을 주는 이 방식은 의학적 근거는 전무했지만, 절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다. 볕도 들지 않는, 집 안 구석진 곳에 놓이게 된 그들은 영락없는 나무처럼 보였다. (변미나, 「나무인간」) (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