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급성장한 미국 기업은 전후 기술력, 생산성, 경영 · 조직관리, 전문성에서 유럽 기업을 압도했다. 미국 경제는 어떤 생산방식을 채택하여 이렇게 성공했는가? 그것은 ‘포드주의fordism’라고 할 수 있다. 포드주의란 포드자동차가 자동차 제조 공정에 처음 도입한 생산 시스템이다.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표준화된 부품을 올려놓고 표준화된 기계와 공구를 투입하여 분업화된 노동자가 동일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표준화 된 생산방식이다. 포드주의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 관계없이 전 세계가 채택한 생산방식이다.” (p.39)
“세계화 30년 동안 미국 제조업은 해외로 과도하게 이전했다. 미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을 촉발했던 고임은 아직 그대로여서 해외로 이전한 미국 기업이 다시 미국에 복귀할 이유는 크지 않다. 오히려 중국을 떠나는 미국 기업은 인도나 베트남 등 제3국으로 갈 것이다. 그동안의 해외 이전으로 국내에 생산 기술이 축적되지 않았다. 현대 제조업은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축적이 필요한 장치 산업이어서 이 공백은 크다. 대부분 혁신은 제조업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국내 제조업의 약화는 혁신 기반의 약화도 초래할 것이다. 미국 제조업이 다시 부활하더라도 중국만큼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것은 도전적인 과제이다.” (103p)
“미국 제조업의 쇠퇴와 이에 따른 해외직접투자 역량의 약화는 그 파급 효과가 크다. 미국이 패권국이라는 것은 어떤 사안에 대해 미국 스스로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다른 나라를 미국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군사력과 경제적 힘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의 힘의 원천은 여러 다른 요소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측면에서 보면 그 권력은 전 세계에 펼쳐놓은 ‘군사 네트워크’와 경제 네트워크인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와 ‘해외 투자 자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제조업의 쇠퇴는 이 3가지 네트워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36p)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보호무역주의, 신고립주의, 일방주의로 구성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채택했다. 2018년 미국은 보호무역주의적 색채가 강한 1988년 종합 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에 근거하여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지재권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146p)
“미국의 대중 경제 통제는 크게 중국산 수입에 대한 관세 부과, 미국의 첨단 기술 수출 제한, 첨단 기술의 양방향 FDI 교류 제한이다. 미중 경쟁은 ‘관세 전쟁’, ‘기술 전쟁’, ‘체제 전쟁’에 이어 투자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첨단 기술은 ‘민감하거나 중요하며 민수와 군수의 겸용 사용이 가능한 고위 기술로서 AI, 양자 정보 과학 등의 신흥 기술 등을 포함한다.” (164p)
“미국 제조업은 생산액 기준으로 중국 제조업의 절반 수준이어서 미국이 중국과 양적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이제 미국의 선택은 첨단 기술에서 대중 우위를 지키는 것이다. 미중 투자 전쟁도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첨단 기술은 미중의 패권 경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첨단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일구며, 국가 간 새로운 의존성을 만들뿐만 아니라 전쟁의 판도도 바꾸기 때문이다.” (182p)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가 2025년 1월 공개한 AI 모델인 ‘R1’이 미국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딥시크는 미국의 AI인 챗GPT의 ‘o1’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R1’을 개발했다. 일각에서는 구글, 메타, 앤스로픽 등의 AI 모델을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더욱이 R1은 챗GPT 개발비의 1/20를 투입하여 개발한 것이어서 그 충격이 더 크다. 중국 기업은 미국의 대중 첨단 기술 수출 통제로 미국산 첨단 AI 칩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엔비디아가 2022년 개발한 상대적으로 구형인 ‘H800’ 칩, 알고리즘, 아키텍처 등의 혁신을 통해 고성능 AI를 만든 것이다. 미국의 AI 칩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혁신을 자극한 셈이다.” (186p)
“미국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쇠퇴한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긴급 필요에 따라 추가 분야에서 한국 제조업이 필요할 것이다.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해군의 함정 건조 및 유지 · 정비 · 보수MRO를 위해 한국 조선 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여 시장을 확보해 가면 이로 인한 선점 효과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미중 투자 전쟁에서 한국이 가장 집중해야 할 시장은 미국의 필요와 한국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미국이다.” (205p)
“한국이 대미 투자로 얻는 최대 이익은 국내 산업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생존은 국제 수준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세계 최대 시장이자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을 확보하지 않고는 우리 기업이 국제 수준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222p)
“지금 한국이 가장 집중해야 할 나라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다. 한국은 미중 경쟁으로 미국 시장에서 기회를 잡고 있다. 미국이 자국 시장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제조업 업종이 많아질수록 한국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제조업은 쇠퇴하거나 국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업 클러스터에는 한국의 최종재 생산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부품 · 소재 · 장비 기업의 진출 기회도 생길 것이다. 지금 한국 제조업은 유럽이나 일본보다 미국 시장 진출이 늦었지만 미국의 산업 정책과 깊숙이 연관되면서 빠르게 대미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지금의 투자 선점 효과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240p)
“한국의 대미 투자 역조는 한미의 지속가능한 투자 교류의 저해 요인이다. 한미 투자 교류가 확대 균형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에 지금보다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0.6%에 불과해서 대한 투자 확대의 여지가 있다. 특히, 한국의 대미 투자 역조 확대는 미국의 국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한국의 투자 증가가 원인이기 때문에 미국도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산업 공동화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 한 가지 대안은 한미가 서로 강한 산업을 상대국에 ‘교차투자’하는 것이다.” (250p)
“지금 미국의 모습은 한국에게도 제조업 인재의 중요성을 확인시킨다. 한국 제조업도 선진국 제조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제조업의 인력은 고령화되고, 점점 더 많은 일자리는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이 끊겨 기술은 단절 위기에 있다. 산업용 펌프를 생산하는 한 한국 업체는 “현재의 기술자가 퇴직하면 그 일을 이어받을 직원이 없다”고 말했다. 코트라의 한 일본 전문가는 “일본 제조업은 지난 ‘잃어버린 30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족 승계의 문화가 있어서 기술을 조금이나마 유지될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도 말했다.” (25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