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 초끈이론, 우주론을 이끈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 서문 수록
죽음학의 명실상부한 고전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가 남긴 기념비적 저작
“이 책은 내 학자적 영혼의 평안을 위한 시도이자 지적 사면을 위한 청원이다. 내가 쓴 최초의 성숙한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_어니스트 베커
출간된 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철학, 사회학, 심리학, 신학 등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며 죽음학 분야의 명실상부한 고전으로 자리잡은 『죽음의 부정』을 새롭게 선보인다. 수많은 저작에 인용되며 독자의 지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해온 책이지만, 국내에서 절판되면서 그간 큰 아쉬움을 안겼다. 복복서가에서 출간하는 이번 판본에서는 노승영 번역가가 직접 기존 번역을 다듬고, 초끈이론과 우주론을 이끈 세계적인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의 서문을 더했다. 브라이언 그린은 베커의 책을 읽고 자신의 탐구열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죽음의 공포”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 책은 일생 동안 인간 본성과 죽음에 대해 탐구한 어니스트 베커의 사상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베커에게 죽음의 공포란 “인간 행위를 놀랍도록 명료하게 이해하는 열쇠”였다. 대장암으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그는 이 책을 집필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죽음의 부정』의 서문을 쓴 철학자 샘 킨이 병실을 찾아갔을 때, 베커는 이렇게 말했다. “최후의 순간에 절 찾아오셨군요. 제가 죽음에 대해 쓴 모든 것을 드디어 검증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보여줄 기회가 찾아온 거죠. 제가 과연 존엄하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의 이 흔들림 없는 의연함은 명료하고 예리한 통찰로 응축되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책은 베커가 세상을 떠난 뒤 출간되어, 197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길이 남을 대담한 역작. 짜릿한 지성과 열정이 담긴 낙관적이고 혁명적인 책.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독자의 사고, 지적 호기심, 영혼을 자극하는 드문 걸작이다. _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정신의학자, 『죽음과 죽어감』 저자)
필멸이라는 운명을 맞닥뜨린 인간의 딜레마
죽음을 부정하려는 보편적 욕구에 관한 문명사적 분석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지금 이 순간 너머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당장 닥친 현재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한다. 인간만이 지닌 이 능력은 자연 세계 내 다른 생명은 해낼 수 없는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게 했다. 폭넓고 깊은 사유를 통해 세상에 없던 물건을 발명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조해내고 사회와 국가를 구성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이 독보적인 능력도 힘을 잃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모든 인간이 끝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의 종말, 즉 죽음의 순간이다. 특출난 능력도 치밀한 전략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며,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예외 없이, 모든 인류를 기다리는 미래는 죽음이라는 영토다. 가장 뛰어난 생명체임에도 필멸의 운명을 거스를 방도는 없다는 것, 이것이 인간 조건의 아이러니이자 딜레마다. 그러니 인간이 죽음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위풍당당하게 우뚝 솟아 자연으로부터 돋보인다는 점에서 자신이 독보적임을 자각하면서도, 눈멀고 말문이 닫힌 채 1미터 아래 땅속으로 돌아가 영영 썩어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가 처한,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끔찍한 딜레마다. _77쪽
베커는 모든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영속할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을 남기려 생애 내내 분투한다고 말이다. 베커에 따르면 우리가 행하는 일들은 모두 죽음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각을 가라앉히려는 시도다. 신앙에서 희망을 찾거나 자손을 번식하는 비교적 온건한 방식도 있지만, 때로는 다른 생명을 살육하거나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진짜 불멸을 얻을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베커는 이러한 ‘가짜’ 불멸을 위한 투쟁이 세상에 악을 불러온다는 주장을 펼쳐 보인다. 심리학, 정신분석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종합하고, 지크문트 프로이트, 쇠렌 키르케고르, 에리히 프롬, 오토 랑크 등 주요 사상가들의 철학, 사회문화적 분석을 바탕으로 평생 천착해온 주제인 죽음을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 공포의 근원이다. 무에서 생겨나 이름, 자의식, 깊은 내적 감정, 삶과 자기표현에 대한 고통스러운 내적 열망을 가지는 것,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죽어야 한다는 것. 마치 장난 같다. _168쪽
우리를 사납게 뒤쫓는 죽음의 공포
베커가 남긴 지독하게 연약하고 놀랍도록 강력한 희망
인간 행위의 모든 동기가 죽음의 공포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죽음이라는 뜻일 테다. “땅속으로 돌아가 영영 썩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욱 충만한 삶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필멸의 운명을 자각하면 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눈이 한층 맑아질 테고, 이는 더욱 가치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원초적인 불안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불안의 핵심에 있는 진실을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이를 원천으로 고유한 사상을 발전시키거나 또다른 차원의 사유로 뻗어나가며 성장할 수 있다. 베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비관적이고 체념적인 선언을 넘어, 우리가 이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민하게 한다. 그러니 『죽음의 부정』은 죽음뿐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악의 지배를 늘리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고 줄이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내일의 대본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결국 베커가 우리에게 남긴 희망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놀랍도록 강력하다. _「서문」, 샘 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