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무도, 공부와 수련을 오가며 깨우친, 위기 사회에 가장 필요한 ‘힘’에 관하여
『무지의 즐거움』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등으로 수많은 독자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의 신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 40년 넘게 프랑스 철학과 사상을 공부했습니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철학을 ‘더 나은 삶을 향한 공부’라고 이야기합니다.
삶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정직하게 쌓은 지식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여지없이 도움이 되지요. 지식을 넘어 지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책상머리 공부를 넘어 몸으로 직접 부딪혀 보는 게 진짜 공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요. 하지만 지금 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회에서는 지식과 지혜, 경험도 소용없을 때가 있습니다. 미래에는 더 그럴 테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삶에 닥칠 문제와 위기 상황에 우리는 무엇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무도는 수련의 방편이기에 기본적으로 적이 나를 공격해 오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수련이 목표이지요. 우치다 다쓰루는 20대 때부터 철학 공부와 무도 수련을 병행하며 철학과 무도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둘 다 삶을 지탱하는 지혜, 살아남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은 그간 여러 저서를 통해 바로 이 깨우침을 역설해 왔습니다. 책상머리 공부만으로는 다질 수 없는 인생의 기본기가 있고, 스포츠로서의 무술만 연마해서는 결코 깨우칠 수 없는 기지와 감각이 있다고요. 이 책은 그 ‘무도론’, 우치다 다쓰루의 ‘무도적 사고’를 집대성한 책으로 예측 불허의 위기 사회에서 생존력을 극대화하는 그만의 해법과 통찰을 전합니다.
현대사회 무도가의 유일한 목표는 돌봄과 공생, 화합과 사랑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무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육 문제, 정치·문학·역사 이야기, 결혼이나 가족에 관한 고민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이런 주제도 모두 ‘무도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하무적’은 ‘천하에 적이 없다’는 뜻이지만, 선생은 눈앞의 모든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수련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적’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것, 그래서 세상에 ‘적’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무도가가 삼아야 할 목표라고 주장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도는 타인과 공생하는 기술, 타인의 편에 서서 그의 입장에 동화하는 돌봄과 사랑의 기술입니다. 무도에 문외한이거나 평생 수련과는 담을 쌓아 온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무도적으로 사고’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지요.
이 책은 일본에서 2010년에 출간되어 15년 넘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무도적 사고』를 번역한 것이지만,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비롯해 특별히 한국의 독자를 향해 쓴 메시지가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2025년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았지만 양국 관계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의 합기도장을 찾은 평범한 누군가로부터 받은 “일본은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는 나름의 명쾌한 해답을 내어놓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무도적 사고로 대처하면 단순하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이지요.
선생은 무도적 사고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존 기회를 높이는 선택지라면 망설임 없이 잡아서 천하무적을 목표로 삼고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고 쓸데없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태도. 공정, 평등, 합리와 같은 가치가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무엇이 진정한 합리인지 고민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져 버린 시대에 선생의 ‘무도적 사고’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속 시원한 기준과 길잡이가 되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