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였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차에 치여도 이런 충격은 아닐 것 같았다. 아들의 목소리는 이게 실제 상황임을 명백히 하고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희숙은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안 그러면 뒤로 넘어질 것 같아 팔을 뻗어 책상 한편을 붙들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두 다리가 벌벌 떨려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겁에 질려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을 제 입으로 말하기도 힘든 것 같았다. 희숙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구를!” --- p.21
“나는 네 아버지 사건의 담당 형사였다.”
인우는 놀란 눈으로 박덕훈을 보았다.
“네 아버지는 자살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고 집도 있었지. 대출은 없고, 주변 평판도 좋았어. 가정에 충실하고 사회생활에도 유능한 남자였어.”
그건 인우 역시 알고 있었다. 어릴 때였지만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아빠는 야근이 잦았지만 주말이면 항상 가족과 함께했다. 가족끼리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아빠의 제안이었다. 그때는 캠핑이라는 게 그렇게 유행하지 않았을 때였다. 아빠는 귀찮아하지도 않고 음식 준비며 모든 걸 책임지곤 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자살할 남자가, 굳이, 가족들과 캠핑을 가서 그런 짓을 할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인우는 자신도 내면 깊은 곳에서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p.70
슈퍼마켓을 끼고 돌자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왔다. 위로 올라갔다. 두 채의 집이 마주보고 있었다. 김영택의 집은 201호였다.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한참이나 음악 소리가 들렸지만 응답이나 인기척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재차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없는 걸까요?”
“글쎄.”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 선 채로 김영택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받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벌어진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집안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 것이다.
“뭔가 이상해.” --- p.166~167
“둘 다 불에 태웠다는 점은 같지만 현재경은 목만 졸랐잖아요. 뚜렷한 계획범죄의 정황이 있고요. 그런데 이 범죄는 그렇지 않은 데다 목을 칼로 찌른 다름 졸랐어요.”
나쁘지 않은 지적이다. 하지만 인우의 결론은 서기영의 생각과는 달랐다.
(……)
“범인은 여자거나, 아니면 김영택보다 힘이 약한, 혹은 자기가 제압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남자일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지.”
“뭔데요?”
인우는 시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직 김 박사가 시신을 확인하고 있었다. 인우는 거기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비정한 다정함.” --- p.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