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가치를 빛내 주는 노력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기쁘고 가슴 벅찬 일보다 시시콜콜 걱정거리가 훨씬 많게 느껴질 정도이다.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기를,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온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부터 시작해 오늘 지각하면 안 되는데, 이번 시험 잘 봐야 하는데, 주말에 놀러 갈 때 비 오면 안 되는데 등등 안심할 수 없는 일들이 차고 넘치니 말이다. 이야기 속 재은이도 그랬다. 새 학년 첫날부터 지각할까 봐, 친구가 자기랑 약속한 거 까먹었을까 봐, 발표할 때 떨려서 버벅거릴까 봐 늘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 학년이 되어서도 친한 친구 아영이와 같은 반이 되었고,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만났고, 바라는 대로 승민이와 짝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재은이의 걱정이 멈춰질 리 없다. 오죽하면 머릿속에 있는 걱정 따위는 깨끗이 지워 버리라고 걱정 세탁소가 눈앞에 나타났을까! 걱정 세탁소에서 걱정을 세탁한 덕분에 재은이는 마음속 걱정이 사라졌지만, 사실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뿐 걱정해야 할 일은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원래의 재은이처럼 걱정을 떠안고 살아도 정말로 걱정할 일이 생길 확률은 비슷할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재은이 같은 걱정꾸러기들이 스스로 마음을 갉아먹지 않도록 위안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독자들은 재은이가 걱정 세탁소에 다녀온 뒤로 맘 편히 지내는 일상을 보면서 충분히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같은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걱정하면서 마음 졸일 필요는 없지만, 걱정하는 마음 덕분에 일이 긍정적으로 잘 풀릴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짚어 준다. 재은이가 시시콜콜 걱정을 하면서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친구와 만났을 것이고, 공부를 잘했을 것이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었을 것이고, 발표를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입을 모아 밝혔듯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 것도, 부지런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걱정 덕분이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니 세상의 걱정꾸러기들에게 전한다. 걱정해도 괜찮아!
응원이 담긴 따스한 걱정의 힘
재은이에게는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가 있다. 한 달 전 새벽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만 해도 다시는 할머니를 못 보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지금은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기를 돌봐 주신 할머니라서 애착이 강하고 그만큼 걱정하는 마음도 크다. 할머니를 향한 재은이와 부모님의 걱정은 할머니의 식사와 약을 챙기고, 한 번이라도 더 할머니를 들여다보게 한다. 할머니는 그런 가족들의 염려와 걱정을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시는 듯하다. 걱정 안에는 응원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다. 재은이가 친구들과 발표 준비를 할 때, 자꾸 연습을 거듭하는 것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게 아니다. 친구가 큰 목소리로 발표를 잘하고 준비한 자료를 잘 보여 주어야 자신감도 생기고, 박수도 많이 받고, 함께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은이와 친구들이 힘을 합쳐 모둠 발표를 준비하고 잘 마친 뒤에 신나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장면이 아주 뿌듯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신이 난 건 지긋지긋 홍재은의 잔소리가 끝나서만은 아닐 것이다. 친구의 잔소리와 걱정 속에 따스한 응원이 담겨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결정을 책임지는 일
걱정꾸러기 재은이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걱정 세탁소에서 걱정을 세탁해 버린다. 제대로 된 기계가 맞는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START 버튼을 눌렀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평소 걱정이 많은 사람이면 1시간, 12시간, 30일 버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재은이는 의외로 선택이 빨랐다. 걱정도 조심성도 많아서 소심하게 1시간 버튼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걱정 세탁소를 찾는다. 또 마지막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은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고, 경험을 하고,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재은이는 스스로 한 결정에 책임지는 법을 배우며 한 뼘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걱정 많은 재은이는 걱정 세탁소에서 걱정을 깨끗이 세탁하고서 행복해졌을까? 내내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나았을까? 글쎄, 재은이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지만 독자인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 자, 지금 나는 걱정 세탁소 안에 서 있다. 안내 음성이 들려온다. 걱정을 세탁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