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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곳


  • ISBN-13
    979-11-92837-20-8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말그릇 / 말그릇
  • 정가
    13,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4-3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박명철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박명철 #기억이 머무는 곳 #박명철수필집 #박명철 수필집 #박명철장군 #에세이 #말그릇 #말그릇출판 #한국수필 #에세이, 문학에세이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2 * 205 mm, 232 Page

책소개

이 책은 2부로 구성했는데, 1부 ‘걸어온 발자국’에는 내 삶의 행적을 담았다. 어릴 적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 덕분에, 특별한 감동이나 이례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 기록은 7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으며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내 삶의 중심은 군대였다.

2부는 ‘절기 따라 가보자’이다. 2024년 새해를 맞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던 참에 한 친구에게서 입춘(立春)을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새해를 건강하고 보람차게 보내자는 영상 편지였다. 그 메시지를 보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입춘이 한 해의 첫 절기이니, 절기의 흐름을 따라 자연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펴보면 뜻깊은 시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절기 소재를 글로 써보기로 마음먹고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광교산 자락에서 변화하는 자연을 관찰하며 절기를 따라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후와 날씨가 자연의 순환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게 되었고, 나아가 농사와 세시 풍속도 제법 알게 되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도 배웠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절기를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보낸 1년은 내게 깨어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일상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삶의 의욕이 충만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목차

저자의 말 4

1부_ 걸어온 발자국

벙커 속의 진도아리랑 14
전장의 단상들 21
7번 국도에 핀 인정 28
날짜변경선 42
소백산 계획 47
남한산성, 돌에 새긴 역사 56
만추의 문경새재 64
연극 출연, 인생 한 컷 71
삼둔 사가리 75
수필 교실에서 피어난 공감 82
보훈병원에서 본 인간 군상 85
어허! 저래서는 안 되는데 89
독도 플래시몹 93
낯선 감정 앞에서 96
후회는 뒤늦게 온다 100
문상 103
판문점 제3땅굴 108


2부_ 절기 따라 가보자

입춘절 _ 절기 따라 가보자 148
우수절 _ 물이 곧 생명이구나 151
경칩절 _ 깨어나는 생명의 시기 153
춘분절 _ 만물이 소생하다 156
청명절 _ 온갖 꽃들은 피어나고 158
곡우절 _ 하늘이 곡식비를 내린다 161
입하절 _ 계절의 여왕 5월 163
소만절 _ 초록이 눈부시다 166
망종절 _ 보리 베고 모내기 하고 168
하지절 _ 가장 긴 낮의 이야기 171
소서절 _ 망중한이다 174
대서절 _ ‘삼폭’의 계절이구나 176
입추절 _ 가을이여, 어서 오라 180
처서절 _ 전통에 거스르는 절기 184
백로절 _ 풀잎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187
추분절 _ 어김없이 돌아오는 가을 190
한로절 _ 찬 이슬 맞아 낙엽이 되고193
상강절 _ 이슬이 서리가 되고 196
소설절 _ 심신이 먼저 맞이한 소설 200
대설절 _ 큰눈이 내리다 205
동지절 _ 가장 많이 알려진 절기 209
소한절 _ 매서운 추위에 갇히다 213
대한절 _ 마음이 춥다 216
새 입춘절 _ 찬바람 너머 봄 219
단오 _ 태양의 기운이 강렬해진다 223

본문인용

벙커 속의 진도아리랑
1951년 12월 초순, 동해안 북부 지역에는 며칠째 눈이 내렸다. 라디오에서는 적설량이 50cm를 넘었다고 전했다.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한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포 벙커로 이어지는 좁은 길만 겨우 터놓은 채 차량도 사람도 갇힌 듯 지내야 했다. 반지하 막사에서 취사장까지 가는 길을 겨우 뚫었고, 어깨높이까지 쌓인 눈더미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행히 밥을 굶지는 않았다.
경남 통영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이렇게 많은 눈과 혹독한 추위는 생소했다. 부대는 해가 떠도 밤처럼 조용했다. 온 세상이 하얀 눈에 덮여 숨죽이고 있었다.
그날, 203 OP(관측소)에서 근무 중이던 유 소위와 신속히 교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와 백 상병은 비장한 각오로 포진지를 떠났다. 전날 준비한 군장을 다시 확인하고, 둘이 나눠 짊어졌다. 양손은 자유롭게 해 두었다. 위험하고 불확실한 길에서는 손을 비워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선임자에게 배운 터였다.
갑작스러운 교대 명령이 내려진 이유는 유 소위와 그의 관측반이 적의 기습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었다. 정신적 충격이 큰 상태라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포병 소위가 최전방 소총중대에 나가 포병 관측장교로 근무하는 것은 기본 직무다. 하지만 첫 임무가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시작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포진지를 나서자마자 길도, 표지물도 없는 눈 세상이 펼쳐졌다. 게다가 우리는 가파른 산을 올라야 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 속에서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눈 속에 파묻혀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즉시 허리에 5m 길이의 노끈을 묶어 서로 연결했다. 한 사람이 눈에 빠지면 다른 한 사람이 닻이 되어야 한다는 백 상병의 지혜였다. 네 살 많은 그는 경험이 많았다. 우리는 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드문드문 보이는 통신선 전주를 길잡이 삼아 나아갔다. 긴장과 피로가 겹쳐 온몸에 땀이 흘렀다. 방한모도 벗고, 두꺼운 군용 장갑도 벗었다. 마르는 목은 손에 쥔 눈으로 적셨다.
어떤 골짜기는 바람에 날린 눈이 깊이를 알 수 없게 덮여 있었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그대로 빠져버릴 듯했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산으로 기울 무렵, 우리는 마침내 203 OP에 도착했다.
산 정상부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다. 하얀 눈에 덮인 채 햇빛을 반사하며 차갑고 냉엄하게 빛났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전투 구조물은 지하로 숨겨진 듯했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디찬 눈가루를 얼굴에 뿌렸다.
땅은 군데군데 숯검정과 화약으로 얼룩져 있었다. 산병호와 초소를 연결하는 교통호는 제설이 되어 있었지만, 그 외의 곳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우리와 맞선 인민군은 남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1.5km 거리. 이곳은 최전방 소총중대의 전투진지다.
이틀 전, 적의 기습을 받은 곳이었다. 백 상병과 내가 도착할 때까지도 인민군 시체 한 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핏자국도 지워지지 않았다. 땅이 얼어 시체를 묻을 수도, 덮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대장은 부대원들의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적의 주검은 내게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유 소위는 나에게 필요한 사항을 신속히 인계한 후, 그의 관측병과 함께 포진지로 서둘러 내려갔다. 
유 소위와 함께 있던 고 일병은 이제 나의 통신병이 되어 백 상병과 함께 세 사람이 새로운 203 OP의 관측반을 이루었다.
우리가 생활할 곳은 산의 한 경사면을 파고 들어가 넓이 두 평 정도의 온돌방을 만들고 그 위로 굵은 통나무를 촘촘히 걸쳐 얹고 흙을 1m의 두께로 덮어 만든 벙커다. 온돌은 105mm 곡사포의 포탄을 담았든 강철 원통으로 만든 것이다. 철통 속에 흙을 채우고 뚜껑을 잠가 파 놓은 골 위에 여러 개를 촘촘히 올려 구들장으로 놓았다. 그 위에 흙을 덮고 가마니를 깔고 장판지로는 콜타르 먹인 탄통을 펴 깔았다. 
당시도 그렇거니와 오늘날에도 온돌방 구조로는 최상인 듯싶다. 아궁이도 벙커 안에 있고, 자그마한 솥도 하나 걸었다. 솥에 눈을 다져 가득 담아 불을 피워 녹이면 그 물로 밥도 짓고 따로 반합에 국도 끓일 수 있다. 출입문은 가마니와 판초 우의로 된 두 겹의 장막인데 낮에는 말아 올렸다가 밤에나 추울 때 내려놓는다. 출입문 맞은편은 온돌방의 윗목으로 그 벽면에 홈을 파서 굴뚝을 붙여 새워 지상으로 뽑아낸 구조다. 구들장으로 쓴 것과 같은 철통으로 굴뚝을 만들었으니 온돌방에다 벽난로도 설치한 구조라 불을 조금만 때도 벙커 안은 훈훈하다. 천장은 촘촘히 걸쳐 있는 굵은 통나무 바로 그것이고, 위에 두껍게 흙을 덮었으니 그 흙이 곧 지붕이다. 지붕의 배수는 지형 따라 이룬 경사면으로 처리되고 아궁이의 배수는 홈을 깊게 파서 지하로 침수시켜 해결한다.
사격임무도 없고 통신수단도 이상 없는 날은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복된 날이다. 나이 스물넷의 백 상병은 전남 완도가 고향이고 결혼도 한 사람이라 나이 열아홉의 제주도가 고향인 고 일병과 나에 비하면 어른이다. 그는 입담이 좋아 구수한 이야기도 잘하거니와 노래도 잘 부른다. 양미리나 미제 돼지고기 통조림이라도 올라와 저녁밥을 맛있게 잘 먹은 날이면 그는 모포를 말아 높은 베개로 만들어 드러눕고는 그의 애창곡인 ‘진도아리랑’을 뽑는다. 한결같은 곡조에 가사는 잘도 갖다 붙여 고향 이야기며 자기 아내의 아리따움이며 끝도 없이 엮어 나가는데 고 일병과 나는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즐긴다. 
놀이기구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라디오도 없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관측반 장비로 가지고 있는 AM 무전기의 주파수를 잘 맞추면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도 있는데 운이 좋으면 아는 노래를 듣게 되기도 한다. 세 남자의 체취가 밴 벙커 안의 냄새는 우리를 폭신하게 감싸주는 모태 바로 그것인 것 같다. 
한밤중에 “따따 따따” 하고 연달아 나는 총소리에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난다. 나는 급히 옷을 입고 카빈총에 탄창을 끼고는 철모를 한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선다. 그 순간 백 상병이 “가만히 있어요, 내가 먼저 나가보고 올 것잉께.” 하며 나를 뒤에서 잡아 제치고는 먼저 튀어 나간다. 나는 털썩 주저앉는다. 
적이 바로 중대 진지 안으로 기습해 온 것 같아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진다. 고 일병도 소총을 들고 뒤따라 나간다. 나는 순간 포병 관측장교로서의 기본 직무를 생각해야 하는 냉정함을 회복한다. 
손전등을 켜고 지도를 펴 놓고는 보병중대장에게 전화를 건다. 한참 만에 연결된 중대장 말로는 “전초분대의 초병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적병으로 여겨 사격한 것이 그 전초분대 전원의 사격으로, 더 나아가 2소대 전체가 사격하게 된 것 같은데 정확한 상황은 조금만 기다려 보라” 한다. 
백 상병이 돌아와서 “적 정찰병이 왔다가 쫓겨 갔대요”라고 말한다. 한마음 놓인다. 나도 밖으로 나가본다. 하늘 높이 ‘사격 중지’를 알리는 오성 신호탄이 솟아오른다. 주변은 다시 어두운 적막으로 되돌아간다. 밖에 나간 우리 셋은 캄캄한 밤하늘을 말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매우 위급한 상황으로 긴장되어 있을 때, 백 상병이 나를 제치고 먼저 뛰쳐나가며 “가만히 있어요, 내가 먼저 나가보고 올 것잉께”라 한 말이 내 귓전에 메아리친다. 위험 앞에서 상관인 나를 보호하겠다고 자기가 앞장서는 그 마음이 내 가슴을 달군다. 뜨거운 기운이 왈칵 치밀어오른다. 눈물이 핑 돈다. 뜨거운 눈물이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백 상병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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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박명철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수산고등학교 재학 중 육군에 징집되어 사병으로 복무했다.
이후 소위로 임관해 동부전선에서 근무했고, 미국 포병학교 초등군사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조선대학교에서 법학사를 취득하였고, 포병대대장과 육군대학 교관으로 근무했다. 주월군사령부에서도 활동했으며, 36사단장을 역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6군단장과 육군참모차장으로 일했다. 마지막으로 병무청장을 맡았다.
그동안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국선장,
미국 Legion of Merit 등 다양한 상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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