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온전히 21세기 민주화의 산물로 등장한 따끈따끈한 예술계의 ‘신상품’이다. 과거의 물건은 계급이 있고, 주인의 신분을 따랐다. 박물관에 가면 좀 멋져 보이는 것은 온통 교회 혹은 사찰이나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일반인이 사용하던 물건은 기록하고 보관할 가치가 없는 하찮은 것이라 여겨서 애당초 예술이라 부르지 않았고 미적 가치를 따지지도 않는다. - 15쪽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근대를 촉발한 또 하나의 사건은 산업혁명이다. 1800년대 초, 영국 산업혁명기에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방적기가 등장했다. 먹지 않고 쉬지 않으며 때리지 않아도 일을 하고, 밤새 직물을 짜고도 감기조차 걸리지도 않는 마법의 일꾼이었다. 순식간에 영 국의 산업 생산력은 세계 최고가 되었다. 또 증기기관차의 등장은 그저 잘 달리는 힘센 짐꾼이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 영국의 사회시스템 전체가 변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 71쪽
인상파는 빛을 중요시했다. 빛은 왜 중요한가? 빛은 전통적으로 신의 상징이었지만 계몽주의 사상의 상징이기도 했다. 유럽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악마를 믿던 전근대 시대를 암흑으로 표현했는데, 이 암흑을 걷어내는 것이 빛이다. 중세가 밤이라면, 계몽주의 시대는 동이 트는 새벽이다. 아침 해가 비치면, 즉 빛이 어둠을 몰아내면 비로소 꿈을 깬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만 진실이라고 인정했다. 묻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성경 말씀이니 그냥 믿으라는 중세 사제의 압박은 어둠이었고, 자기 이성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합리성은 빛이었다. - 111쪽
유럽 사회는 기존의 체제와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어 가고 있었지만, 대서양 건너 미국은 유럽과 판이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군수물자 생산력으로 세상에 그 위력을 과시하기 전까지 별로 주목받는 나라가 아니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남북전쟁을 치르는 등 내부의 문제에 골몰하느라 세계사에 거의 등장하지도 못했다. 미국은 신생 독립 국가로 왕과 귀족이 없었고, 유럽에 비할 수 없이 역사와 전통이 짧았다. 달리 말해 민중이 싸워서 이겨야 할 역사적 억압이 없고 무너뜨려야 할 권위와 전통이 없었다. -154쪽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 중립국이던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 온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카바레 볼테르’라는 카페에 모인 작가들은 다다이즘이라는 반문명, 반합리주의 예술운동을 펼쳤다. ‘다다Dada’라는 명칭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카페에 모인 예술가들이 장난감 목마를 가리키는 어린아이의 말 ‘다다’에서 즉흥적으로 딴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만큼 그들은 특별히 이름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살육과 파괴에 지독한 증오와 냉소를 보이며, 기존의 모든 전통과 질서, 가치, 나아가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한다. - 200쪽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의 많은 예술가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경도되고, 예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모순이 드러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것이 실패한 체제임을 확인하였지만, 혁명 초기의 사회주의 국가는 부조리한 과거의 역사를 폐기하고 노동자를 위하여 새로 세운 지상의 유토피아였다. 한편 아방가르드가 청산하고자 한 과거의 역사는 더 이상 중세가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와 천민자본주의 등 이 빚어낸 광기 가득하고 모순된 근대였다. - 230쪽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영역의 디자인 체계를 완성해 현대디자인의 시작을 알렸다. 관념적인 장식과 고립된 미美를 현실로 끌어내고, 디자인은 사회를 지향하고 사회를 반영하며, 사회를 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한다는 현대디자인의 기본 이념을 형성했다. 이는 사회주의 성향의 아방가르드들이 만인이 평등한 세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산물이다. 바우하우스는 현대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념이자 사상·활동·교육으로 기록되었다. - 265쪽
193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라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가 ‘다이맥시온 Dymaxion’이라는 물방울 모양의 자동차를 출품했다. 이제껏 사람들은 차란 당연히 포드 모델T처럼 생기고, 실용적이고 튼튼한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지만, 풀러는 마치 비행기 같은 모습의 둥글고 매끈한 외피를 차에 입혔다. 금방 풍동시험장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에어로 다이나믹Airo dynamic 디자인, 제트기 같은 스트림라인Stream Line을 가진 이 차는 큰 화제가 되었다. 다이맥시온 자동차는 사실 포드 모델T와 별반 성능이 다르지 않았음에도 대중에게는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고성능 자동차로 보였다. - 306쪽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과도한 엄격함과 건조함이 디자인에서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보고 역사를 긍정했다. 역사적인 장식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작품을 풍부하게 만드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여 반세기 만에 장식을 다시 복권했다. 획일적인 디자인의 언어에 문화와 상징을 덧붙이고, 여기에 한술 더 떠 도발적인 장난을 쳤다. 모더니즘이 계속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것저것 계속 덧붙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만큼 거창하고 이념적이고, 혁명적이 거나 엄숙하지 않다. 별다른 선언문도, 슬로건도 없다. - 332쪽
한국에 근대 문물이 전파된 경로는 일제보다는 만주국을 통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와 일제는 기본적으로 같은 주체였지만, 국가의 운영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영국과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이 같은 민족과 문화적 전통에서 출발하였지만, 환경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과 유사하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중국의 동부 지역을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관동關東’이라 이름을 붙였다. 일본의 철도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제 최정예 부대 ‘관동군’을 배치했는데, 이후 관동 군은 독자적으로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재위기간 1908~1912)를 내세워 일제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세웠다. - 363쪽
건축 역시 모더니즘 건축 일색이었고, 1960~1970년대를 거치며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수근의 세운상가(1967)나 김중업의 삼일빌딩(1970) 등은 국제주의 양식에 충실한 건축이었고, 마포주공아파트나 잠실주공아파트 등과 같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도 기능 중심의 공간으로 지어졌다. 한국 사회의 모더니즘은 자유주의 이념이자 미국과 같은 풍요로운 사회를 약속하는 미래의 양식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회복하고, 냉전 시대에 미국의 우방으로 남은 자유주의 동맹국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 3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