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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 되면서 엄마는 다시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미술 학원 대신에 태권도 학원에 등록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방과 후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원장님이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기 때문이다. 태권도까지는 참았는데 영어 학원 더하기 수학 학원이라니. 엄마가 더 바빠지면 과학 학원, 국어 학원까지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레벨 테스트를 열 번도 넘게 보겠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강아지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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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엄마가 그렇게 쉬우면 엄마들이 왜 학원에 다니겠어? 아직 나비 엄마가 된 엄마는 몇 명 없다더라.”
오늘따라 모아의 입이 얄미워 보였다. 알 엄마 대 애벌레 엄마라니. 그러면 우리 엄마보다 모아네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는 말인가? 절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하지만 모아한테 엄마가 애벌레 반이라고 거짓말해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53-54p
나는 먹다 남은 우유를 냉장고에 넣었다. 저절로 냉장고 문에 눈길이 멈췄다. 어느새 한쪽 날개가 꽃으로 가득 찬 검은 나비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비 날개의 반쪽이 다 찼으니 엄마 레벨도 오십 점은 된 걸까?
하지만 나는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빵점일 때나 오십 점일 때나 똑같다. 아니, 난 더 외롭다. 나비의 날개는 완성되어 가는데 정작 엄마는 내 옆에서 멀어져 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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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엄마가 학원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학원이 아니라 회사를 그만둔대.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우리 엄마는 예전에 파티시에가 꿈이었대. 뽀뽀 빵집처럼 빵집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어. 난 우리 엄마가 만들어 주는 카스텔라가 제일 맛있어.”
그렇구나. 엄마들도 꿈이 있구나. 내가 로봇 과학자가 되고 싶고, 모아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싶은 것처럼. 엄마가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회사를 그만두면 절대 안 된다. ‘베스트 엄마 학원’을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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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빵집의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 빵집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보드게임에서 이긴 사람이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무조건 따르기! 이건 새로 생긴 우리 집 규칙이다. 엄마는 학원 대신 꼭 잘 해내고 싶다는 프로젝트 일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 세 번 뽀뽀 규칙은 다시 잘 지키기로 약속했다. 고학년에게도 뽀뽀는 필요하다. 엄마가 바빠져서 서운하지 않냐고? 하나도 안 서운하다고 하면 그건 완전 거짓말이다. 하지만 슬프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엄마에게는 늘 내가 일 등이라는 걸 알았으니까.